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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려고 찾은 절에서 좌복 적신 참회 눈물이 새 삶의 첫 발

기자명 법보신문

특별상 - 자운(법명)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제게도 세상 기준으로 보았을 때 객관적 상황이 좋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학교 졸업 후 나름 탄탄한 회사에 취업해 인정도 받고 돈도 모으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보물 같은 아이 녀석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허나 욕심이라는 단단한 껍질은 저를 그 생활에 머물러 있도록 놔두질 않았습니다. 결국 그 욕심이라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면서 제 깨달음의 단초가 된 것이죠. 아주 우연히 접한 주식투자로 인해 적지 않은 소득을 올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투자금액이 점점 더 높아지게 되면서부터 마음 속 욕심덩어리는 더욱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욕심 앞에서 제대로 된 판단과 이성이 설자리는 없었나 봅니다. 수익이 날 때보다 손해를 보는 때가 점점 더 많아져 결국 아내 몰래 저축을 깨뜨리고, 집을 담보 잡아 대출을 받고, 급기야는 회사 자금까지 사용하게 된 것이죠. 그렇게 욕심 속에서 헤매다보니 제 삶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아내와도 속 깊은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누질 못했습니다.

주식으로 올린 소득에 눈멀어
과욕부리다 회사 돈까지 손대

교통사고 위장 죽음  실패하고
영월교도소서 수감 생활 시작
관세음보살 탱화 걸린 법당서
예불·108배·불서 독서 신행

등 돌렸던 아내 원망않고 참회
신행 이어가니 가족들 돌아와

정말 간절함 담긴 기도는
스스로 변하려 노력하는 것

오히려 그 많은 돈을 날리고서도 직장에 다니는 아내가 가끔 구입하는 옷 한 벌을 갖고도 타박을 주곤 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어리석음이 너무 부끄럽고 그 숱한 고생을 견뎌온 아내에게 옷 한 벌 제대로 사주지 못한 것이 너무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 그러던 중 저의 긴 꼬리도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2010년 7월8일 목요일 오전 11시30분경 사무실 책상에서 울어대는 그 전화벨 소리가 바로 시작이었습니다. 본사로 들어와 회사 집행 자금과 관련된 특이사항을 규명하라는 그 전화….

무섭고 떨리는 마음으로 차를 몰고 나갔습니다. 마치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 마냥 이미 한두 달 전부터 생명보험에 가입을 하고 USB에 유언을 담아 아내가 어렵게 찾아낼 수 있는 공간에 미리 숨겨두었습니다. 이미 삶에 대한 의지는 완전히 꺾인 채 그저 죽을 자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렇게 내 어리석은 치부가 세상에 드러나기 직전 그저 우연한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면 최소한 아내와 아이가 빚에 쪼들려 살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한적한 국도변이며 고속도로까지 가 보았지만 무슨 질긴 인연이 그리 남았는지 쉽게 핸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도로에서 헤매다 우연하게 도착한 곳이 바로 안성에 있는 칠장사라는 절이었습니다. 절에 올라가며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꾸불꾸불 경사진 도로와 낭떠러지라 어쩌면 이곳이 내 삶을 마감할 곳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생각을 하였습니다. 해거름이 한창일 무렵 스님의 기도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부처님께서 모셔진 도량에 들어간 것은 그때가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온화한 미소의 부처님께서 내려다보시는 법당 한 쪽에서 온종일 죽을 자리를 찾아 헤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실패한 이의 지친 몸뚱이를 아래로 아래로 무너지듯 내려놓았습니다. 이마가 바닥에 닿는 순간 그때껏 살아온 제 인생의 모습 모습들이 그야말로 빨리감기를 누른 영화처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다시 몸을 일으켜 또 한 번 이마를 바닥에 대니 후회스런 감정이 가득 밀려오더군요. 가슴 한가득 채우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후회, 답답함, 아쉬움, 그런 여러 감정들 틈으로 “잘못했습니다! 제 어리석은 삶을 진심으로 반성합니다!”라는 무언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고두배를 드릴 때 내 생에 소중하게 인연 지어진 아내와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아파하고 힘들어할 모습을 떠올리자 결국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내 몸 어딘가에 그토록 무거운 눈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끊임없이 눈물이 이어지더군요. 태어나는 순간 울음으로 가득했던 내 삶이 마지막 가는 길에도 같은 모습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니 더더욱 슬프고 아팠습니다. 결국 보살님께서 건네주신 방석을 참회의 눈물로 흠뻑 적셔놓고서 제 삶의 처음이자 마지막일줄 알았던 삼배를 마쳤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 속에서 저 세상에서는 쓸 수도 없고 그동안 끊임없는 내 번뇌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던 돈이란 녀석들을 꺼내 불전함 속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길고도 짧은 절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니 간신히 산중턱에 걸려있던 해는 그새 자취를 감추고 어스름한 여명만이 절집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올라오는 길 잠시 가졌던 죽음의 유혹은 이토록 아름다운 절집을 더럽히는 행동 같아 차마 실행에 옮길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집 베란다가 보이는 곳에 주차를 해놓고 미친 사람처럼 비를 우두커니 맞으며 창가로 언뜻언뜻 비치는 아내와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많은 슬픔을 쏟아냈습니다.

