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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수주의와 타고르의 일침

  • 법보시론
  • 입력 2014.03.03 16:27
  • 수정 2014.03.0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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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는 인도만이 아니라 세계문학계에서 가장 빛나는 별 가운데 하나다. 그는 103편의 산문 서정시가 수록된 영문판 시집 ‘기탄잘리(신에게 바치는 송가)’로 1913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얻었다. 그런 타고르가 1929년 재일 한국유학생들의 부탁을 받고 한국인을 위해 시 한편을 썼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타고르는 이 시구 끝부분에 ‘기탄잘리’에 실린 시 한 편을 덧붙였다. ‘마음에 두려움 없고 머리를 높이 치켜들 수 있는 곳, 지식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곳, 작은 칸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나눠지지 않은 곳, 말씀이 진실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곳, 그런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조국이 눈 뜨게 하소서, 나의 님이시여.’

타고르가 쓴 ‘동방의 등불’에는 불교의 기본정신이 깊게 베어있다. 힌두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와 달리 불교는 인간이 만든 계급과 신분제도는 물론이고, 신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의지에 기반을 둔 종교로 출발했다. 타고르의 시에 표방된 ‘지식의 자유로움’에 관한 염원은 불교의 자유의지, 즉 자유를 성취하는 인간해방의 원리에서 유래됐다. 대반열반경에 ‘큰 바다에 맛이라곤 오직 한 가지, 소금 맛이 있듯이 부처의 가르침에는 오직 한 가지, 자유의 맛이 있을 뿐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라”는 부처의 마지막 가르침에도 자유에 대한 개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작은 칸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나눠지지 않은 곳’이라는 구절에서도 불교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전체와 고립돼 존재할 수 없고, 전체는 하나에 통합돼 있다는 ‘화엄경’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다. 불교를 주춧돌로 하는 고대 범아시아 문명에 대한 고찰은 타고르에게 불교문화의 영광스러운 지난날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여러 글을 통해 불교가 지구공동체의 활발한 문화교류를 이끌었음을 아름답게 서술했다.
세속적 욕망, 야망, 격렬한 갈등에 의해 점차 산산조각 나는 세계 속에서 타고르는 부처와 불교가 무욕의 상징임을 강조했다. 또 부처의 삶과 철학은 종교적 환상주의가 인류를 찢어발기고 무고한 사람들의 피로 지구의 얼굴을 덧칠하는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타고르는 일본이 고대아시아의 찬란한 불교문화를 부활시키고 아시아를 서구의 침략세력에서 보호하거나 해방시키는데 힘이 되기를 기대했다. 일본불교사원에서 신도들이 향을 피우며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던 일본”이라고 말했지만 곧 서양의 민족주의와 근대화를 철저히 모방하고 있는 일본에 크게 실망했다. 1930년대에 중국과 전쟁을 일으키자 일본인 시인 노구치 요네지로에서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하고 후회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타고르는 죽기 직전,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문명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는데 제국주의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운명의 수레바퀴에 의해 영국은 인도에 대한 식민통치를 단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후 인도의 모습은 어떨 것인가? 수세기 동안의 영국통치가 끝나면 남겨질 진창과 오물쓰레기는 어느 정도일까?” 영국제국에 대한 타고르의 비난은 당시 조선을 침략했던 일제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 판카즈 모한 교수
오늘날 일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이웃국가에 대한 호전적인 자세를 보고 있노라니 타고르의 질책이 떠오른다.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올바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타고르의 가르침대로 불교의 세계주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국수주의를 단념하고 불교를 국가지도이념으로 삼으며 고대아시아의 눈부신 불교문화를 되찾는데 앞장서 그릇된 역사에 대해서는 사죄하는 용기를 가지기를 바란다.

판카즈 모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pankaj@aks.ac.kr
 

[1235호 / 2014년 3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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