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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히말라야의 품을 떠나며 [끝]

설산에 핀 연꽃들이 슬픔의 땅 티베트에도 희망 전하길

▲ 탁상곰파가 위치하고 있는 산 위로 선명한 무지개가 떴다. 인도 델리를 출발해 시킴을 거쳐 부탄까지 숨 가쁘게 이어졌던 이번 여정의 마지막 날 부탄에서 만난 선물같은 풍경이다.

후드득, 비가 오는가 싶더니 일순간 구름이 걷히고 해가 뜬다. 파로의 하늘은 천변만화다. 탁상곰파 순례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무지개가 떴다. 방금 내려온 탁상곰파 바로 위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다리가 탁상곰파로 이어진 듯하다. 부탄에서의 마지막 날,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함인가. 일행은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무지개를 바라봤다. 이제 여정을 마무리할 때다.

오랜 세월 히말라야는 인간의 범접을 허락치 않는 금단의 땅으로 여겨졌다. 희박한 산소와 춥고 건조한 기후, 가늠할 수 없는 높이와 기후변화. 이 모든 것들이 히말라야를 인간의 것이 아닌 땅으로 여기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와 무지의 산물일 뿐이다. 그 땅엔 수 천, 수 백 년 간 뿌리 내리고 혈통을 이어온 민족들이 있다. 그들이 세우고 꽃피운 문화와 왕국의 역사가 고여 있다.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티베트, 부탄, 시킴 왕국은 모두 히말라야에서 피어난 연꽃들이었다. 역사의 회오리에 꺾이고 휩쓸려 잠시 숨 죽였을지라도 그 꽃들이 뿌린 씨앗과 향기는 지금도 히말라야를 감싸고 있다. 이제 향기 그윽한 히말라야의 품을 떠나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델리를 출발해 시킴에서 부탄으로 이어진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 콜카타를 향해 떠나야 한다. 내일 아침 출발이 예정된 파로 발 콜카타 행 드룩항공의 일정표를 확인하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엔 그래서인지 진득한 아쉬움이 발걸음마다 쩍쩍 들러붙는다. 일정 내내 켜켜이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도 싶다.

일행의 축 처진 어깨가 가이드 킨레이씨 눈에 밟혔나보다. 갑자기 차를 세운다. 드룩겔종 앞이다. 드룩겔종 역시 부탄의 영웅 샤브드롱이 건설했다. 티베트와의 무역로 위에 요새를 세운 샤브드롱의 혜안은 적중했다. 1644년 벌어진 티베트와의 2차 전쟁에서 부탄은 드룩겔종을 중심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어 1648년 3차 티베트 침입 때는 이곳에 가짜 입구를 만들어 놓고 티베트군을 유인해 한 번에 전멸시키기도 했다. 부탄을 지칭하는 ‘드룩’과 승리라는 뜻의 ‘겔’이 합쳐진 종의 이름 ‘드룩겔’은 그대로 ‘부탄의 승리’라는 역사를 기념하고 있다. 부탄의 자존심이기도 한 드룩겔종은 그러나 지금 폐허로 남아있다. 1951년까지 이 지역 행정관청으로 사용됐지만 버터기름을 이용한 등불이 목조건물에 옮겨 붙으며 큰 화재로 번졌다. 오랜 역사를 품고 있던 종은 전소되고 말았다. 몇 차례 복원이 이뤄졌지만 기둥 몇 개를 세워 5층 규모의 건물을 떠받치는 정도가 고작이다. 종의 외벽은 비교적 견고하지만 주변은 폐허나 다를 바 없다. 이 종이 ‘부탄의 승리’라는 옛 명성에 걸맞는 모습으로 복원되려면 오랜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폐허나 다를 바 없지만 티베트의 침입을 막아낸 이 종의 역사는 우리 국민들에게 여전히 자부심으로 남아있습니다.”

킨레이씨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열심히 설명하며 부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강조했다.

티베트와 부탄, 그리고 시킴. 이방인에게 이 세 나라의 미묘한 삼각관계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부탄과 시킴의 역사는 모두 티베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킴은 15세기 티베트에서 벌어진 종파 간 분열과 경쟁의 혼란기에 히말라야 주변부로 이동한 닝마파 스님들에 의해 세워진 왕국이었다. 부탄 역시 티베트 까규파의 총본산인 랄룽사원에서 부탄으로 온 샤브드롱에 의해 통일 왕국의 역사를 열었으니 그 뿌리가 티베트에 닿아 있다. 시킴과 부탄의 문화 또한 티베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지역 모두 티베트불교라는 하나의 종교 아래 문화의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베트를 바라보는 이들의 감정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네팔인들의 비율이 증가하며 왕국의 자치권을 포기하고 스스로 인도의 일개 주로 편입한 시킴의 경우 불교국가였던 왕국의 흔적은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티베트가 중국에 점령된 후 티베트를 탈출한 난민들이 시킴 지역에 다수 정착하며 티베트문화권의 명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티베트 독립의 염원 또한 강렬하다. 하지만 부탄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티베트불교권이라고는 하지만 티베트에 대한 부탄 사람들의 감정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샤브드롱을 기점으로 통일 왕조가 들어선 이후 부탄과 티베트 사이에는 수차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부탄은 이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지만 티베트를 향한 부탄인들의 감정엔 두터운 앙금을 남겼다.

