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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법연 스님의 간절함

기자명 성재헌

간절한 스승은 "스스로 깨쳐라" 일러줄 뿐

▲ 일러스트=이승윤

현명한 부모는 자식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다 하였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물고기를 달라며 보채는 자식에게 스스로 낚시질을 배우라고 더욱 다그친다. 그 간절한 뜻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세월이 필요하다.

선가의 스승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번민과 고난 속에서 슬기로운 생각과 현명한 행동의 지침을 찾는 이들에게 그분들은 가급적이면 말씀을 삼가셨다. 자비심이 많은 스승들일수록, 후학을 아끼는 마음이 간절한 스승일수록, 더욱 말을 삼가며 제자들을 다그쳤다.

“스스로 보라. 언제까지 내 입가에 묻은 침이나 핥아 먹을래.”   

송나라 때 청원((清遠) 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그분은 어려서부터 아이답지 않게 근엄하고 말수가 적더니 결국 출가하여 열네 살에 구족계를 받았다. 이때부터 계율을 익히고 경전을 공부하였는데, ‘법화경(法華經)’을 배우다가 큰 의문에 휩싸였다.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께서 마땅한 바에 따라 법을 설하셨지만 그 속뜻은 이해하기 어려우니라. 무엇 때문인가? 내가 무수한 방편과 갖가지 인연과 비유와 표현으로 온갖 법을 널리 설하였지만, 이 법은 사량(思量)과 분별(分別)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부처님들이라야 그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니라.”
강사스님께 여쭈었다.

“스님, 저희가 지금 배운다고 하는 것은 곧 사량하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으로는 부처님의 속뜻[意趣]을 알 수 없다니,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부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이란 것이 본래 사량과 분별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만약 사량과 분별로 당신의 뜻을 전달하실 수 없다면, 왜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수없이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까? 당신의 뜻을 말에 담을 수 없고 우리도 말을 통해 당신의 뜻을 파악할 수 없다면, 당신의 말씀을 엮은 이 경전을 배워봐야 무슨 소용입니까?”

강사스님은 당황한 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아무런 답을 못했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문에 청원 스님은 감히 좌주께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며 정중히 답을 청하자 좌주스님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제1권 ‘방편품(方便品)’을 읽었구먼? 앞으로 더 배우다 보면 저절로 알 게 될 것이야.”

“스님, 첫머리에서 생긴 의문이 뒤쪽에 가서 풀린다면, 뒤쪽에 가서 생기는 의문은 또 언제 풀어야 합니까?”

“이런 당돌한 학인을 봤나!”

좌주스님 역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을 닫았다. 물러나온 청원은 크게 탄식했다.

“글자를 아무리 많이 배우고 깊이 따져봐야 삶과 죽음의 이 중대사를 해결할 수 없구나!”

곧바로 옷가지를 챙긴 청원은 풍문을 좇아 서주(舒州) 태평산(太平山)의 법연(法演)선사를 찾아갔다. 청원은 예의를 갖춰 인사를 드리고 똑같이 질문하였다. 법연선사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 눈빛이 너무나 맑고 빛났다. 모르는 자의 눈빛이 아니라 말해주지 않을 뿐이라 생각한 청원은 그 절에 머물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청원은 여주(廬州)로 탁발을 나가게 되었다. 겨울철 양식을 모으러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는데, 때 아닌 소나기가 퍼부었다. 비 맞아 후줄근한 모양새는 둘째고, 바랑에 짊어진 곡식이 더 문제였다. 빗발을 피할 처마를 찾아 서두르던 청원은 그만 발이 삐끗해 큰 길 한가운데 고꾸라지고 말았다. 땅바닥에 곡식이 쏟아지고,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었다.

‘아, 이걸 어쩌나.’

길바닥에 주저앉은 청원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저런 염병할 놈의 하늘!”  

“뜬금없이 비는 쏟아지고 지랄이여!”

재빨리 처마 밑으로 피신했던 자들이 한마디씩 악담을 퍼부었다. 청원은 창피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 빗줄기를 쫄딱 맞으며 주섬주섬 바랑을 챙기는데, 또 한마디가 청원의 귓가로 날아왔다.

“공연히 하늘 탓하지들 마시오. 당신들 골탕 먹이려고 내리는 비가 아니니.”

그 한마디에 청원은 나름 깨달은 바가 있었다. 온 세상을 윤택하게 하는 비를 두고 제 사정과 어긋난다며 탓하는 꼴이 법화경 속 5000의 무리와 같았고, 제 발 제가 헛디뎌 넘어지고도 비를 탓하는 꼴이 범부나 이승들과 같았다. 급히 절로 돌아온 청원은 곧장 법연 스님께 찾아가 여쭈었다.

“스님, 부처님께서 열어주시고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들어가게 하신 지견이 무엇입니까?”

목소리가 우렁찼다. 자신이 깨달은 바를 법연 스님이 하시는 말씀과 비교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법연 스님은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몰라.”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찾아가 똑같이 물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법화경’을 본 자네가 더 잘 알지, 내가 어찌 알겠나. 난 자네만 못해.”

그래도 몇날 며칠 꽁무니를 쫓아다니자 법연 스님이 역정을 냈다.

“이 사람아, 말했지 않나. 난 자네만 못하다니까.”

그래도 찾아가 묻자 주장자를 세우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자네 스스로 알아내는 게 좋겠네. 더 이상 묻지 말게.”

더 물었다간 쫓겨날 판이었다. 나름 부처님의 지견을 깨달았다고 자신했던 청원은 의문만 더욱 깊어졌다. 청원은 턱까지 차오른 궁금증을 어떻게든 결판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수좌 원례(元禮) 스님을 찾아갔다.수좌는 마침 화롯불에 손을 녹이고 있었다. 그 앞에 공손히 엎드리고 여쭈었다. 

“스님, 부처님의 지견이 뭡니까?”

“방장스님께 여쭙지 왜 날 찾아왔는가?”

“여러 차례 여쭈었지요. 도무지 엉뚱한 말씀만 하시고 대답해 주시질 않습니다.”

“뭐라 시던데?”. “저 스스로 알아내라고 하시더군요.”

청원은 묵혀두었던 불만을 터트렸다.

“저 혼자 알아낼 것 같으면 이 먼 곳까지 뭐 하러 왔겠습니까? 후학들을 친절하게 깨우쳐 주지 않을 것 같으면, 스승이란 도대체 뭐하는 사람입니까?”

원례수좌는 청원의 귀를 잡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화롯불 주위를 빙빙 돌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귀를 당기고 속삭였다.

“자네 스스로 알아내게, 자네 스스로 알아내게…”

그렇게 질질 끌려 화로 주위를 돌던 청원이 성질을 내면서 수좌의 손을 뿌리쳤다.

“당신 지금 장난치는 겁니까?”

불끈 쥔 청원의 주먹을 보고도 원례수좌는 태연했다.

“자네가 나중에 깨닫게 되면, 방장스님과 내가 자네에게 얼마나 간절했는지 비로소 알게 될 거야.”

얼마 후 법연 스님이 해회선원(海會禪院)으로 옮기게 되자 청원은 바랑을 싸며 길게 탄식하였다.

“나는 그만 돌아갈란다. 힘들게 그곳까지 따라가 본들 문제가 해결될 리도 없고.”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42호 / 2014년 4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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