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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예지와 숨결 깃들어 있는 공동체문화 구심점

기자명 황권순
  • 기고
  • 입력 2014.02.26 14:12
  • 수정 2014.02.26 15:40
  • 댓글 0

[무형문화유산 어떻게 볼 것인가] 1. 가치와 특성

무형문화유산 어떻게 볼 것인가
1. 가치와 특성
2. 법적·제도적 문제
3. 효율적 활용방안

1700년 한국불교는 우리 민족문화의 원형이다.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의 60% 이상이 불교와 관련돼 있다. 그러나 이는 눈에 보이는 유형의 문화재일 뿐, 우리네 삶과 공동체 현장에 녹아있는 불교 무형유산에 대한 평가는 극히 인색하다. 법보신문은 문화재청에서 무형문화유산의 실무를 오랫동안 담당해온 황권순 창조행정담당관의 기고문을 통해 불교 무형문화유산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 불교는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한국의 무형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진은 지난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삼화사 수륙재의 상단의식.

근래 들어 전체 문화재 분야에서 인지도가 가장 크게 높아진 분야는 단연 무형문화유산이다. 지난 2011년 중국이 조선족 아리랑을 자국의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자 우리 고유의 유산을 중국에 뺏긴 것으로 오해한 비판 여론이 불같이 일어났다. 결국 2012년 12월 우리는 ‘아리랑’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연이어 2013년에는 ‘김장문화’를 다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면서 우리 민족의 오랜 삶의 전통이 세계적으로 그 보호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이렇듯 무형문화유산은 우리 민족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어 있는 우리의 모습 그 자체이기에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 국제적으로 도용하거나 선점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무형유산은 우리의 자존감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형유산의 가치를 늘 피부로 느끼며 그 소중함을 생각하고 지내는 것 같지는 않다. 영화 한 편, 프로야구 경기, 인기가수 콘서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높은 관람료를 지불하고 찾아가지만, 전통공연이나 전통공예 전시에는 아예 관심조차도 없다. 설날·추석에만 한복을 꺼내 입 듯 특별한 날에만 우리 것을 찾고 잠시 구경거리로 즐길 뿐이다.

늘 숨 쉬는 맑은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듯 항상 옆에 있을 것 같고 언제든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무형유산도 바쁜 현대인의 생활 속에 잊혀진 채 지내왔다. 바디장, 벼루장과 같이 보유자가 모두 사망하고 전통의 기술과 재료가 단절되어 옛 모습을 재현해 내는 것이 어려워지는 사태에 직면해서야 우리의 것이 어느새 사라졌는지를 한탄하게 된다.

무형유산은 민족자존 자체
전승단절 위험에 항상 노출

무형유산은 유형유산 어머니
보이는 유물·유적 답사하며
만든 이 모르면 반쪽 공부

불교 영향 무형유산들 다수
살아 전승될 때 참다운 가치
특정종단 독점보다 협력 중요
전승 다양성 확보 노력 필요

무형유산은 유형유산을 창조해 내는 어머니와 같은 소중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문화유적지를 답사하고 관광하면서 이것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리 궁금해 하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문화재의 역사성, 공간성, 예술성에 한정된 반쪽짜리 공부만 하는 셈이다. 서양문물을 대할 때는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는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인지를 철저히 공부하고 따진다. 그러면서 우리 문화재를 대할 때는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무형문화유산은 사람의 손에 의해 전승된다. 형태가 없기에 무형이요,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기능, 재능, 삶의 양식이기에 문화재(文化財)가 아니라 문화유산(文化遺産)이다. 사람을 통해 전승되기에 사회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전승단절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것도 그 특성 중 하나다. 도시 인구가 전체 인구의 70~80%인 오늘날 짚으로 새끼를 꼬아 가마니를 짜고, 짚신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농번기에 마을공동체로 농사일을 하면서 그 고됨을 농요과 농악으로 이겨냈던 선조들의 풍류를 이해하고 멋들어진 노랫가락을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도시화, 산업화의 물결 속에 전통적 생활양식을 조금씩 포기하고 현대의 편리함 속에 젖어 든 결과 우리 곁에 있던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무형문화유산의 또 다른 특성은 가변성(可變性)이다. 전승의 매개체가 사람이다 보니 만드는 사람에 따라, 부르는 사람에 따라, 춤추는 사람에 따라, 지역 환경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면서 전해지게 된다. 이른바 ‘유파, 째, 바디’라고 일컬어지는 특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세대를 거치면서 시대를 흘러오면서 ‘같으면서도 다른’ 무형유산의 묘미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이는 의도적으로 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스승과 제자의 엄격한 도제식 전수교육 체제에서 스승의 가르침은 절대적이기에 이른바 ‘원형’의 이름으로 배워 전승하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정신과 감각은 같으면서도 다른 모양새를 갖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말하는 법을 배우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고려, 삼국시대에도 똑같이 통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러한 가변성을 가진 무형유산이 법·제도에 따른 지정·인정과 연결되면 자칫 큰 낭패를 보게 되는 수가 있다. 잘못 운영된 법·제도는 무형유산의 가변성을 없애고 획일화시키는 결과를 빚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다음 편 무형문화유산의 법·제도 부분에서 자세히 기술하기로 한다.

