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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타르팔링라캉과 왕듀포드랑종

부탄 통일 중심이던 천혜요새도 화마의 한 입에 폐허로 변해

▲ ‘영광스런 성채’라는 뜻의 왕듀포드랑종. 두 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강변에 위치한 왕듀포드랑종은 천혜의 요새다. 17세기 이후에는 정치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지만 2012년 발생한 화재로 폐허가 된 후 더딘 복원으로 을씨년스런 모습이다.

수도 팀푸를 출발, 동쪽으로 향하던 그간의 여정을 이제 다시 되돌릴 때가 됐다. 부탄 중부 붐탕의 자카르종과 땀씽라캉까지가 동쪽으로 향하던 여정의 끝이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동부 부탄인 룬체나 몽갈로 들어가야 하지만 이번 일정은 여기까지다. 발길을 뒤로 돌려 서쪽으로 길을 잡는다. 지나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가야 한다.

중부 부탄을 떠나기 전 마지막 목적지는 붐탕의 타르팔링라캉이다. 조금은 외진 곳, 부탄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그리 유명한 방문지는 아니지만 파드마삼바바의 비전이 숨겨져 있다는 특별한 사원이다. 아침 일찍부터 길을 서둘러 산을 오른다. 츄메이계곡의 중턱, 해발 3800m 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사원은 티베트의 고승 롱첸 랍잠파(1308~1363)에 의해 건립됐다.

14세기 티베트에서는 까규파와 사캬파, 겔룩파 등 새로운 교의와 수행을 내세운 밀교가 보급되었고 이들은 한 결같이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문을 연 닝마파를 향해 거센 공격을 퍼부었다. 출가교단을 형성하지 않고 재가수행의 전통을 인정해온 닝마파가 인도 전통 불교에 위배된다는 비난이었다. 이때 새로운 교파들의 비판에 대응해 교의를 다듬은 인물이 바로 롱첸 랍잠파다. 그는 새로운 교파들의 장점을 수용해 옛 밀교의 교의를 정비했는데 이때부터 닝마파라는 명칭이 사용됐다. 역사가 오랜 만큼 닝마파에는 다른 교파에 없는 문헌들이 많았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롱첸 랍잠파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파드마삼바바가 숨겨놓았다는 경전과 보물, 때가 되면 그 비밀창고를 열어 불법을 부흥시킬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을 실현시킨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롱첸 랍잠파다. 그는 파드마삼바바의 환생으로도 여겨지는데 티베트불교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이 인물이 파드마삼바바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고 주석하며 집필한 곳이 바로 이곳 타르팔링라캉이라는 것이다. 그가 정확히 언제 이곳에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원에는 파드마삼바바와 롱첸 랍잠파가 수행했다는 동굴, 롱첸 랍잠파가 집필할 때 사용했다는 바위의자 등이 남아있다.

사원은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절벽아래 제비둥지처럼 붙어있다. 여러 개의 법당들이 절벽에 기대어 다닥다닥 모여 있어 규모는 매우 작은 편이다. 사원 안 손바닥만 한 마당엔 제법 큰 초르덴이 서있다.

▲ 타르팔링라캉에 주석하고 있는 체왕 린진 스님.
이곳 사원에는 예순 한 살의 체왕 린진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방으로 일행을 초대한 스님은 사원의 역사, 특히 파드마삼바바가 숨겨놓은 보물에 관한 전설을 들려주었다.

“파드마삼바바는 이 사원이 자리하고 있는 절벽에 경전과 보물, 성수, 음식을 숨겨 놓고 미래로 가는 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말법의 시대에 이르러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사라지고 더 이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사람이 없어질 때가 되면 계시를 받은 누군가가 이곳의 바위 문을 열고 음식과 물을 꺼내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세상에 펼 것입니다. 그때까지 바위는 그냥 평범한 바위로만 보이겠지요. 하지만 보물을 찾는 소임을 맡은 이의 눈에는 바위 문이 보일 것입니다.”

그때까지 그저 바위로 보이는 이 절벽을 지키는 것이 이 사원의 소임인지도 모르겠다. 체왕 린진 스님 또한 여덟 살에 출가해 여러 스승 밑에서 공부하고 18년 전 이곳에 온 후 줄곧 머물고 있다. 한때 사원에는 100여 명의 스님들이 공부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14명 뿐. 그나마 언덕 아래 새로 지은 사원에서 대부분의 스님들이 생활하기 때문에 이곳에는 젊은 시자 스님 한 명이 더 있을 뿐이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붙어 있는
제비집같이 생긴 타르팔링라캉
14세기 닝마파의 교의 다듬은
개조 롱첸 랍잠파가 머문 사원
파드마삼바바 보물 숨겨 놓은
신비의 바위문 지키는 호법도량

17세기 샤브드롱이 세운 왕듀종
교통·군사 요충지에 들어선 요새
한 때 푸나카 버금간 정치 중심지
티베트 공격도 거뜬히 막았지만
2012년 발생한 내부 화재로 전소

▲ 고색 창연한 타르팔링라캉의 내부. 왼쪽 바위 절벽 아래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는 부분이 파드마삼바바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바위문이다.

