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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김노경의 다시(茶詩)

기자명 박상준

얼마 전에 당진에 계시는 독자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느냐고 하신다.

“예 그러십시오.”
“갤러리서 강아지가 컹컹 짖는 것이 법문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깊은 뜻이 있습니까?”
대답을 드렸다.
“예. 강아지가 우리 인간들에게 그대들이 하고 있는 것들이 우리와 다를 게 뭐 있느냐고 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썼습니다.”
“진묵 스님의 시에서 땅을 담요 삼는다고 했는데 다른 인터넷 자료에는 자리나 돗자리라고 많이 되어 있던데요.”
“예. 저는 이불과 한 세트로 보아서 담요라고 했습니다. 돗자리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꽃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사람들과 놀기 위해서 내려온 것 같다고 그 꼬마시인이 생각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건 제가 상상한 겁니다”

제자 읽어내지 못한 건
내 안목이 모자랐던 것
유가에서 말하길 군자란
다른사람 장점 이루어줘

그 꼬마의 엄마와 부부인 지인에게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또 생각난다. 그것도 네 다섯살 무렵이라고 했다.

“아빠 나는 돈 많이 벌거야.”
“어. 돈 많이 벌어서 뭐하려고?”
“아빠 직업 하나 사줘야지.”

아빠가 없는 자리에서 아빠가 직업이 없어서 걱정이라는 말을 듣고 아빠가 지갑 비슷한 직업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어쨌든지 세월이 좀 더 흐른 후에 그 꼬마시인을 만나면 물어볼 생각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꼼꼼하게 읽어주시는 독자님이 계시다니 전화통화를 하면서 속으로 많이 놀랐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조선시대의 여인 이옥봉의 시로 화제가 옮겨졌다.

“운강은 꿈속에서라도 옥봉의 문 앞에 가보기나 한 것일까 하셨는데요.” “예. 제가 상상으로 무정한 남정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표현해보았습니다.”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조사해보니 운강이 지은 한글시조가 있습니다.”

바싹 궁금해졌다. 과연 운강이 뭐라고 했을까. 당진에 계시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사랑한다는 말도 거짓말, 꿈에 온다는 말도 거짓말, 나같이 잠 안오면 어느 꿈에 뵈오리.”

헐! 아니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예에 이옥봉보다 더 애절한데요” 대박이다.

한중일 삼국의 공통분모인 한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폭넓은 교류를 하고 싶고 은퇴한 뒤에는 한시를 좀더 연마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통화를 끝맺음하셨다. 허나 남정네들이시여. 이 멘트를 가급적이면 써먹지 마시라.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면서 자는 모습이 스마트폰에 동영상으로 찍혀서 크게 혼쭐날 수도 있으니.

예전에 스터디 형식을 통해서 후배들과 한문불전 공부를 한 적이 있다. 그 후배들 중에 이름이 ‘지혜’인 학생도 있었고 ‘반야’인 학생도 있었다. 이 두 사람은 함께 공부를 했다. 한문해독 훈련을 시키면서 나무랐다.

“거 참, 지혜는 반야가 없고 반야는 지혜가 없으니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몇 년 전 가장 최근에는 ‘슬기’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한문 공부에 참여했다. 앞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했다.

“슬기가 지혜와 반야를 갖추어야 할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필자의 안목이 턱없이 모자랐다. 지혜에게 흘러넘치는 반야를 읽어내지 못했고 반야가 웅숭깊은 지혜를 갖추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고 슬기가 지니고 있는 지혜와 반야를 몰랐으니 나는 지혜롭지 못하고 슬기롭지도 못하고 반야와도 거리가 먼 사람이로구나. 유가에서도 군자는 ‘성인지미’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장점을 이루어준다 成人之美(성인지미)’는 뜻이다.

우전차가 나올 때가 다가왔다. 차의 장점을 이루어주는 샘물에 관한 시를 읽으면서 안으로 안으로 점검해 봐야겠다.

無窮山下泉 (무궁산하천)
普供山中侶 (보공산중려)
各持一瓢來 (각지일표래)
總得全月去 (총득전월거)

무궁무진 흘러나오는 산 아래 샘물이
산속의 벗들에게 널리 공양을 올리니
각각 표주박 하나씩 들고나와서
모두가 보름달을 떠가는구나.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40호 / 2014년 4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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