최근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과정에서 불교무형문화유산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연등회(2012년), 수륙재(2013년)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불교 종단 차원에서도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지하고 무형유산의 기초자원을 연구하고 발굴하는 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무형유산은 우리 민족의 삶의 양식 그 자체이기에 그 뿌리나 내용이 유교, 무속, 불교 등 종교에서 온 것이 많다. 유교에 바탕을 둔 종묘제례, 석전대제가 그렇고, 무속신앙에서 비롯된 경기도당굿,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서울새남굿, 풍어제로서 동서남해안 별신굿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불교적 영향이 많은데 이는 아마도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오랜 세월동안 우리 민족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춤사위인 ‘승무’,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의식화한 영산재, 그리고 불법세계를 장엄하기 위해 발달한 예술분야로서 불상을 제작하는 ‘목조각장’, 불화를 그리는 ‘불화장’, 범종을 제작하는 ‘주철장’ 등이 불교에 뿌리를 둔 대표적인 무형유산이다. 그 외에도 조선시대 말에 시대적 풍자를 담은 각종 ‘탈춤놀이’에 파계승·노장 역할이 등장한다. 판소리, 가야금산조 및 병창 등 악기연주, 소리종목에도 영산회상의 내용을 담은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볼 때 불교에서 영향을 받은 무형유산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다른 분야와는 달리 다행스럽게도 불교무형문화유산은 비교적 사회환경적 변화가 크지 않아 종단 등 불교계의 의지에 따라 많은 부분들을 되찾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찰과 스님, 신도로 구성되는 불교공동체가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불교 의식행위도 개별적으로는 조금씩의 변화가 있었겠지만 현재에도 각종 수륙재, 영산재 등을 사찰에서 거행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아직 더 많은 무형유산의 발굴이나 보존의 기회가 남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오늘날 전통예능 종목들이 생활현장에서 전승되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전문 전승자에 의해 무대종목화 되어 전승되고 있는 현상을 답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문화재보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능·예능에 국한시켜 조사·연구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무형문화유산은 실제 우리의 삶과 생활현장에서 전승되고 공동체의 문화 속에 살아있을 때, 그 참된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된다. 불교공동체가 가지는 강점을 십분 활용하여 불교의례, 장엄기술과 전통, 수행이나 발우공양, 다도, 참선 등의 생활양식 등을 불교문화에서 유리시켜 박제시키지 말아야 한다. 공동체가 다같이 참여해 무형문화유산이 갖는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불교 내에서 더욱 진작시킬 수 있도록 장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심사 기준인 공동체 전승성, 등재효과성, 충실한 보호방안, 문화다양성 기여 등과 일맥상통한다.

불교무형문화유산의 전승활성화를 위해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불교 종단간의 연대의식이다. 판소리가 지역별로 동편제 서편제, 또는 전승자별로 여러 바디로 분화되어 다양성을 확보하였듯이, 불교 종단간에도 독점의식이나 배척의식을 버리고 상호 협력하는 동반자 정신이 필요하다. 2012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연등회’도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을 망라해 ‘연등회보존위원회’라는 보유단체를 인정하면서 이를 실현시킨 바 있다. 1987년 ‘범패’에서 명칭을 변경해 지정된 ‘영산재’도 종단을 초월해 ‘영산재보존회’를 보유단체로 인정한 것도 불교무형문화유산이 특정 종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불교 전체의 문화유산임을 확인한 것이다. 종단 상호간의 발전적 노력을 기울이길 기대하면서도 특정 종단의 전유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해당 불교무형문화유산의 전승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장치라 볼 수 있다.

이제 문화유산의 큰 흐름은 무형문화, 정신문화로 이어질 것이다. 무형문화유산이 우리 민족의 삶에서 비롯돼 한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듯이 불교무형문화유산이 불교공동체의 구심점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불교무형문화유산이 한국의 무형유산으로, 그리고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그 빛과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종단에서부터 그 가치를 발견하고 공동체 속의 살아있는 유산으로의 가시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들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황권순 문화재청 창조행정담당관 koreasoc@hanmail.net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2004년부터 문화재청에 근무하며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무형문화유산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안 등을 마련했다. 또 조선왕릉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및 아리랑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비롯해 중요무형문화재 ‘연등회’ ‘법성포단오제’ ‘궁중채화’ 지정에도 큰 기여를 했다.
 

 

[1234호 / 2014년 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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