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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휴유암 허허당 스님

황량한 사막에 홀로 있어도 세상 푸르게 할 주인공은 ‘자신’

▲ 허허당 스님

책 첫 장을 열어 글 한 줄 직면하고는 이내 덮은 책 한 권이 있다. 허허당 스님의 잠언집 ‘바람에게 길을 물으니 네 멋대로 가라 한다’. 얼마 전, 꽃샘추위와 함께 만난 글은 이랬다.

‘사막은 사람을 푸르게 한다/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에서 사람 스스로 푸르더라/ 두려워 마라/ 그대가 지금 황량한 사막에 홀로 있어도/ 온 세상을 푸르게 할 수 있는 주인공이다’

사막 한 가운데 서 있는 쓸쓸함, 광활한 우주마저도 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개. 이 둘이 섞여 만들어 낸 묘한 감정의 그 무엇이 온 몸을 휘감았다. 책을 덮고 동네 야산의 작은 길을 걸었다.

그 언젠가 보았던 요코하마 소이치료의 ‘아아, 장엄-불교 2500년’에 담긴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아침 안개 속에서 홀로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수행자의 모습을 담은 ‘구도의 자세’. 그 구도자는 물이 말라 하상(河床)이 드러난 강을 건너 강변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비고 빈 집’이라는 허허당(虛虛堂) 스님도 ‘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진면목을 담은 듯한 저 궁극의 한마디, 고독의 끝을 마주해 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갈이다. “먼 길 걸음해 만날만한 산승이 아니라”는 스님의 사양도 아랑곳 않고 포항 비슬산 자락에 자리한 휴유암(休遊庵)을 찾아 길을 떠났다.

중학교 시절 존재 의미 탐착
졸업 후 해인사 원당암 출가
내 작품들은 놀다가 그린 것
긍정의 마음으로 그냥 살 뿐

▲ “일체만물이 생명 아닌 것이 없다”는 허허당 스님은 “진정한 진리는 생명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혹, 허허당 스님의 그림 ‘방광’을 본 적 있는가? 10만 동자가 창출해 낸 부처님이 압권이다. 그 부처님 뒤로 서린 ‘방광’은 참으로 따듯해, 보기만 해도 내면에 스며있던 순정무구의 마음 하나가 금방이라도 둥실 떠오를 것만 같다.

100만 동자가 모여 숲과 산을 이룬 작품 ‘새벽’은 이르면 올해 안에 스님의 작품 400여점과 함께 화천 파로호로 떠난다. 화천군이 스님의 미술관 ‘선화아트빌리지’를 조성하고 있는데 그 곳에 스님의 작품 전시실과 작업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리되면 스님의 작품세계는 더 넓고 깊게 확장될 터이다.

10평 남짓한 산기슭의 토굴 휴유암. 스님의 작품이 모든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앉은뱅이 작은 책상 하나에 정말이지 딱 두 사람, 많아야 세 사람이 차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만이 남아 있었다. 하나 더 있다. 딱 한 사람 누울만한 자리.

“족히 다섯 시간은 운전해 오셨을 터인데 힘드셨겠습니다.”

부드러움과 칼칼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뼈를 깎는 추위를 이겨 내고 진향 향기를 전하는 매화 같았다. 스님이 처음 붓을 든 건 30여년 전. 그 즈음 허허당 스님은 경남의 한 토굴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깨달았다는 ‘그 소식’이 사무치게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것 모르고 천 마디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생각한 스님은 1년6개월 동안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1978년 어느 날, 좌복에서 일어 난 스님은 벽송사로 들어가 붓을 들었다. 스스로 이름을 ‘허허당’으로 바꾸고는 자신이 머무는 자리를 ‘휴유암’이라 명명했다. 용궁사에 머물다 때가 이르면 안국사로 향했다가 인연 닿으면 다시 율곡사로 걸음했다. 1978년 그 때, 무슨 일일 있었던 것일까?

“부처님께서 깨달은 게 무엇일까요? 저는 ‘일체만물이 생명 아님이 없다’는 일언에 그 뜻이 오롯하게 담겨 있다 봅니다. 그러니, 살아있다는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라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그 아름다움을 품으라는 것이지요.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이 사실은 우주의 심장이 생생하게 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점(점심·點心)’을 찍은 사람에게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전하고 있음이다.
“모든 건 내 마음의 작용이라 하지요? 긍정적 마음에 나를 얹혀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됩니다. 저 역시 내 유년의 다섯 살 때처럼 놀다 가려 합니다.”

그 땐 노는 일 밖에 없었다. 시냇물 따라 거닐고 들에 핀 꽃과 담소 나누다 나무 아래서 잠들었다. 여섯 살에 접어들며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스님 표현대로 그 때부터 ‘나와 우주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오늘은 뛰어놀면 안 된다.”

“왜요?”

“마을 어른 한 분이 죽음을 맞이하셨단다.”

난생 처음으로 의문을 갖고 물었다.

“죽음이 뭔데요?”

“숨도 못 쉬고 몸이 썩는단다.”

그래선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죽으면 꽃과 나무는 누구와 논단 말인가?’ 이내 소리쳤다.

“난 안 죽어요!”

이후 자신과 자연, 자신과 우주는 더욱 멀어져가는 것만 같았다. 중학교 시절, 니체의 책에 손이 가고 헤르만 헷세에 흠뻑 빠졌다. 존재 의미를 탐착해 가던 스님은 ‘고등학교 졸업장이 꼭 필요하다면 검정고시를 보면 된다’며 중학교 졸업과 함께 향곡 스님 상좌 혜은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 원당암에서 출가했다. 스님은 지금도 5세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고 한다.