“티베트 독립 문제는 우리가 관심을 가질 사안이 아닙니다. 티베트는 수차례 부탄을 침입했고 부탄을 속국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부탄은 완전한 자주 국가가 되기 위해 티베트와는 다른 독창적인 복식과 문화를 만들며 독립의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티베트의 독립 또한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문제입니다.”
부탄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티베트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은 대부분 비슷했다. 달라이라마의 귀국 문제나 연일 외신을 타고 흘러나오는 티베트 내에서의 독립 요구 분신 사건도 부탄인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했다. 부탄이 오랜 세월 고수하고 있는 중립외교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부탄은 우리나라를 포함 유럽·아시아 등지의 33개국과 외교를 맺고 있다. 특히 인도와는 각별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과는 외교를 맺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강대국 간의 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도다. 티베트 문제는 중국에게 있어 아킬레스건과도 같은 민감한 사안이다. 그러니 굳이 관심을 갖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부탄은 자신들의 역사가 티베트역사, 정확히는 티베트불교사와 깊이 연관돼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티베트와의 인연을 굳이 부정하려 들지는 않는 셈이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그 지붕 아래 꽃핀 티베트불교는 오늘날 이처럼 서로 다른 현실과 고민을 안고 있는 여러 국가와 민족을 잉태하고 있다. 이 복잡한 인연이 앞으로 또 어떤 역사로 이어질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느라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새벽5시30분, 마지막까지 일행을 배웅해 준 가이드와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파로 국제공항에 들어섰다. 면세점 하나 없이 소박한 국제공항에서 간단한 출국절차를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불과 1시간 후 일행은 콜카타에 서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은둔의 왕국’을 떠나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의 한 복판으로 들어섰다. 멀미가 날 듯 하다. 명나라의 문인 진계유는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고,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다’고 했다더니 콜카타가 이처럼 낯설게 느껴질 줄이야. 몇 차례 콜카타를 방문한 기억이 있지만 이처럼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마땅히 갈 곳도 없다. 인근의 자이나교 사원인 파레시나트자인사원에 들러 천천히 둘러본다. 오늘 새벽까지만 해도 별다를 것 없이 즐기던 히말라야의 청량한 공기는 사라지고 갑자기 껑충 뛰어오른 기온과 눅눅하게 들러붙는 습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적응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할 듯 하다.

▲ 인도 콜카타 보타니칼가든의 200년 된 배년나무. 뻗어나온 가지에서 자란 줄기들이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리는 이 나무는 둘레가 400m에 달한다.

개장 시간에 맞춰 인도박물관을 찾았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를 부조로 장식한 거대한 조각품 바르후트 게이트웨이를 비롯해 간다라미술품과 인도 각지에서 옮겨온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천천히 둘러보면 오랜 시간을 보내기에 아깝지 않다. 그렇게 한 낮의 뙤약볕이 조금 사그라들 즈음 보타니칼가든으로 불리는 식물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200년 된 배년나무가 있는 곳이다. 뻗어나간 가지에서 자라난 줄기가 늘어져 땅에 닿으면 그곳에 새 뿌리를 내리는 이 나무는 주변의 둘레가 400m에 달한다. 그렇게 사방으로 뻗어나간 나무는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수백 그루의 나무가 엉켜있는 듯 보이지만 그 가지들은 모두 이어져 있다. 그러니 한 그루의 나무이기도 하다. 히말라야의 무수한 산줄기를 따라 뻗어나간 티베트불교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나간 가지들이 신심어린 땅과 만나는 순간 뿌리를 내리고 잎과 꽃을 피운 나무. 티베트불교는 각자의 대지에 뿌리내린 배년나무다. 그 나무의 생명력이 계속되는 한 슬픔의 땅으로 변한 티베트에도 언젠가는 새로운 희망이 찾아들 것이다. 결국 그들은 거대한 하나의 나무이기 때문이다.

‘희망을 가져라. 희망의 결과는 행복이니라. 저 새들까지도 언제나 바라면서 그 희망에 충만해 있으니 비록 그것은 멀고 오래더라도 끝내 희망은 이루어지리라.’ -‘본생경’ 중에서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241호 / 2014년 4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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