절 마당에 서있는 탑 뒤편의 바위가 한 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다. 역시나 파드마삼바바의 보물이 숨겨져 있는 장소다. 아무리 보아도 문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바위의 갈라진 틈 사이가 촉촉하게 젖어있다. 파드마삼바바가 숨겨놓은 성수가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이란다. 아직도 저 안에 물과 음식, 그리고 파드마삼바바의 비밀스런 가르침이 때를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고 보니 절벽 아래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는 부분이 문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위 문을 여는 방법은 전혀 모르겠으니 보물을 찾아낼 소임자가 아님은 분명하다.

체왕 린진 스님은 돌아서는 일행에게 남은 여정의 안녕과 축복을 기원하며 하얀 카타를 목에 걸어주었다. 사진을 한 장 찍고 싶다는 요청에 흔쾌히 마당에 서서 카메라를 응시해주더니 갑자기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 일행을 깜짝 놀라게 해준다. 그 덕에 한 바탕 웃음으로 잠시의 만남을 마무리하고 다시 서쪽으로 길을 달린다.

츄메이계곡을 출발해 해발 3425m의 요통라고개를 넘어 트롱사종을 지나고, 다시 해발 3390m 페렐라고개를 넘었다. 하루에 해발 1000m 이상 오르내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해발 3500m에 육박하는 고개를 두 개나 남고 나니 녹초가 될 지경이다. 페렐라고개에서 트롱사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은 부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라지만 비포장도로에서 흔들리는 차에 몸을 싣고 네, 다섯 시간을 달렸더니 아무리 절경이라도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그렇게 체력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껴질 즈음 한나절을 내리 달린 차가 서부 부탄의 요충지 왕듀포드랑종에 도착했다. 오는 내내 잔뜩 흐려있던 날씨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부슬부슬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비를 잔뜩 품은 구름에 물안개까지 더해져 사방의 시야가 희뿌옇게 변한 속에서 언덕 위에 거대한 성벽 같은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왕듀포드랑종이다.

푸나카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왕듀포드랑종은 ‘영광스러운 성채’라는 뜻이다. 남북으로 흘르는 푸나카강과 동서로 흐르는 당추강이 합류해 푸나크탕츄강이 되는 두물머리 강변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한 눈에 보아도 천혜의 요새다. 앞뒤로 흐르는 두 개의 강이 종을 감싸 천연 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왕듀포드랑종은 1638년 부탄의 영웅 샤브드롱에 의해 건설됐다. 팀푸 남쪽에 난공불락의 요새 심토카종을 만들어 부탄 통일의 발판을 마련한 샤브드롱은 티베트와의 치열한 전쟁 속에서도 심토카종을 모델 삼아 이곳에 종을 건설했다. 종 안에는 각종 군사시설 외에도 사원과 행정관서, 학교 등이 두루 갖추어졌다. 사방 교통의 요충지이자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지점에 자리 잡은 왕듀포드랑종은 이후 중부, 서부, 남부 부탄 통일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 파로, 푸나카, 통사에 버금가는 지역의 정치세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 왕듀포드랑종은 폐허의 성벽이다. 외벽에 희뿌옇게 남아있는 흰색 회칠 위로 붉은 벽돌에서 흘러나온 흙탕물 흘러내린 흔적이 피눈물처럼 보여 을씨년스럽다. 종을 웅장하게 장식하는 황금색 지붕이 있어야 할 자리엔 타다 남은 검은 기둥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독수리가 쪼아 먹고 남은 동물 사체의 갈비뼈같아 흉측스럽다.

지난 2012년 6월 발생한 화재로 왕듀포드랑종은 전소됐다. 외세의 침략에도 끄덕없던 천혜의 요새지만 안에서부터 시작된 한 줌 불씨는 순식간에 종의 속살을 남김없이 먹어치워 버린 것이다. 건물 외벽만 남은 종은 현재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보수는 좀처럼 진행된 것 같아 지 않다. 예산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하니 언제 보수가 끝날지도 알 수 없다.

▲ 왕듀종 건설에 동원됐던 인도인들의 마을 린첸강.

샤브드롱은 왕듀포드랑종을 건설할 당시 부탄 남부, 지금의 인도지역에서 노동자들을 끌고 와 공사에 동원했다. 무려 12년간의 대공사에 동원된 이들은 종이 완공된 후 이곳에 정착했다. 고향을 떠나온 지 이미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샤브드롱은 공사에 동원됐던 노동자들에게 왕듀포드랑종 맞은편 언덕에 집 지을 땅을 내주고 세금을 면제해주었다. 그렇게 이곳에 정착한 인도인들의 마을은 ‘린첸강’으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 눈에 보아도 동양적인 얼굴의 부탄 사람들과는 다른 서구적 얼굴. 500~600여 명이 집성촌을 만들어 살고 있는 이들은 지금까지도 하층계급으로 불리며 품을 팔아 생계를 잇는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 역시 부탄국민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시간이 멈춘 채 고여 있는 듯한 마을의 모습이 폐허로 변한 왕듀포드랑종과 묘하게 겹쳐진다.

▲ 길가 공동수도에서 손을 씻는 린첸강 주민들.

추적추적 내리는 비까지 더해져 이래저래 누추한 풍경이 더 무겁다. 이 강가에 언제쯤 다시 ‘영광스러운 성채’의 시절이 돌아올까. 그때 즈음에는 린첸강 주민들의 남루한 살림도 조금은 나아지길 기원해본다. 

왕듀=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236호 / 2014년 3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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