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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쇼생크 탈출’ - 자본주의 시대의 구원

기자명 정장진

돈 없는 구원이 공허한 현실에서 이타행 말하다

 
일전에 1300만의 관람객을 불러 모은 한국 영화 ‘7번 방의 선물’을 불교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같은 소재인 감옥과 탈출을 다룬 외국영화,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을 함께 보려고 한다.

한국에서는 ‘탈출’로 번역했지만 영어 원제에 들어가 있는 ‘리뎀프션(Redemption)’은 종교적 구원을 뜻하기도 한다. ‘쇼생크 구원’으로 옮길 수는 없었을 것이고 ‘이스케이프(escape)’가 아님에도 탈출로 옮겼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미국에서만 만들 수 있는 영화라는 인상을 받은 것은 이 ‘리뎀프션’이라는 단어가 금융 용어로는 주식이나 채권 등을 현금화한다는 전혀 다른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팀 로빈스가 역을 맡은 주인공 앤디는 은행 부지점장까지 지낸 금융전문가로 나온다. 비밀 유령 계좌를 만들어 교도소장의 탈세와 횡령을 치밀하게 관리해주면서 탈출을 꿈꾸고 실행에 옮긴다. 탈출한 후에는 가상 인물의 신분증과 건강보험증 등을 이용하여 돈을 이체시킨 뒤 현금화, 즉 ‘리뎀프션’하여 미국을 벗어나 오픈카를 타고 멀리 태평양이 보이는 곳으로 떠난다.

번역된 ‘탈출’ 뜻은 현금·구원
20세기 ‘몬테크리스토 백작’
탈세 도와 모은 돈으로 자유
클래식 음악·도서관 조성 등
재소자에 행복감 주기도 해

금융전문가 앤디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비단 교도소 소장만이 아니다. 앤디는 거의 모든 간수들의 수입을 관리해주고 절세와 탈세를 도와준다. 공제 받을 수 있는 항목을 찾아내고 기부금, 유산 상속, 이혼했을 당시의 세금, 부부 소득 합산시의 절세 등 그가 일러주는 대로 소득 신고를 한 교도소 간수들은 모두 엄청난 절세를 한다. 정교하다는 금융시스템을 풍자하는 장면이다.

영화는 이렇게 해서 단순한 탈출 영화가 아닌 이중의 의미를 지닌 조금 복잡한 영화가 되는데, 많은 이들은 ‘리뎀프션(Redemption)’을 탈출로 번역한 한국 개봉작의 조금은 잘못 된 제목 탓에 이 영화의 주인공 앤디가 금융전문가라는 사실에 둔감하게 되고 자연히 영화가 ‘돈과 구원’ 혹은 ‘자본주의와 종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영화의 숨어있는 또 다른 의미를 간과하고 만다.

물론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조금 잘못 번역된 제목 탓이기도 하지만, 숨을 쉴 수 없는 감옥, 정기적으로 엉덩이를 대주어야 하는 감옥에서의 동성애와 상상하기 힘든 폭력 그리고 강제 노역과 간수들의 온갖 전횡과 비리들……. 말 그대로 지옥에 살며 탈출을 꿈꾸는 주인공을 대하는 관람객들은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한시 바삐 지옥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쇼생크 탈출’을 금융 용어인 주식상환 혹은 현금화라는 ‘리뎀프션(Redemption)’의 뜻을 충실하게 옮겨보자. 그러면 앤디는 단지 탈출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자신이 벌 수 있었던 돈을 이자까지 쳐서 다 받아낸 것이 된다. 자유는 오히려 덤이다. 여의도 금융가의 애널리스트들이라면 ‘쇼생크 탈출’을 다른 관점에서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지 돈 문제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디테일에 주목할 줄 아는 이들이라면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않을 것이다. 금융전문가인 앤디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교양인이다. 교도소에 도서관을 만들려고 하며, 스피커를 통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이중창을 틀어주기도 한다. 또 앤디는 글조차 읽지 못하던 일자무식의 청년 죄수에게 검정고시 준비를 시키기도 한다.

교도소에 도서관을 설치하고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려고 하는 앤디의 이 노력은 불교식으로 보면 이타행에 다름 아니다. 이타행이라는 해석을 받을 수 있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 여러 번 나온다. 지붕 수리작업을 하던 죄수들이 모두 병맥주를 입에 물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이 대표적인 경우다. 감옥에 들어온 이후로는 꿈속에서나 마셔볼 수 있었던 병맥주를 앤디는 간수들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받아 동료 죄수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책과 모차르트의 음악은 교양이기도 하지만 감옥에서는 교양 그 이상의 것이다. 이타행인 것이다. 앤디는 다른 죄수들이 병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보면서 혼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모차르트의 이중창을 틀어놓고도 앤디는 두발을 책상에 올려놓은 채 몸을 뒤로 젖히고 만면에 미소 가득 웃음을 지을 뿐이다. 남의 즐거움을 보고 스스로 즐거움을 얻는 이 웃음은 이타행 그 자체다. 그러나 모차르트 음악을 틀어준 대가로 앤디는 독방에 갇히고 만다. 죄수이자 선배 격인 레드(모건 프리만)는 당시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난 이태리 여자들이 노래하는데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실 난 잘 몰랐다. 나중에야 난 느꼈다. 노래가 아름다웠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꿈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새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벽들도 무너지고 그 짧은 순간에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음악은 새였으며, 음악은 벽을 부수고 모두에게 자유를 느끼게 하는 특유의 힘을 갖고 있었다.