“내가 웃으면 하늘과 땅도 웃는 겁니다. 일체만물과 호흡했던 것이지요. 인생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슴 뛰게 노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내가 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그래서 스님은 자신의 그림도 ‘놀다가 그린 것일 뿐’이라 한다. 자신만의 직관세계 즉 깨달음을 선과 색으로 표현한 것이 선화(禪畵)라 한다면 허허당 스님의 작품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낙처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 여쭈어 보았다. 출가 전의 마음과 출가 후의 마음은 어떻게 다른지.

스님의 ‘출가시’를 엿보자.

‘길은 많으나 갈 길은 없고/ 사람은 많으나 진인(眞人)은 없더라/ 세상은 이미 동안(冬眼)에 잠잠한데/ 공연히/ 나 홀로 세상 가운데 섰구나’

스님은 자신이 지은 시 한 수 ‘무위’를 전했다.

‘아무도 없는 빈 절/ 달그림자 벗하며 맑은 바람 차 마시고/ 이슬 따아 얼굴 씻고 풀섶에 눕노니/ 한 마리 산새는 창공을 논다’

12·12 사건 증언 듣게 된 후
상생의 소망 담아 ‘방광’그려
생명의 존귀함·자유 전하고자
서울·부산 등서 콘서트 열어

▲ 대작 ‘100만 동자 새벽’ 부분도.

그렇다고 허허당 스님이 먼 산 바라보며 뒷짐만 쥐고 사는 건 아니다. ‘모든 성인은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혁명가요, 이단자’라며 ‘종교란 맹탕 사랑과 자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을 통철하게 깨닫고 그 아픔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스님 스스로 대중에게 설파하고 있지 않은가? 스님은 작품 ‘방광 출현’ 동기를 꺼냈다.

“영암 도갑사에 머물 때, 12·12사건을 목도했던 전라도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자주 듣게 됐지요. 경남 고령이 고향이었던 저는 먹먹해졌습니다. 군대에서 풍문으로 들었던 그 사건을 제대 후에도 ‘부처 되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외면하고 살아구나! 총탄에 쓰러져 간 뭇 생명을 위한 기도가 있어야 했습니다.”

스님은 망월동 참배 후 6개월 동안 화폭에 몸을 맡겼다.

“방광에 나툰 부처님. 미륵전 부처님과 석굴암 부처님 이미지를 제 나름대로 합성 해 그린 부처님입니다.”

그랬다! 무참한 폭력에 목숨 잃은 생명을 위한 천도 의미의 진혼곡에 전라도와 경상도의 화합, 즉 상생의 소망을 함께 담았던 것이다. 순간, 100만 동자의 ‘새벽’에도 스님 나름대로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을 것만 같았다.

“이명박 정부 당시의 광화문 촛불집회 진압 사태를 인터넷으로 보게 됐습니다. ‘또 다시 무참한 폭력이 자행되는가?’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다시 붓을 들었다. 그림을 그리던 중에 쓴 시 ‘새벽을 그리며’를 보자.

‘쉬려 해도 쉬지 못한 건/ 가슴이 하나 밖에 없는 탓이요/ 놓으려 해도 놓지 못한 건/ 하나뿐인 가슴이 타고 있기에/ 붉은 가슴이…’

장장 1년2개월의 시간이 화폭에 스며들고 나서야 완성됐다. 작품을 마치며 쓴 시 ‘새벽’ 일부분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 생명이 생명을 상처내고/ 파괴하는 얄궂은 세상/ 시대가 아프고 세월이 아파도/ 우리의 삶은 새벽이다/ 홀연히 깨어 있는 새벽이다// 빛이 허공을 때리니 허공이 운다/ 함부로 하지마라 허공도 생명이다.’

▲ ‘소리를 담는 사람’.
‘새벽’을 무대배경으로 서울, 대구, 부산에서 ‘생명의 축제’ 콘서트를 열었다. 생명의 존귀함과 생명의 자유에 대한 담론을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송형익(기타리스트), 김영동(작곡가), 이인수(대구교대 교수) 등의 지인들이 함께했다.

그러고 보니 스님이 내보인 ‘동자’의 의미가 읽혀졌다. ‘동자’는 ‘생명’이다. ‘일체만물 생명 아닌 것이 없다’는 그 생명이다. 그 생명이 모여 때로는 부처님이, 때로는 산사가, 때로는 아마존강의 여인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생명과 생명이 서로 어깨를 기대며 소통하고, 반응하며 만들어 내는 세상. 연기의 세계요, 화엄의 세계다.

그러기에 허허당 스님은 세계를 무대로 길을 떠난다. 이달 말 행선지는 아프리카다. 무엇을 얻기 위한 떠남이 아니다. 그저 이 세상에 펼쳐진 산, 강, 사람과 교감하고 싶기 때문이다. “혹, 자신의 내면을 좀 더 냉철하게 조우하고 싶어 떠나는 길이 아니냐” 여쭈어보니 미소를 보이며 한마디 이른다.

▲ ‘고향 생각’.
“어떤 비난과 칭찬에도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홀연히 떠나는 자에게는 늘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길을 떠나야겠다. 우리가 보낸 유년의 기억을 찾아서.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받아들였던 그 때의 마음을 다시 건져보는 것이다.

스님이 “정말 좋아하는 선시”라며 전한 시 한수가 청량하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그래도 오늘 밤은 스님의 시 한 수가 더 좋다.

‘물의 나라 화천/ 오늘은 파로호에서/ 이 세상 모든 별들을 낚아/ 고기밥을 줘야지/’ 내일은 이 세상 모든 별들이/ 고기 배속에서 뜨리라’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1241호 / 2014년 4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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