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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의회 스님의 콧물

기자명 성재헌

“마음은 무엇을 으뜸 삼나” 한 마디에 깨쳐

▲ 일러스트=이승윤

선지식, 훌륭한 스승을 묘사할 때 흔히 용상(龍像)의 위엄과 사자후(獅子吼)를 거론한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이다. ‘용상(龍像)의 위엄’이란 봄바람 같은 덕화를 갖췄기에 그분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는 것이지, 의복과 물품 등으로 갖춘 외형이 용처럼 기운이 넘치고 코끼리처럼 위압적이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자후(獅子吼)’란 지혜로운 말씀이 가슴을 뒤흔들기에 그분 앞에서는 어쭙잖은 지식과 말장난이 꽁지가 빠지게 달아난다는 것이지, 목소리가 크고 살벌해 찍소리도 못하게 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 살 어린나이에 노화상(魯和尙)을 따라 집을 나선 법수(法秀)는 천하를 행각하며 훌륭한 종장들 회하에서 수학하였고, 열아홉 살에 경전시험을 통과해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교학에 뜻을 세운 법수는 강사가 되어 여러 경론을 강의하였고, 특히 ‘원각경(圓覺經)’과 ‘화엄경(華嚴經)’에 통달하였다. 법수는 문장과 구절을 분석하는 솜씨가 빼어나고 논변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날카로웠으며, 늠름한 기품에 타고난 외모 또한 출중하여 그 명성이 도성까지 자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법수는 문득 의문을 품게 되었다. 경전을 해석한 수많은 주석서들 가운데 자신이 판단하기에 가장 정밀한 해설서는 규봉종밀(圭峯宗密)선사의 초(鈔)였다. 그런데 규봉선사는 평생 교학을 연구한 분이 아니라 선을 배운 분이었다. 또한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분인 북경(北京)의 원화엄(元華嚴)화상 역시 ‘화엄경’에 통달하신 분임에도 통 강의를 하지 않으셨다. 왜 강의를 하지 않으시냐고 물으면 그분은 항상 “‘화엄경’의 깊은 뜻은 강의를 통해서는 알 수 없다”고만 대답하셨다.

법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 교학에 부처님 뜻이 완전히 담겨있다면, 원 화상처럼 교학에 통달하신 분이 교학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을 하셨을 리 없다. 선이 부처님의 뜻이 아니라면 규봉처럼 부처님 뜻에 통달하신 분은 참선이 아니라 교학을 했어야 한다.’

법수는 모순에 봉착하였다. 만약 자신이 규봉 선사와 원 화상을 인정한다면 선의 우수성과 교의 부족함도 따라서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자신은 “세존께서 언설의 가르침과는 별도로 마하가섭에게 법을 전했다”는 말이 도무지 믿기질 않았다. 오랜 갈등 끝에 법수는 드디어 강석을 파하고 행장을 꾸렸다. 갑작스런 행보에 동료들이 의아해하자 법수가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언설의 가르침 외에 따로 전한 법이 있다고 선종에서 떠드는데, 그들의 소굴로 가서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그들 말대로 정말 별도로 전한 법이 있다면 내가 그것을 배워오겠다. 하지만 만약 그런 것이 없다면, 헛소리로 불법을 어지럽히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그 마구니들을 몽땅 밟아 죽여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겠다.”

당당한 걸음으로 길을 나선 법수는 수소문하였다.

“선문의 종장 중에 어느 분이 가장 훌륭하십니까?”

행각승들은 하나 같이 무위군(無為軍) 철불사(鐵佛寺)에 주석하고 계신 천의의회(天衣義懷)를 추천하였다. 기대와 두려움을 함께 품고 철불사에 도착한 법수는 의회선사를 뵙자마자 맥이 탁 풀렸다. 태양처럼 빛나는 선지식이라고 소문난 분이 몰골이 형편없었다. 풍채도 보잘것없고, 위엄스런 낯빛도 없고, 옷도 후줄근하고, 게다가 고뿔이라도 걸렸는지 흘러내린 콧물이 옷을 적실 지경이었다. 법수는 온 김에 인사나 드리고 가자 싶어 설렁설렁 절을 올렸다. 그러자 의회 스님이 콧물을 훔치고 말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사자후는커녕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은 목소리였다.

“어디서 오는 길이십니까?”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고 싶었지만, 노장이 허리까지 숙이며 공손히 묻는데 차마 그냥 나올 수는 없었다. 법수는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저기서 강사노릇 좀 하고 있습니다.”

“아, 좌주시군요. 그래, 무슨 경을 주로 강의하십니까?”

“‘화엄경’을 강의합니다.”

의회 스님은 정말 궁금한 듯 물었다.

“‘화엄경’에서는 무엇을 으뜸으로 삼습니까?”

“법계(法界)를 으뜸으로 삼습니다.”

“법계는 무엇을 으뜸으로 삼습니까?”

“마음을 으뜸으로 삼습니다.”

“마음은 무엇을 으뜸으로 삼습니까?”

순간 입이 딱 붙어버렸다. 법수의 침묵에 곧장 의회 스님의 말씀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털끝만큼만 어긋나도 천지차이로 벌어집니다.”

조용조용한 말투에 감당할 수 없는 무게와 날카로움이 실려 있었다.

법수는 고개를 숙이고 정중히 여쭈었다.

“마음은 무엇을 으뜸으로 삼습니까?”

의회 스님은 다시 코를 훌쩍거리고 조용조용 말씀하셨다.

“그건 스스로 살펴야만 합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반드시 알게 될 날이 있을 겁니다.”

뒷걸음질로 물러난 법수의 온 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대중의 허락을 받고 철불사에 머물게 된 법수는 낮밤이 없이 정진하였다.

‘마음은 무엇을 으뜸으로 삼을까?’

17일이 지난 어느 날, 곁의 스님들이 화두를 거량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백조(白兆) 스님이 보자(報慈) 스님에게 이렇게 물었다는군.

‘옛 말씀에 알음알이가 생기면 지혜가 아득하고 생각이 변하면 본체가 아득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알음알이가 생기기 전에는 어떻습니까?’

그러자 보자 스님께서 ‘아득하구나!’라고 하셨다는군.”

이 말을 듣는 순간 법수가 화들짝 깨달았다. 곧바로 방장실로 달려가 자신이 깨달은 바를 말씀드리자, 의회 스님이 환하게 웃으며 칭찬하셨다.

“그 동안 수없이 좌주들이 다녀갔지만 자네만한 법기(法器)가 없었네. 앞으로 우리 종문은 자네에게 달렸네.”

법수 스님은 8년 동안 의회 스님을 조석으로 섬기다 서주(舒州) 사면산(四面山)의 주지가 되어 세상에 나갔다. 그리고 훗날 동경(東京) 법운사(法雲寺)의 주지를 지냈으며, 운문종의 종지가 이때부터 세상에 크게 펼쳐졌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40호 / 2014년 4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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