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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é Bella)

기자명 정장진

살육 시대에 메아리치는 생명들의 작은 외침

▲ 주인공 귀도와 그의 아들 조수아는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 갇힌다. 귀도는 아들에게 현실 같지 않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게임처럼 설명하며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요즈음 들어 일본이 부쩍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채 계속 헛소리만 해대고 있다. 이럴 때 일본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한 편 있다. 다름 아니라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8)’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많은 이들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라고 하지만, 이 영화는 “죽기 전에 여러 번 봐야 할 영화”라고 말해야 옳다.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도 아들을 낳았을 때도 봐야 하고, 그 아들이 살아갈 세상이 거짓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어갈 때도 봐야 한다. 세상이 온통 알 수 없는 흑암 같은 수수께끼 같을 때도 봐야 하고 그래서 부처님 말씀을 들어봤는데 그 역시 알쏭달쏭하기만 할 때도 이 영화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사람 중에는 수사학을 전공하는 언어학자들도 들어간다. 실제로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모든 언어는 이중, 삼중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어서 해석을 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해석을 해야만 영화 속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말과 이미지들이 돌연 서로를 연상시키며 만나 우리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이 순간을 잡지 못하면 영화는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할 수도 있다. 거의 수보리에게 설법하시는 세존처럼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말하면 모독일까?

착각과 오해 표현법 키프로코
유태인 수용소 갇힌 주인공의
현실 같지 않은 아픔들 비틀어

꿈같고 수수께끼 같은 인생들
지금 이순간에도 여전히 반복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짙은 농무가 가리고 있는 화면이 나타나면서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간단하지만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동화처럼 슬프고 놀라우며 행복이 담긴 이야기이다.” “간단하지만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자면 수사법이 필요했다. 영화 속의 거의 모든 언어와 이미지는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중, 삼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화는 시를 읊으면서 운전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러다가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났어!” 하지만 눈을 감고 시를 듣던 옆 좌석의 친구는 이 말마저도 시 속에 나오는 한 구절인지 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 브레이크가 고장 났으니 비키라고 한 팔을 들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이 제스처를 나치식 경례인 줄 안 사람들은 비키기는커녕 같이 팔을 들고 깃발을 흔들며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를 환영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독일군이 패퇴하자 수용소에 미군 탱크가 들어온다. 꼬마 조수아는 이 탱크에 올라타고 아빠가 말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어린 조수아는 탱크에서 내려 엄마에게 소리친다. “우리가 이겼어!” 나치의 손에 총살을 당한 아빠가 거짓말로 꾸며낸 1000점 따기 게임에서 이겼다는 것이다. 아빠는 약속했었다. 1000점을 따면 장난감이 아닌 진짜 탱크를 탈 수 있다고. 1939년, 나치와 손을 잡은 이탈리아가 갈수록 나치의 가혹한 폭력에 휘말려 드는 상황이 영화의 배경이다. 거리 곳곳에는 “유태인과 개는 출입금지”라는 포고문들이 나붙던 때다.

영화는 첫 장면에 이어 이렇게 연극에서 흔히 키프로코(quiproquo)로 알려진 오해와 착각의 수사법을 동원해 이야기와 장면을 이어간다. 우연의 일치를 필연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수사법은 우선은 코믹한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영화에서는 비극을 동화의 세계와 병치시키는 놀라운 효과를 낸다.

이 수사법이 극치를 이루는 장면이 다름 아니라 꼬마 조수아가 “목욕하기 싫어!”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목욕하기 싫어!”라는 이 어린 아이의 외침은 영화 후반부에 가서 “가스 샤워 하기 싫어!”라는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앞으로 돌려 다시 보게 만든다. 어린 아이들은 씻는 것을 싫어한다. 조수아는 목욕하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작은 서랍장 속에 숨는다. 이 서랍장은 수용소에 있는 철제장과 거의 똑 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다. 조수아는 물로 하는 샤워도 싫어했고 가스로 하는 샤워도 싫어한 것이다.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장난감이 아닌 진짜 탱크를 탈 수 있었으며 “우리가 이겼어!”라고 승리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장면을 들자면 독일군 장교가 막사에 들어와 지켜야 할 지침을 하달할 때 독일어를 하나도 모르는 귀도가 통역을 자청해 전혀 틀린 통역을 할 때다. 이 언어학적 모험은 오직 아들 조수아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같은 막사에 수감되어있던 다른 유태인들 모두 귀도의 엉터리 통역을 그대로 믿어버린다. 탈옥하면 그 자리에서 사살한다는 독일군 장교의 무지막지한 말을 귀도는 “1000점을 먼저 따는 사람이 우승자이며 상품은 탱크다”'라고 옮긴다. 모든 말이 완벽한 오역이다. 생기기도 험상궂게 생긴 독일군 장교가 “잼 샌드위치를 달라고 했다가 40점을 깎였다”는 헛소리를 할 리 만무하지만 아들 조수아가 들으라고 한 귀도의 오역은 완벽해서 조수아는 아버지 귀도의 거짓말을 완전히 믿게 된다.

