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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내면이 갖는 이중성에서 중도 읽기

서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금각사’ / 미시마 유키오 지음 / 웅진닷컴

▲ 보경 스님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책은 생각의 힘을 키우고 사고의 범위를 넓히는 도구”라며 책읽기의 유용성을 강조했다.

인간은 사유의 동물이다. 그래서 똑같은 사람이나 사물을 보고도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늘 대하는 문자도 그렇고, 그 문자의 집합체인 책도 그렇다. 하나의 책을 보고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감동의 크기도 다르다. 사유의 크기에 따라, 혹은 삶의 경험에 따라, 그리고 알음알이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 감정이다. 다만, 다를 뿐이다.
일본 최고 극우주의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에 대한 평가도 그래서 엇갈린다. 일본 내에서 우익의 궐기를 주장하며 할복했던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중 ‘금각사’에 대한 해석 역시 분분하다. 미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금각사라고 하는 사찰이 불에 탄 것처럼 전쟁의 주범으로 세상을 혼란에 빠트렸던 과거사를 잊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는 평가까지 다양하다.

 
젊은 출가자에게 중도를 알게 한 ‘금각사’
그러나 송광사 서울포교당 종로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은 ‘금각사’에서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부분을 읽고 그것을 끄집어냈다. ‘중도(中道)’다. 수행자로서 탈문자와 탈언어의 세계에 들었던 스님은 다시 문자의 세계로 돌아온 지금 ‘평생 1만권의 책을 읽겠다’는 서원을 세울 정도로 책을 사랑하고 다양한 책읽기에 여념이 없다.
“순수하게 문학과 책만 갖고 말할 때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친 책이 바로 ‘금각사’입니다”라고 말하는 스님이 독서를 시작하는 첫 계기가 됐을 정도다. 전후 일본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힐 만큼 일본 내에서도 유명세를 탔었던 이 소설을, 20대 후반 어느 때인가 법련사 원주 소임을 맡아보던 시절에 ‘불일회보’ 편집장의 권유로 읽게 된 스님은 주인공의 극단적 삶과 사고체계가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보면서 수행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 있었던 사찰 방화사건 소설화
‘금각사’는 일본에서 발생한 실제 사찰 방화사건을 작가가 소설로 엮은 작품이다. 못생긴데다 말더듬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어 소극적이기까지 한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금각사의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러던 중 스님이었던 아버지가 도반인 금각사 주지에게 주인공을 맡기면서 그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그러나 장애 때문에 자신과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폐쇄적인 소외감은 커졌고, 그럴수록 금각사의 아름다움에 더욱 매료돼 금각사와 자신이 하나인 듯한 마음을 가질 정도로 일체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하지만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고 아름답게만 보였던 금각사 내부의 타락상을 알게 되면서 그곳에서 벗어날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사랑했던 금각사를 불태우고 그 불길 속에서 자신의 존재마저 끝내겠다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금각사만 화마에 휩싸였을 뿐,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온 주인공은 자해하려 했던 도구를 버리고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우리 내면의 이중성에 대한 경고
보경 스님은 여기서 인간 내면의 이중성을 먼저 떠올렸다. “주인공이 금각사를 미학의 결정체로 여기다가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보았듯, 우리 삶에는 항상 사랑과 미움, 상승과 하강, 강과 약, 미와 추, 생과 멸 등의 상반된 마음이 존재한다”고 설명한 스님은 “이같은 인간의 이중성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중도적 사고와 삶”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그렇게 고독과 왜곡된 미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주인공이 결국 그와 상반된 이면의 모습을 본 후 극단적 선택을 한 지점에서 중도적 사고의 중요성을 읽었다.
이처럼 작품 속에서 수행자적 관점으로 마음의 이중성과 중도를 읽어낸 스님은 무정물이 갖는 마음과 우리의 본래 마음에 주목했다. “사람이 수석이나 명화를 보는 것은 그 작품 속에 깃든 마음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스님들이 면벽 수행을 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수석․그림․건축물 등 예술작품 속에 무정물의 본질과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듯, 참선할 때도 눈길이 닿은 그 벽면이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과 하나가 되어 마치 벽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상황에 이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작품에서 인간의 이중성에 이어 중도적 삶을 읽어낸 스님이 말하는 본래의 마음은 결국 수행에서 얻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부단한 노력과 정진을 통해 변화하는 모든 것에 흔들림 없이 본래의 마음을 찾고 보고 쓸 수 있어야 극단에서 벗어나고, 중도적 삶을 살아가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행과 일상에서 균형추 역할
스님은 갓 스물의 청춘에 불문에 들어섰다. 온전히 한 세상을 떠나 다른 세계로 들어섰지만 그곳에서의 삶이 그리 녹록치 않았다. “절은 말이 없는 곳입니다. 당시 송광사 행자가 30여 명이나 됐지만 한가하게 이야기하고 그럴 수가 없었지요. 그러니까 그 나이에 항상 고독했습니다. 군대에 가서는 군종병으로 근무하면서 또 고독을 느끼게 됐고, 아마도 그때 심정이 이 작품 속 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책 속에서 ‘고독은 돼지처럼 살쪄가고…’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때 제가 그랬습니다.”
온전히 한 세상을 버리고 들어온 ‘불가(佛家)’는 스님에게 있어서 마치 작품 속 주인공이 금각에 몰입했던 것처럼 더없이 소중했다. 그리고 그때 읽게 된 이 작품은 소중한 것을 진정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게 했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적 삶을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때문에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극단으로 달려갈 때면 ‘금각사’를 생각하면서 반대쪽으로 선회하려 애를 썼다. 극단으로 치달을 때 아름다움의 결정체로 여겼던 금각사가 소멸되듯, 소중한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있었던 덕분이다.
“수행자 신분을 떠나 우리 모두의 삶에서는 적절한 균형이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 어느 성질 급한 수행자에게 거문고 줄의 비유를 들어 수행의 극단을 경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속가에서 거문고를 켰다고 하는 제자에게 ‘줄이 팽팽할 때 소리가 잘 나는지, 느슨할 때 소리가 잘 나는지’를 묻지요. 이때 제자는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고 적당해야 소리가 잘 난다’고 답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도 그러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균형, 중도에 대한 가르침이지요.”
우리사회에서도 자칫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려 자기파멸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젊은 나이일수록 그러한 위험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자기 스스로의 생각에 함몰되다 보면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기에 그렇다. 그래서 균형을 잃게 될 경우, 압력이 쌓이면 폭발하는 것처럼 위험한 순간을 자초하기 마련이다. 스님은 지나온 젊은 시절에 이 책을 통해 균형감 있는 사고, 즉 중도적 사고와 삶이 왜 중요한가를 간접체험하고 자신의 삶과 수행도 그렇게 가꾸려 노력해왔던 것이다.

