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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비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우리는 ‘가뭄이 든다.’라고 한다. 계절을 불문하고 적당한 비는 반드시 내려 주어야 생태계가 조화를 유지할 수 있다. 너무 비가 안와도, 혹은 너무 많이 내려도 사실 생태계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가뭄이 오래 지속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생기를 잃어 간다. 그래서 인간들은 다양한 방책을 마련하고자 애쓴다. 인공 강우를 시도한다든가, 담수용 댐을 건설한다든가, 해수를 담수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들이 그것이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그러한 노력은 결국 부질없는 일이 된다.

베풀지 않음은 가뭄같고
베풂의 실천은 생기넘쳐
부의 순환 조화로울 때
사회는 더욱 건강해져

우리는 종종 ‘가뭄 끝에 단비처럼’이란 표현을 쓴다. 비가 내려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어떤 일을 계기로 해결의 단초가 마련될 때 이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띠붓따까’에는 ‘비의 경(Vuṭṭhisutta)’이 있다. 경전에서는 비를 세 종류의 사람에 비유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세 종류란 무엇인가? 비를 내리지 않는 자, 한 곳에만 비를 내리는 자, 모든 곳에 비를 내리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사람이 어떻게 비를 내리지 않는 자가 되는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수행자(samaṇa), 성직자(brāhmaṇa), 거지와 방랑자(kapaṇaddhika), 부랑자(vanibbaka), 구걸하는 사람(yācaka)들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의복, 탈 것, 화환, 향료, 크림, 침대, 주거, 등불을 어떤 사람에게도 보시하지 않는다. 사람은 이렇게 비를 내리지 않는 자가 된다. …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보시하고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보시하지 않는다. … 모든 사람들에게 보시한다. 비구들이여, 사람이 이렇게 모든 곳에 비를 내리는 자가 된다.”

경의 내용을 보면, 비는 자선을 베푸는 자임을 알 수 있다. 자선을 베푸는 대상으로는 수행자와 성직자, 그리고 가난하여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의식주를 베풀어 주는 사람을 비를 내리는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특정한 대상에게만 베푸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는 대상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베풀고자 하는 사람이다.

베풀지 않는 것은 가뭄과도 같아 그 사람 주변에는 생기가 없게 된다. 반대로 베풂의 실천은 비가 내리는 것과 같아 생기가 넘쳐난다. 경전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가뭄 끝에 비가 내리듯이, 조건 없이 베풂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베풂은 부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부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기에, 한 곳에 집중되면 반드시 부족하여 곤란을 당하는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부의 불균형은 사회 구성원들 간에 불신과 갈등을 야기하여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붕괴시킨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부라고 하는 것은 잠시 소유할 수 있을 뿐,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 부의 무상함을 깊이 이해하면, 자신이 소유한 부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부 역시 부족한 곳으로 흘러야 한다. 이러한 부의 순환이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사회는 건강해진다.

베풂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마음이 담긴 베풂의 실천이 보시이고, 이것이 수행의 차원으로 승화된 것이 후대의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시바라밀인 것이다. 보시바라밀에서는 보시를 재시, 법시, 무외시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이러한 보시행의 작은 실천은 가뭄에 단비가 내려 대지를 촉촉이 적시듯이, 생명을 살찌우는 행위가 된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38호 / 2014년 3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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