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토대장정순례에 거는 기대

돌이켜보면 1980~90년대는 암울했다. 정권퇴진과 민주화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외침이 함께 했다. 정부는 잔인하고 무서웠다. 젊은이들은 학교 도서관 대신 거리에서 최루탄을 뒤집어쓰며 역사의 시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 피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침내 권력으로 쌓은 탐욕의 성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그리고는 서로의 노고를 다독거리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작은 양심과 가녀린 함성을 보탰던 수많은 기록되지 못한 역사의 주역들이 일제히 나이를 나눠먹으며 노동자가 되고, 서민이 되고, 국민이 됐다.

정부기관 선거개입에 이어
검찰의 조작된 증거 제출

100일간에 걸친 국토순례
국민이 국가임을 확인하는
희망의 대장정 되길 기대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민주화된 나라에서 언제부터인지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시절이 됐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무섭고,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두려워졌다. 전조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정부가 불만을 토로하는 민간인들을 감시하고, 거슬리면 삶을 송두리째 짓밟았다. 그래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도도한 물결은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은 작은 해프닝이나 역사의 흐름을 알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일종의 코미디 정도로 치부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국정원이 나서서 국민의 여론을 조작하고, 국방부와 경찰까지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의 불법적 선거개입을 알렸던 사람이 실형을 받는 등 벼랑 끝에 몰렸다. 최근에는 검찰이 간첩사건 재판에 제출한 증거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정부기관의 문서가 조작돼 재판부에 제출된 것이다. 법무부 장관은 국회의원들 앞에서 거짓말로 피해가려다 외교부 장관의 사실 확인으로 망신을 사고 있다. 피와 눈물이 강물이 되어 일궈냈던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고문경찰을 향해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외쳤던 영화 ‘변호인’을 1200만이 넘는 국민들이 관람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위조된 문서를 제출해 무고한 국민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지만 선 듯 나서는 사람은 드물다. 무섭고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억해야 한다. 회피하면 할수록 그 두려움은 더욱 빨리 현실이 돼 내 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뮐러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다음엔 유태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니뮐러의 고백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

▲ 김형규 부장
최근 조계종 결사추진본부와 화쟁코리아가 100일간의 일정으로 전국을 순례하겠다고 밝혔다. 고통 받는 곳을 찾아 대립과 반목을 치유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순례가 약자들의 눈물을 위로하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영화 ‘변호인’의 교훈처럼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며 곧 국가임을 확인하는 길이어야 한다. 무기력한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대장정이었으면 한다. 아마도 이것이 불교계에 주어진 시대의 사명일 것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34호 / 2014년 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