문장의 아름다움은 또 다른 재미
탈문자의 세계에서 다시 문자의 세계로 돌아온 스님이 1만권의 책을 읽겠다고 서원한 데는 문학적 감성이 작용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런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동안 경전해설서를 비롯해 몇 권의 책을 출간한 것 또한 그런 문학적 소양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그런 스님의 뇌리에 지금도 여울지는 ‘금각사’ 속 한 구절이 있다.
‘아버지는 결코 현실의 금각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었고, 또한 금각이라는 글자, 그 음운으로부터 내 마음이 그려 낸 금각은 터무니없이 멋진 것이었다.’
그래서 스님에게는 ‘금각사’ 곳곳에서 보이는 미려한 문체가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게 한 또 다른 재미이자 감동이기도 했다.

책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안내자
독서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만큼, 책을 대하는 마음자세도 특별한 스님은 세간 사람들이 혼을 담아 엮은 혼집(魂輯)에서 항상 재미와 경이를 느낀다. 또 새로운 세계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 그런 것들에 대한 즐거움을 만끽할 뿐만아니라, 거기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살아가는 또 다른 힘도 얻고 있다. 그래서 스님에게 책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안내자”이기도 하다.
스님은 특히 젊은 시절의 독서가 수행을 담금질하는 도구가 됐다고 고백했다. “‘나’라는 쇳덩이가 어느 정도의 강도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것은 물론 그 범위도 넓힐 수 있는 유용성”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동국대학교에서 선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마친 스님은 출가 수행자의 길에 들어선지 30년을 넘어서고 있다. 그럼에도 선어록을 즐겨보고 법문에 인용하기 위해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설서가 나올 때마다 챙겨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내전과 외전, 그리고 그 중간쯤 되는 책들을 고루 섭렵하고 있는 스님은 신문에 소개되는 신간 서적을 보며 요즘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법련사 종무소 안쪽에 자리한 주지 집무실은 때로 서재가 되고, 마음을 잘 익히고 길들이는 ‘순숙(純熟)의 공간’이 되고 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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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이 추천하는 책 

 

‘손바닥 소설’/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문학과지성사
이 책은 원고지 10매 내외의 짧은 글들을 엮은 것입니다. 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 작품과 관련해 일본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언어체계가 보여주는 의미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문장 호흡이 저의 책읽기와 잘 맞는 것 같아 그 작품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작품집 속 수많은 명작들이 질적인 면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소재, 발상, 문체 등이 바로 작가의 문학적 원점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만 합니다. 남녀 간의 미묘한 심리, 부부간의 애정표현, 복잡한 인간 심리, 풍속적인 내용, 새와 짐승을 소재로 삼은 작품, 소년 소녀의 사랑, 자전적인 작품, 윤회사상, 일상과 이탈 등 다양한 내용들이 담겨 있어 읽는 재미도 적지 않았습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물고기’/ 잘랄 앗 딘 알 루미 지음/ 최준서 옮김/ 하늘아래
이슬람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인 루미가 들려주는 불안한 영혼을 위한 지혜의 노래를 담은 책입니다. 종교적 신념과 철학적 이해를 넘어서고 있어서 세계 곳곳에서 번역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작품 중 80편이 수록돼 있는데 저는 그 중에서도 ‘가시에 가장 가까이 피어나는 장미’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장미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이 가시인데, 사람들이 꺼려하는 것으로 보호막을 삼고 있는 셈이지요. 작품들을 읽다보면 우리가 더 늦기 전에 인간 스스로와 지구를 파멸시키는 행태를 멈추고 새로운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삶의 본질에 새롭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휴 옮김/ 문학사상사
저자 마르케스의 말 가운데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다.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온 여정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나의 삶, 즉 내가 나의 삶을 이야기할 때 내가 나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내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보여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이 책은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 소설은 근대적 의미의 시간 개념을 초월한 사람들에 대한 접근방식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평역에서’ / 곽재구 지음/ 창작과비평사
곽재구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인 ‘사평역에서’는 고통 받는 민중의 억압된 삶을 서정적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아 온 시집입니다. ‘조경님’, ‘영자’, ‘대인동’ 등의 연작을 비롯해 60편 조금 넘는 시가 수록돼 있는데 80년대의 가장 첨예하고 진지한 시적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시에는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젊은 가슴의 함성이 스며 있고, 그러면서도 사상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화해와 사랑을 위한 기도가 담겨 따뜻함이 있습니다. 1983년 초판 발행 후 10만 부 넘게 독자들 손에 들린 스테디셀러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시들이 많이 담겨 있어 숨겨진 감수성을 끌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232호 / 2014년 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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