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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나그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노랫말이 있다. 우리 인생이란 한곳에 정착된 것이 아니란 의미일 것이다. 정착이란 어떤 곳에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길게 100년이라고 볼 때, 우리가 머물며 주인행세를 할 수 있는 시간 역시 100년에 한정된다. 그 제한된 시간이 지나면 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는 둘째 치고라도 이곳에서 떠나야 한다. 떠나고 싶지 않은데 떠나야 하기에 ‘나그네’인 셈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내가 평생 살던 곳에서도 이별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내 집’, ‘내 것’ 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와 명예를 지닌 어느 유명 연예인은 평소 기부 등을 남모르게 많이 하는데, 정작 자신의 집은 전세라고 한다. 그 이유는 어차피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데, 굳이 집을 사고 땅을 넓힐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유란다. 하지만 다른 이유는 집을 넓히고 땅을 넓히는 것보다 선한 일을 한 가지라도 더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선한 일을 해야지 하고 생각을 갖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 다른 일이다.

우리는 모두 ‘나그네’
더러운 흔적보다는
아름다운 자취위해
탐욕없이 수행해야

‘법구비유경’에 우리 몸을 나그네(잠깐 머무는 삶)에 비유한 내용이 나온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몸이 있다고 하나 오래지 않아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몸이 무너지고(形壞) 마음이 떠나니(神去), 잠깐 머무는 삶(寄住) 무엇을 탐하는가?”

기주(寄住)란 ‘잠시 다른 곳에 얹혀살다’란 의미이다. 길을 가다 잠시 몸을 의탁하여 머무는 사람을 우리는 나그네라고 부른다. 기주란 바로 이 나그네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의 내용은 우리의 삶이 결국 ‘나그네’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를 보면, 우리가 평소 ‘나’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이 모두 무상하여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육체를 ‘나’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런데 예를 들어, 사고로 팔을 잃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 팔은 ‘나’일까 아닐까. 떨어져 나가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팔을 ‘나’라고 끌어안고 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이 몸에 붙어 ‘팔’로써 기능할 때 ‘나’ 혹은 ‘내 것’이라는 의미가 부여될 뿐이다. 그렇기에 나의 몸은 임시로 ‘나’ 혹은 ‘내 것’이라고 의미가 부여된 것에 불과하다. 이를 잘 표현하는 것으로 ‘몸을 벗는다.’라는 표현이 있다. 옷을 벗듯이, 이 육신을 벗는다는 것이다. 육체의 기능이 다하면, 이 육체는 더 이상 고마운 대상이 아니다. 거추장스럽고, 괴로움을 주는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러니 낡은 옷을 벗듯이 그렇게 벗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라고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마음은 육체와 달리 볼 수도 없고, 보여줄 수도 없다.

마음은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드러날 뿐이다. 마음과 육체는 서로 의지하는 상의(相依)적 관계이다. 마음이 없는 육체는 길거리에 나뒹구는 나무토막과 같고, 육체없는 마음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그 어떤 것도 ‘나’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머문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사람은 뒷사람에게 욕을 먹을 일이 없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일은 어려우니, 더러운 흔적을 남기는 것 보다는 아름다운 자취를 남기는 ‘나그네’가 좋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또한 ‘수행’이 아닐까 싶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35호 / 2014년 3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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