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노팅힐’, 로맨틱 코미디 속의 불성
9. ‘노팅힐’, 로맨틱 코미디 속의 불성
  • 정장진
  • 승인 2014.04.2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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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같은 진흙탕 현실서 꽃 핀 사랑의 값어치는 진짜

▲ 영화에는 샤갈이 그린 ‘결혼(1950)’ 혹은 ‘신부’ 라고 불리기도 하는 한 점의 작품이 등장한다. 톱스타 여배우는 가짜 그림을 걸어놓은 남자주인공에게 진짜를 선물하고 둘은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다.

대중성과 상업성을 벗어나기 힘든 것이 영화다. 그래서 ‘우선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 영화의 본질이라는 주장에 딱히 반론을 펴기가 어렵다. “영화는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보고 나서 남는 것을 주어야 하지 않느냐, 쓰레기 같은 영화가 너무 많지 않느냐”는 등의 비판도 가능하지만, 문화산업과 한류의 핵심 영역이 된 이후 이런 비판이 영화의 대중성과 상업성 앞에서는 종종 설득력을 잃고 만다.

이렇게 영화를 대하는 두 태도와 생각을 극단적으로 맞서게 하는 영화 장르들 중 하나가 바로 로맨틱 코미디로 분류되는 알콩달콩한 영화들이다. 남녀 모두가 흔쾌히 즐길 수 있는 장르인 ‘로맨틱 코미디(romantic comedy)’라는 소장르로 분류되는 이런 신파조 영화들은 굵고 통렬한 감동이나 오래 지속되는 깨달음을 주는 대신, 잘 만든 것들일 경우, 일상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탄탄한 줄거리로 묶어서 사랑의 결말을 궁금해 하는 관객들의 마음을 졸였다 풀었다 하며 노련한 연출 솜씨를 보여주곤 한다. 로맨틱 코미디는 별도의 장르이기도 하지만 많은 영화들 속에 삽입되어서 영화를 이끌어가는 스토리보드의 바탕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는 영화를 대중예술로 보는 관점에서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는 장르임에는 틀림없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귀여운 여인’ 등은 그냥 보면 되는, 별도의 해석이 필요 없는 작품들인 것이다. 하지만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닌데, ‘노팅힐’이 바로 이런 예외에 속하는 영화다.

톱스타와 서점주인 사랑 얘기
사회적 위치 넘은 꿈같은 인연

남녀 알콩달콩 연애스토리
다르게 보면 메시지 담겨
영화 속 등장하는 사걀 그림
진짜와 가짜 그림 두 점 주목

톱스타인 여배우와 평범한 남자의 사랑을 다루는 이 영화는 만남, 이별, 재결합으로 이어지는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간직하고 있는 영화로 볼 수도 있다. 이 영화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본다는 말은 불자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님들이 ‘노팅힐’ 같은 영화를 보려고 영화관까지 가거나 DVD를 사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불자들은 영화관이나 혹은 집에서 이 영화를 모르긴 몰라도 서너 번은 봤을 것이다. 과연 불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또, 다시 본다면 어떤 관점에서 불교식으로 감상을 할 수 있을까?

넓은 마음을 갖고 있는 불자들이라면 이 영화를 뻔한 영화라고 예단을 하면서 스토리만 좇아가며 가볍게 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조금 예리한 눈과 예민한 마음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들어오는 소품은 바로 영화에서 예상 밖의 중요성을 지닌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화가인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그림 두 점이다.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은 샤갈의 작품이 한 점 등장하지 않았나 의아해할 것이다. 맞다. 영화에는 샤갈이 그린 ‘결혼’(1950) 혹은 ‘신부’라고 불리기도 하는 한 점의 작품이 등장한다. 갈등을 딛고 다시 만난 안나(줄리아 로버츠 분)가 윌리엄(휴 그랜트 분)의 집에 와서 차를 마시는 장면에서 배경에 등장한다. 이 그림의 제목만 봐도 영화의 해피엔딩을 점칠 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영화 속에서는 이 그림이 한 번은 가짜로 또 한 번은 진짜로 두 번 등장한다는 점이다.

여행책만 파는 서점 주인 윌리엄의 집에 걸려있던 것은 프린팅 된 10만원도 안 나가는 포스터에 불과하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가서 두 주인공이 이별을 하는 장면에 나오는 그림은 진짜 샤갈 그림이다. 모르긴 몰라도 액자에 넣어 안나가 들고 온 진짜 그림 가격은 거의 수십억원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누구도 이 그림의 가격을 묻지 않는다. 주인공 윌리엄의 괴짜 백수 친구로, 엉뚱한 일만 골라서 저지르는 스파이크 조차 진짜라는 것만 확인할 뿐, 수십억에 달하는 그림 값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않고 팔아서 현금화 하자는 타산적인 말도 하지 않는다.

