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과 빈자일등
연등과 빈자일등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4.04.15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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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캠퍼스에 화사한 봄기운이 차오르면 엄지와 검지가 울긋불긋 물든 학생들이 늘어갔다. 손끝을 물들인 색감이 최고조에 달할 쯤 교내 곳곳에 예쁜 연등이 등장했다. 음력 4월8일, 양력 5월의 부처님오신날은 그렇게 찾아왔다. 동국대 불교대학에 다니거나 불교학생회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은 학회실이나 동아리방에서 한 달 정도 연꽃과 연잎을 꼬았다. 색색의 종이들을 입으로 불어 낱장으로 만들고 끝을 모으면 연꽃과 연잎이 만들어졌다. 이것을 하얀 창호지로 바른 둥근 틀에 붙이면 아름다운 연등이 완성됐다. 형형색색 화사해진 손끝은 노고에 대한 훈장이었기에 서로를 쳐다보며 불자로서의 자부심도 높아졌다. 연등은 교내 구석구석 걸렸다. 교정에 걸렸고 동아리방에 걸렸다. 어둠이 내리면 연등은 줄을 지어 캠퍼스를 밝혔다. 환한 빛이 교내 구석구석을 어루만졌다.

가난한 여인 한 개 등이
왕 바친 1만 등보다 소중
연등도 사서 다는 시절에
봉축 의미 퇴색될까 우려


기억하건대 학창시절 부처님오신 날은 연잎을 만들면서 시작돼 연등이 꺼질 무렵 막이 내렸다. 불자들이 연등을 만들고 연등을 켜는 의미는 명확하다. 등불이 어둠을 밝히듯 연등을 밝혀 우리의 어둔 무명을 지혜의 빛으로 밝히기 위해서다. 탐욕과 악함으로 가득 찬 사바세계에 부처님께서 오심이 또한 등불이었을 것이다.

‘현우경’에는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의 등 이야기가 나온다. 내용은 이렇다.

부처님 당시에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하루는 왕과 대신, 장자들이 부처님 계신 곳을 등으로 밝혔다. 그 말을 들은 난타도 등을 밝히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가난해 꿈을 이룰 수 없었다. 난타는 절실한 마음으로 구걸을 했다. 마침내 약간의 기름을 구하자 부처님 계신 곳에 등불을 밝혔다. 난타의 등은 켤 때부터 위태했다. 사람들은 기름이 너무 적어 곧 꺼질 것이라 했다. 날이 밝자 등불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왕과 장자들의 크고 화려한 등도 기름이 다하자 곧 꺼졌다. 그러나 하나의 등불은 여전히 밝게 타올랐다. 난타가 올린 등불이었다. 목건련이 세 번이나 끄려했으나 불은 더욱 밝게 타올랐다. 부처님께서 목건련에게 말했다. 이 등불은 비록 약하지만 여인의 큰 보리심이 담겨있다. 바닷물을 쏟아 부어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빈자일등(貧者一燈)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다. 왕과 장자가 바친 만 개의 등보다 가난한 여인의 정성어린 한 개 등이 훨씬 귀함을 역설하고 있다. 세월이 변하다보니 요즘은 불자들이 직접 연등을 만들지 않는다. 비닐로 만든 연등을 켜거나 구입한 연등을 건다. 돈만 내면 사찰에서 연등을 달아준다. 사찰도 세상과 소통을 해야 하는 시절이다. 변화를 무작정 나무랄 수만은 없다. 어쩌면 시간과 공간의 여유를 잃어버린 대중들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언가 잃어버린 느낌이다. 일단 정성스럽게 연등을 만들 때의 그 뿌듯함이 사라져버렸다. 돈과 바꾼 연등에서 빈자일등의 의미를 찾아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사찰은 탐욕을 걸러내는 마지막 소도(蘇塗)여야 한다. 그런데 사찰이 서둘러 세속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 김형규 부장
올해는 가족과 직접 연등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몸으로 하는 그 수고로움으로 연등의 의미를 되새겨 볼 생각이다. 빈자일등은 아닐지라도 직접 만든 연등으로 마음 속 지혜가 조금은 밝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41호 / 2014년 4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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