결국 얼굴 한번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 이 세상에 머물러야 할 핑계는 모두 사라진 것이죠. 어느 내리막길이었습니다. 안전벨트를 풀고 가속페달을 힘 있게 밝고서 두 눈까지 감으며 달렸던 곳. 어느 순간 차는 멈추고 제 어리석은 용기도 멈추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사람들 말소리와 귀에 익숙한 사이렌 소리까지 들려오는 것을 보니 분명 저는 실패한 것입니다. 눈을 떠보니 차 앞 유리는 처참하게 깨지고 범퍼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구조대원의 도움을 받아 밖으로 나온 저는 두 발로 이상 없이 설수 있었고 두 팔 모두 움직이며 걸을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해보니 왼쪽 팔에 가벼운 찰과상과 화상흔적만이 있을 뿐 매우 건강하다는 판단을 받고서 다시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내가 안전하다는 걸 알고서 흐느끼는 아내의 눈물이 전해지는 것을 보며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난생 처음 겪는 경험들이 줄이어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회사 감사팀 조사, 경찰조사, 유치장, 검찰조사, 법원, 재판, 그리고 4년6월의 형을 언도받고 구속되는 것까지. 삶의 경계에까지 다녀온 자의 여유에서였을까요? 유치장에 입감된 첫날 폐쇄 공포증 비슷한 고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튿날부터 4년여가 흐른 지금까지 매일매일 참회록을 쓰면서 제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재판을 받는 그 6개월여의 시간동안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읽었던 여러 종교를 아우른 책들 중에서 용타 스님께서 쓰신 ‘마음알기, 다루기, 나누기’란 책에서 그간 의문시되었던 여러 해답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應無所住 而生其心(마음이 일체에 머문바 없으니 자유롭고 그 자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일을 하니 그것이면 전부이지 않겠는가).’ 마치 갈증처럼 끊임없이 솟아나는 욕심의 근원이 가족들과 함께 잘살아보자는 것이 아닌 결국 나 혼자만의 짙은 욕심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조금씩 경험과 책을 통해 불자로서의 삶에 녹아들 무렵 귀한 인연으로 전국의 수많은 교정시설 중 자치제 전담인 영월교도소에 수감되게 된 것입니다. 이곳은 일과생활 이후 약 2시간 자율 활동이 주어져 종교 활동이 보장된 곳입니다. 그리하여 2011년 3월 이곳에 온 후로 지금껏 관세음보살탱화가 걸려 있는 작은 불교 방에서 저녁 예불을 드리고 108배를 드리면서 참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절을 통하여 육신의 건강을 회복함은 물론 마음의 건강까지 더불어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시련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토록 믿었던 친구의 무관심과 그 힘든 시간을 함께 해주었던 아내의 결별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운해 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 자신을 돌아보면 그 또한 내가 안고 살아야 할 나의 몫이라고 인정하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리석은 제게 복을 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의 작은 능력으로 이웃들의 상처를 함께 보듬을 수 있기를 바라며, 욕심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떠한 순간에도 인욕하며 견뎌낼 수 있는 지혜로움을 달라고…!

그리고 아내와 아이를 포함한 나로 인해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건강과 지혜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렇게 불자로서의 삶이 한해 두해 축적될수록 제 얼굴의 미소가 자연스러워지고 화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으며,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결국은 그 미워하는 사람 본인에게 주어지는 제2의 화살임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녁 예불과 108배를 드리고 매주 한번 영월지역 사찰 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불서를 읽으며 보낸 지난 4년여의 세월은 내 남은 생의 방향을 알려주었음은 물론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재회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 아내에게서 다시 한 번 나를 믿어 보겠다는 연락이 온 것입니다. 아내와 아이가 이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는데, 더불어 제 곁에 함께 해준다고 하니 이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그 같은 아내의 응원으로 다시 한 번 부처님의 가피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객관적인 상황에서 변화된 것은 없습니다. 단지 지금 자리에서 제 마음만 바꾸었을 뿐. 불자라는 그 이름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기도하고, 절하고, 또 스스로 생각한 것 뿐. 그 작은 노력들이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물론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즐겁게 희망이 있는 그런 현실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세상 누군가는 여러 가지 감당 못할 듯한 사유로 인해 죽음을 꿈꾸고 또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절실한 마음으로 알려드립니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절을 찾아 삼배를 드려보시라고…. 이 세상 마지막 인사라는 간절함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나면 분명 문제의 본질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며, 더불어 부처님의 인자한 미소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정말 간절함이 담긴 기도는 무언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변화하고 노력하겠다는 다짐임을 기억하세요! 그것이 바로 제가 걷고 있는 불자의 길입니다. 그 길 함께 가시지 않으실래요?

[1243호 / 2014년 4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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