영화에서 귀도는 말을 이중의 의미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귀도는 말을 함으로써 사물의 질서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조수아가 철제장 속에 들어가 있을 때 셰퍼드와 함께 독일병사들이 나타나고 이 군용견은 조수아 냄새를 맡고 짖어대기 시작한다. 이 광경을 본 귀도는 멀리서 주문을 외운다. “개야 제발 가라, 어서 가. 떠나라, 떠나라…….” 계속해서 떠나라는 주문을 외우자 독일병사들이 개를 데리고 다른 데로 가버린다. 그러자 귀도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한다. “고마워, 페루시오. 통했어.” 영화 첫 장면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를 몰던 시인 친구가 페루시오다. 이때만이 아니라 귀도는 언어의 신통력을 믿고 여러 번 주문을 외우곤 한다. 수용소에 끌려오기 전, 유명한 오펜바흐의 뱃노래가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의 듀엣으로 나오는 공연을 볼 때도 귀도는 일반석에 앉아 박스 좌석에 앉아있던 도라를 보고 “고개를 돌려라, 고개를 돌려라” 주문을 외운다. 그러자 정말 도라는 고개를 돌린다. ‘호프만 이야기’에 나오는 유명한 듀엣은 영화 후반부에서 귀도가 확성기를 통해 여자 수용소 쪽으로 흘려보내는 바로 그 음악이다. 낮고 애잔한 뱃노래가 반복되고 수리수리 마수리하는 주문도 반복되며 영화는 끊어질 듯 이어지며 촘촘하게 짜여 있는 것이다. 영화를 잘 보기 위해서는 그래서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거의 모든 장면에서 우연이 필연이 된다. 성모 마리아를 외치면 열쇠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마른 모자를 달라면 젖은 모자를 가져가고 마른 모자가 귀도의 머리를 찾아온다.

왜 이런 오해와 착각의 수사법인 키프로코가 필요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자면 마지막 키프로코를 봐야 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짙은 안개가 낀 밤에 어린 아들 조수아를 등에 업고 막사를 나온 귀도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전부 꿈일지도 몰라. 우린 꿈을 꾸고 있는 거야.” 그러다 못 볼 것을 보고 만다. 커다란 구덩이에 사람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전부 꿈일지도 몰라.” 그렇다. 가스 샤워를 시키고 사람의 뼈로 단추를 만들고 시체에서 나온 기름으로 비누를 만드는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는 분명 꿈이다. 악몽인 것이다. 이 광경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생은 아름다워! 말은 이중, 삼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인생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귀도가 독일군 군의관에게 수수께끼를 낸다. “백설공주가 일곱 난쟁이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이 간단한 문제를 끙끙대며 겨우 푼 군의관은 그러나 비엔나에 있는 친구가 낸 또 다른 수수께끼는 못 푼다. “뚱보에 못 생기고 노란 색을 달고 누구냐고 물으면 꽥꽥꽥. 날 따라 오면서 똥을 싼다. 나는 누구일까?” 수수께끼 강박증을 앓고 있는 군의관은 귀도를 다그친다. “자네를 위해 어젯밤 번역을 해왔네. 답이 뭔 것 같은가? 아무리 봐도 오리 같지만…. 날 좀 도와주게, 제발 도와주게. 밤엔 잠도 잘 오지 않아. 오리가 틀림없는데!”

군의관에게 불면증을 안긴 이 수수께끼의 답은 무엇일까? “백설공주가 일곱 난쟁이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거릴까요?” 답은 7분일 수도 있고 7주일, 7개월일 수도 있다. 꼭 7자가 들어갈 필요도 없다. 짜장면 7인분을 배달시키면 군만두까지 가져와도 10분이면 충분하다. “뚱보에 못 생기고 노란 색을 달고 누구냐고 물으면 꽥꽥꽥. 날 따라 오면서 똥을 싼다. 나는 누구일까?” 이 수수께끼의 답은 무엇일까? 모르긴 몰라도 나치일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잔혹하게 죽이는 시리아 내전일 수도 있고, 여인들을 위안부로 끌고 간 일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누구냐고 물으면 꽥꽥꽥 따라오면서 똥을 싼다”는 데에 있다.

스핑크스는 길가는 사람들에게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짐승은 누구인가?”라는 수수께끼를 내고 못 푸는 사람을 잡아먹었다. 답은 인간이었지만, 오이디푸스만이 이 답을 말할 수 있었다. 세존의 말만 해석에 해석을 해가면서 가슴 깊이 새겨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잘 만든 영화도 그렇다.

영화 주인공 귀도는 깨달음을 얻은 수보리였다. 아들을 위해 목숨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수보리(須菩提)! 약유선남자선여인(若有善男子善女人), 이항하사등신명포시(以恒河沙等身命布施), 약부유인(若復有人), 어차경중(於此經中), 내지수지사구게등(乃至受持四句偈等), 위타인설(爲他人說), 기복심다(其福甚多).” “수보리야, 만약 착한 남자와 착한 여인이 항하의 모래 같은 몸뚱이와 목숨을 가지고 남에게 이익케 했다고 하자.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 네 글귀 게송을 받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야기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 복이 더 많으니라.” 수보리를 닮아 보이는 귀도가 백설공주 수수께끼나 오리 수수께끼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진정으로 풀어야 수수께끼가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인골단추, 인육비누, 가스샤워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한 것이다. 이 수수께끼는 풀렸을까? 아니다. 상황은 그 반대다. 다시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강박증에 걸린 채 “누구냐고 물으면 꽥꽥꽥”하며 똥만 싸대는 멀고도 가까운 섬나라의 이상한 사람들에 의해서. 그런데도 일본과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책을 쓰라고? 수수께끼다.

정장진 문화사가 jjj1956@korea.ac.kr

 

[1237호 / 2014년 3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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