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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탁상곰파

부탄불교 자부심 품고 절벽에서 피어난 신심의 꽃

▲ 파드마삼바바가 암호랑이 등에 올라 타고 하늘을 날아와 도착했다는 바위 절벽. 그 위에 서있는 탁상곰파는 바위 틈에 뿌리 내리고 꽃을 피운 풍란처럼 아름답고 굳건하다. 그 모습이 마치 세상을 향해 당당히 서 있는 부탄불교의 자부심 같다.

부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은 바로 탁상곰파다. 중국에 만리장성과 자금성이 있고 캄보디아에 앙코르사원, 인도네시아에 보로부두르사원이 있듯이 탁상곰파는 부탄 불교의 상징이자 부탄의 상징 그 자체다. 부탄 여정의 마지막 날 일행은 바로 그 탁상으로 향한다.

암호랑이 타고 티베트서 날아 온
파드마삼바바가 명상한 바위동굴
악마와 도깨비 제압 전설 속에는
불교 전래와 토착화 상징 담겨

카메라·가방 모두 내려놓고
가벼운 몸, 겸허한 마음 돼야
곰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해발3140m 아래는 300m 절벽
파로계곡 전경 한 눈에 들어와

1998년 대화재로 전소된 후
국민 성금으로 2005년 복원
부탄불교 상징이자 최고 성지

탁상곰파. 앞서 지나온 여정에서 만난 종이나 라캉이 아니라 곰파다. 사원과 요새, 행정기능의 복합체인 부탄 특유의 전통 건축물이 종이라면 라캉과 곰파는 둘 다 사원을 지칭하는 용어지만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라캉은 사찰과 법당의 의미를 둘 다 지닌 동시에 일반 불자들에게 개방되는 공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 마을 근처나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곳에 있다. 그러니 찾아오는 이들이 많고 그만큼 규모도 크다. 그에 비하면 곰파는 좀 더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는 은둔의 사원이다. ‘곰파’라는 단어 본래의 의미인 ‘고독한 은둔자’라는 표현에 걸맞게 깊은 계곡이나 절벽 위 등 대부분 접근이 힘든 곳에 자리하고 있다. 수행자들만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힘들수록 좋은 수행처로 여겨진다.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것 또한 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탁상은 완벽에 가까운 곰파다. 최근까지도 외부인의 곰파 내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반인들은 탁상 사원 맞은 편의 전망대에서 절벽에 붙어있는 듯 한 탁상곰파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부탄불교의 상징으로 워낙 찾아오는 이들이 많고, 또한 참배를 희망하는 이들이 많은 까닭에 지금은 엄격한 절차를 거쳐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탁상곰파가 부탄 최고의 불교성지이자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곳이 부탄불교의 개조인 파드마삼바바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탁상은 ‘호랑이 둥지’라는 뜻. 이처럼 특이한 이름 또한 파드마삼바바와 관련이 있다.

746년 붐탕의 쿠르제라캉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파드마삼바바는 이후 티베트의 국왕 치송데첸의 초청을 받아 티베트를 방문, 수많은 이적을 남기며 닝마파불교를 탄생시킨다. 그 후 파드마삼바바가 다시 부탄을 방문한다. 이 두 번째 방문 당시 파드마삼바바는 부탄의 여러 곳에 자신의 족적을 남겼는데 탁상곰파도 바로 이때 파드마삼바바가 머물렀던 곳이다.

파드마삼바바는 암호랑이를 타고 날아서 이곳에 왔다. 그리고는 인근의 악마와 도깨비들을 모두 조복시킨 후 현재의 탁상곰파가 있는 이 바위산의 동굴에서 석 달 간 명상에 들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아마도 부탄에 닝마파불교가 전해진 과정을 상징하고 있을 것이다.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닝마파불교가 전해졌고 그 중심지가 바로 이곳 탁상곰파였음이다. 이후 불교는 부탄에 단단히 뿌리내렸고 부탄의 종교와 문화 전반의 중심으로 정착 되었다. 파드마삼바바, 특히 그의 탁상곰파 방문을 부탄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호랑이 둥지’라는 이름은 당연히 파드마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 이곳에 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사실은 ‘둥지’라는 표현에 방점이 찍혀있다. ‘둥지’란 새의 보금자리에 붙여지는 이름인데 파드마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 마치 새처럼 날아왔기 때문에 ‘둥지’라는 표현이 부여된 것이다. 하지만 탁상곰파를 마주보게 되는 순간 이런 역사적 설명이 없더라도 그 모습이 새의 둥지와 다를 바 없음이 느껴질 것이다.