흔히 ‘화엄경’으로 불리는 ‘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일컬어지는 십지(十地)는 보살의 수행단계를 10종으로 나누고 있는데, 십지 전체를 통하여 보살은 자신을 위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한다는 이타행(利他行)을 말하고 있다. 앤디는 교도소에서 책, 음악, 교육을 통해 단순한 교양 그 이상인 이타행을 베푼 것이다.

십년이 넘게 노력한 끝에 교도소에 마침내 전국에서 보낸 책들이 도착하고 앤디의 지시를 받아 죄수들이 책을 정리한다. 이렇게 기부된 책들 중에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들어있다. 한국에서도 최근에 뮤지컬로 공연된 적이 있는 유명한 이 장편소설을 아는 이들은 탈출 영화인 ‘쇼생크 탈출’과의 관련성도 짚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유명한 탈출과 복수를 그린 소설이 한낱 삽화로 아무 의미 없이 영화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은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똑같이 구원과 돈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뒤마의 소설에서 청년 당테스는 일자무식의 선원이었다. 음모에 빠져 17년 간 절해고도의 섬 이프 섬에 갇혀 청춘을 날려버린 이 청년은 감옥에서 만난 파리아 신부로부터 모든 것을 얻고 다시 태어난다. 이름도 이탈리아어로 ‘그리스도의 산’이라는 뜻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바꾸고, 여러 나라의 언어는 물론이고 지리, 역사, 정치, 문학, 예술을 두루 공부한다. 하지만 당테스가 진정으로 얻은 것은 생명과 돈이다. 파리아 신부가 죽자 관례대로 부대자루에 넣어 시신을 바다에 던지는데 당테스가 몰래 파리아 신부 대신 부대자루에 들어가 바다에 던져진다. 이 장면은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인데, 바다 속에 던져진 당테스가 숨을 몰아쉬며 물살을 헤치고 올라오는 장면이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물로 세례를 받는 장면에 대한 비유이기 때문이다.

▲ 주인공 앤디는 금융전문가다. 교도소장 탈세를 도와주며 탈출한 뒤 감시를 피해 얻은 돈으로 ‘자유’를 만끽한다.

깊은 바다에서 올라온 당테스는 무식하고 가난한 뱃놈이 아니라 이제 완전히 새로 태어난 것이다. 다시 태어난 당테스는 파리아 신부가 일러준 대로 국가를 세울 만큼 많은 금은보화가 숨겨져 있는 몬테크리스토로 떠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음모에 걸려든 억울한 죄수나 가혹한 감옥생활 혹은 기발한 탈출과정이 아니라 바로 당테스가, 영화에서 금융전문가인 주인공 앤디가 그랬던 것처럼, 몬테크리스토가 되면서 동시에 엄청난 부자가 된다는 점이다. 몬테크리스토는 말 그대로 기독교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영화의 ‘리뎀프션(Redemption)’ 역시 종교적 구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구원은 산업혁명 이후 돈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철저하게 자본주의화 된 구원이 된 것이다. 이 자본주의식 구원은 오늘날 오직 미국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들 속에서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다. 배트맨’ 시리즈를 보자. 주인공 박쥐는 엄청난 부자 아닌가. 이제 미국은 대놓고 ‘아이언맨’ 같은 엄청난 거부 무기 장사꾼들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사이비 구원자들은 대개 다 부자다.

엔디는 금융전문가이자 교양인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자본주의식 구원을 말하면서 한계를 노출하고 만다. 탈옥한 앤디와 후일 석방되어 앤디와 합류하게 되는 레드 두 사람은 이제 돈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재산을 갖고 있다. 기독교는 불행하게도 최근의 몇몇 사례들이 보여주듯이 돈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원래가 그렇지는 않았지만 갈수록 위험할 정도로 돈에 종속되어가고 있다. 불교는 어떤가? 황금 불상의 금강처럼 밝은 그 빛은 어둠에서 깨어나자는 광명의 정각을 의미하지만 과연 꼭 그럴까?

‘쇼생크 탈출’은 철저할 정도로 자유는 돈과 등식관계에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앤디가 되찾은 것은 자유만이 아니라 그 자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원금과 이자였다. 그래서 의문이 드는 것이다. 수평선이 보이는 푸른 멕시코 해안에서도 모차르트의 이중창이 “꿈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새가 날아가는 것” 같았을까? ‘쇼생크 탈출’의 탈출은 종교와 돈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이 고민은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돈 없는 구원이 현실과 동떨어지게만 느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종교와 이타행의 의미를 되돌아보게도 할 것이다. 복권에 당첨되게 해 달고 기도하는 불자들은 없을 것이고, 자본주의의 악귀들이 모인 아수라도의 왕 아수라(阿修羅)가 깨달음에서 이타행으로 그리고 다시 더 깊은 깨달음으로 이어져야 하는 불자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사실마저 부인하면 그것은 위선일 것이다. 

정장진 문화사가 jjj1956@korea.ac.kr
 

 [1235호 / 2014년 3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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