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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영원 스님의 안내

기자명 성재헌

청원, 옛 선사 부뚜막 부수는 모습서 깨쳐

▲ 일러스트=이승윤

대학원시절,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를 읽고 진전사지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 도의국사 부도 앞에서 느꼈던 전율은 지금도 생생하다. 분명 몇 해 전에도 다녀간 곳이었지만, 전혀 그곳이 아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스스로 심미안이 없다면 심미안을 가진 사람을 쫓아가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 또한 마찬가지다. 훌륭한 사람을 곁에 두고도, 그 아름다움과 향기에 젖을 기회를 놓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럴 때, 유능한 인간해설사가 곁에 있다면 그것 역시 홍복이라 하겠다.

법연 스님께 하직을 고한 청원은 장산(蔣山)으로 가서 하안거를 보냈다. 그곳에서 뜻밖에도 회당조심(晦堂祖心)선사의 제자 영원(靈源) 스님을 만났다. 영원 스님은 명철한 안목과 돈후한 인품으로 제방에 명성이 자자한 구참 납자였다. 여름 한철을 보내며 영원 스님에 대한 청원의 신뢰와 존경은 나날이 더해갔다. 안거가 끝나갈 무렵, 두 사람이 우연히 같은 나무그늘에서 쉬게 되었다. 청원이 영원 스님에게 말을 건넸다.

“스님께서는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아직 마음에 둔 곳은 없네. 자넨 어디로 갈 생각인가?”

“근래 서울에 계신다는 한 어른의 어록을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그 분과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청원은 어록의 구절을 읊어대면서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바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한바탕 연설이 끝나고, 한참을 묵묵히 매미소리만 듣던 영원 스님이 조용히 물었다.

“자네 행각한 지 오래되었나?”

“아닙니다. 이번이 두 번째 안거입니다.”

“자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분은 자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네.”

“왜죠?”

“나도 그분을 뵌 적이 있지. 소견이 막 열리기 시작한 자네에게 그럴싸하게 보일런지 모르지만, 그분은 알음알이로 이해한 수준이지 철저히 증득하신 분은 아니야.”

남몰래 쌓아온 믿음 덕분인지 ‘소견이 막 열리기 시작했다’는 자신에 대한 평이 그리 불쾌하게 들리지 않았다. 청원이 물었다.

“그럼, 스님께서 훌륭하신 분을 추천해 주십시오.”

“가까운 곳에 법연 스님이 계시지. 그분을 찾아뵙게.”

청원이 손사래를 쳤다.

“지난 겨울을 법연 스님 회상에서 보냈습니다. 아무리 물어도 가르쳐 주지 않는데, 그게 무슨 스승입니까?”

청원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말하였다. 영원 스님이 나직이 되물었다.

“법원 스님께서 자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멈칫하는 청원을 영원 스님이 따끔하게 나무랐다.

“자네 귀머거리인가? 법원 스님께서 ‘자네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고 몇 번을 얘기하고, 원례수좌가 귀를 잡아당기고 ‘자네 스스로 알라내라’고 맴을 돌면서 일러주었는데도 못 알아들었단 말인가?”

길게 한숨을 쉬고, 영원 스님이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갔다.

“부처님 지견은 결국 자네가 스스로 증득해야 해.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 보았자 결국 말일 뿐이지. 부처님께서도 ‘이 법은 사량(思量)과 분별(分別)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씀하셨지 않은가.
법연 스님이 경론을 모르는 분도 아니고, 설명을 못하시는 분도 아니야. 하지 않을 뿐이야. 그래 봐야 상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불법이 지식자랑 말자랑 하자는 것인가? 참된 스승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야. 저들도 나처럼 진실에 눈을 뜨는 것.”

매미소리가 잦아들고 다시 말이 이어졌다. “제방을 다니다보면 자네가 물었다는 ‘부처님의 지견’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아. 하지만 신중히 살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거나 시비를 가리는 세속의 담론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또 미사여구로 적당히 치장해 넘어가거나 옛사람의 말씀을 기억했다가 앵무새처럼 읊어대기도 하지. 명심하게, 그런 사람들은 자네를 산채로 땅에 묻어버리는 사람들이야.
법원 스님은 그런 분이 아니야. 자네는 통 열리지 않는 스님의 입만 쳐다보고, 부드러운 강물처럼 흐르는 스님의 일상은 왜 보지 못했는가? 이른 새벽종이 울리고부터 깊은 밤 촛불이 꺼질 때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일과를 수행하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얼굴 한번 찡그리는 법이 없는 것은 왜 보지 못했는가? 아랫사람에게 항상 먼저 고개를 숙이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일깨울까 항상 고민하는 모습은 왜 보지 못했는가? 내 언젠가 스님께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지.
‘스님,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스님이 그러시더군.
‘나에게 별반 깨달음이 없는데 어떻게 가르치려 들 수 있겠나. 나는 참으로 불법 문중의 죄인일세.’ ”

영원 스님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말했다.

“내 제법 오랜 세월 제방을 다녀보았지만 여태 법연 스님만한 분을 보지 못했네. 자네가 알음알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꼭 법연 스님께 돌아가게.”

해제를 하고 청원은 곧장 해회선원으로 달려갔다.

법연 스님은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청원에게 전알(典謁) 소임을 맡겼다. 조용히 참구에 참구를 더하며 가을이 가고 겨울이 찾아왔다. 깊은 밤 홀로 앉아 좌선하던 청원이 선정에서 깨어났다. 한기가 가득하고, 화로의 불은 진즉 꺼져있었다. 부저가락으로 이리저리 화로를 뒤적거리다 콩알만 한 불씨를 발견한 순간, 알 수 없는 황홀함에 환희심이 솟아올랐다.

깊숙이 파헤치니
요게 있었네.
한평생의 일이
이와 같을 뿐.

벌떡 일어난 청원은 책상의 ‘전등록’을 잡고 아무 쪽이나 펼쳐들었다. 마침 파조타(破竈墮)선사가 주장자로 부뚜막을 두들겨 부수는 대목이었다.

“조왕신아, 너의 신령함이 어디서 왔단 말인가? 깨져라, 무너져라.”

청원은 홀연히 크게 깨닫고 게송을 한 수 지었다.

재잘재잘 숲속에서 새들이 우는데 / 옷을 껴입고 밤새도록 좌선하였네. / 불씨를 뒤적이다 평생의 일 깨닫고 / 영혼을 추궁해보니 결국 부서진 부뚜막. / 명백한 이 일을 사람들 스스로 미혹하니 / 담담한 이 곡조에 누가 화답할 수 있을까 / 이를 마음에 새겨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 문이 활짝 열렸건만 지나는 사람 적구나.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43호 / 2014년 4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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