탁상곰파까지 가는 유일한 방법은 걷기다. 당연히 본인의 두 발로 걸어야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조랑말의 네 다리를 빌려서라도 걸어야 한다. 걷는 것 외에 다른 교통수단은 없다. 거친 산길이니 해발2600m에서 시작해 탁상곰파가 자리하고 있는 3140m까지 가려면 족히 1시간 반 가량은 잡아야 한다. 일행은 조랑말의 다리를 빌리기로 했다. 하지만 워낙 가파르고 오르내림이 많다보니 흔들리고 출렁거리는 말 위에 앉아 있기도 고역이다. 그래도 눈 앞에 펼쳐지는 수려한 풍경이 위로가 되어준다. 잘 자란 소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서있는 초입의 좌우로 굽어지는 산길을 지나 한 시간 가량 오르면 능선에 다다른다. 해발 2940m에 카페테리아가 있다. 탁상곰파와 마주하고 있는 전망대다. 맞은편 산 중턱에 매달려 있는 듯 보이는 탁상곰파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탁상곰파는 마치 바위 절벽 틈새에 뿌리를 내린 풍란 한 그루가 희고 붉은 꽃을 피워낸 듯 하다.

▲ 탁상곰파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 하늘을 뒤덮을 듯 사방으로 내걸린 타르초가 이곳이 성스러운 구역임을 말해준다. 이 계단을 지나면 더 이상의 사진 촬영은 불가능하다.

이곳부터는 말에서 내려 진짜로 걸어가야 한다. 탁상곰파가 있는 맞은편 산허리로 오르기 위해서는 가파른 능선을 따라 내려가고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과 인내심이 좋은 조랑말이라도 사람을 태우고 가기에는 위험하고 버겁다. 물론 사람이 걷기에도 만만치 않다. 해발 3000m에서의 산행이란 평지의 삶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고작 30분이지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참아내며 멈추지 않고 걸음을 옮겨야만 마침내 탁상곰파의 입구 계단에 다다를 수 있다. 이제 이 마지막 계단만 오르면 탁상곰파에 들어선다. 계단 옆 거대한 성벽처럼 솟아있는 수직의 바위절벽에서는 꽤 많은 물줄기가 떨어진다. 이 높은 산 위에 폭포가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 어떻게 곰파를 세웠을까 더 신기하고 궁금하다. 사진 촬영은 계단 위 곰파의 출입문까지만 가능하다. 촬영장비뿐 아니라 가방과 휴대전화, 심지어는 수첩과 연필까지 몽땅 입구의 보관소에 내려놓아야 한다. 입고 있는 옷가지 외에 휴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손수건과 손목에 감은 염주 정도가 고작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롯이 마음만 들고 곰파로 들어가야 한다.

▲ 탁상사원 바로 옆 폭포. 병풍처럼 둘러싸인 바위에 증폭 된 물소리가 천둥처럼 울린다.

내부는 미로와 같이 복잡하고 법당 안에는 향내가 가득하다. 탁상곰파의 중심법당은 1692년 파로의 성주였던 걀세 텐진랍게에 의해 파드마삼바바가 명상했다는 자리 위에 세워졌다. 이후 파드마삼바바가 악마를 무찌르는데 사용한 금강저가 봉안돼 있다는 ‘우겐 체모 라캉’과 천상에 있는 파드마삼바바의 궁전을 의미하는 ‘장포펠리’ 등이 세워지며 오늘날의 규모로 확장됐다. 탁상곰파 아래로는 300m에 가까운 수직 절벽이다. 그 위의 곰파는 그야말로 둥지, 꼭 제비집처럼 붙어있다. 아슬아슬하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표현이다. 법당은 절벽을 따라 이어져있다. 다닥다닥 붙어있다는 편이 더 맞을 듯 하다. 덕분에 창문에서 밖을 향해 고개를 내밀면 아래로 파로계곡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하늘을 날며 내려다보는 착각이 들 정도다. 파드마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 날아 이곳에 왔다는 전설이 제법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하늘을 날지 않고서야 이 험준한 절벽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었을까.

1646년 샤브드롱이 부탄을 순례하던 도중 탁상곰파를 참배했고 파드마삼바바의 숨겨진 경전이 발견되기도 했다. 11, 12세기 까규파의 대수행자였던 밀라레파도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탁상곰파는 1951년 화재로 일부 소실되었고 1998년 또 다시 본당이 큰 화마를 입어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2000년부터 시작된 부탄국민들의 모금운동과 이에 힘입은 대대적인 복원 공사로 2005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탁상곰파의 복원에 동참하지 않은 이가 없다할 정도다. 덕분에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부탄국민들에게 탁상곰파는 단연 최고의 성지다. 내부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성스럽게 여기는 곰파가 한낱 관광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화재의 아픔을 겪었던 만큼 다시는 그런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소지품도 지니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수긍이 간다. 그러니 그들의 지극한 신심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 모든 까다로운 규정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곰파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눈과 마음으로만 담기엔 버거울 따름이다. 절벽에 매달린 작은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파로계곡.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올려다 본 탁상곰파의 눈부시도록 흰 벽과 푸른 하늘. 누군가 그곳에 대해 묻는다면 “죽기 전에 꼭 보아야할 곳”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고서는 어찌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마음에 담고 돌아선다. 이제 다시 세상으로 내려갈 시간이다.

탁상=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240호 / 2014년 4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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