가짜 그림과 진짜 그림은 영화에서 각각 인기를 먹고 사는 유명 배우의 가짜 인생, 가짜 사랑과 인간 대 인간의 진짜 사랑을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 그림을 들고 온 그날 안나는 고백한다. “인기라는 것이 모두 다 엉터리에요….” 톱스타를 사랑하게 된 평범한 책 방 주인 윌리엄의 입장에서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는 고백처럼 자신이 느끼는 사랑의 진정성을 스스로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안나가 자신의 아파트 벽에 걸려있던 고가의 진짜 샤갈 그림을 마지막 선물로 윌리엄에게 주고 가는 장면에 이르러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진짜 그림이 진짜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이 장면에서 그림 값을 물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소품이지만 샤갈의 그림은 이렇게 해서 영화에서 의외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바로 불자들이 잠시 시선을 멈추어야 할 대목이다.

“노팅힐은 비버리힐스가 아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이 말이 아니더라도 적자만 보는 책방 주인인 윌리엄이 사는 런던의 노팅힐은 이민자들의 축제로 유명한 허름한 동네다. 이 허름한 동네에서도 동네 못지않게 허름한 책방이 영화의 주 무대인데, 윌리엄의 친구들 모두 동네를 닮아서 그런지 모두들 성공하고는 먼 인생들을 살아간다. 반신불구가 된 여자 동창생, 백수건달로 철딱서니 없는 친구인 스파이크, 해고 당하기 직전의 증권사 직원, 식당 문을 열었다가 망하고 만 친구….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윌리엄의 여동생 생일날 만난 이 친구들은 식탁에 둘러 앉아 서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내기를 할 정도다.

그런데 이들 지극히 평범한 친구들 사이에는 서로를 위로하고 믿는 깊은 우정과 신뢰가 존재한다. 누구도 아무도 업신여기지 않는다. 특히 엽기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친구 스파이크와 주인공인 윌리엄이 동거하는 장면에서 이런 친구들 사이의 우정은 정점에 달한다. 이 깊은 우정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뜻이 들어가 있다. 우정이 갖고 있는 그 이상의 뜻은 앞서 말한 진짜 샤갈의 그림 값을 묻지 않는 침묵과 관련되어 있다.

윌리엄은 물론이고 친구들도 모두 안나가 놓고 간 진짜 그림의 값을 묻지 않았다. 친구들 사이의 우정은 돈하고는, 나아가 사회적 지위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사랑도 그래야만 했기에 안나나 윌리엄은 깊은 고민을 했고 갈등을 했을 것이다.

수보리라면 영화 ‘노팅힐’을 아마도 우리처럼 봤을 것이다. 샤갈 그림도 이 영화처럼 봐야 한다. 꿈속 장면처럼 그림에서는 염소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신랑은 하늘로 날아와 신부를 포옹한다. 그림 속의 꽃을 든 신부는 어딘지 영화 속의 안나를 닮았다. 엽기적인 친구 스파이크, 톱스타가 자신의 집에서 자고 목욕을 했다고 떠들고 다닌 끝에 신문기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게 만든 이 앞뒤 생각이 없는 친구는 어딘지 샤갈 그림 속의 염소를 닮았다.

수보리라면 이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에서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전혀 다른 것을 볼 것이다. 두 사람이 사랑을 키우면서 남의 집 정원에 몰래 들어가 봤던 긴 나무 벤치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 다시 나온다. 평범한 부부가 된 두 연인, 안나는 이제 배가 불룩하게 올라온 상태에서 아이의 출생을 기다리고 있다. 허름한 벽돌집과 번잡한 거리,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노팅힐은 영화 세트가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 있어야 할 것은 많은 돈도, 높은 사회적 지위도 아니다. 가짜 그림도 아니다. 톱스타를 사랑하고 톱스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어줍지 않은 가짜 사랑도 아니다. 무언가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보루로서, 삶의 오래 된 깊이로부터 나오는 일상의 진솔하고 단순한 그 무엇이 걸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졸작도 아닌 이 영화 속에는 들어있는 것이다.

샤갈의 그림은 이 진솔하고 단순한 그 무엇을 그린 그림이다. 이 진솔하고 단순한 그 무엇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다. 감독은 샤갈 그림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얻어왔고 영화에서 두 주인공 안나와 윌리엄이 서로에게 느끼는 사랑의 진정성을 그림을 통해 풀어냈지만, 많은 이들은 그림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오직 그림과 영화로만 말할 수 있는 진정하고 단순한 그 무엇을 놓치고 만 것이다.

오직 수보리만이 영화에 앞서 그림이 먼저 던진 화두를 풀 수 있었을 뿐이다. “세존이시여, 붓다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다는 것이 얻으신 게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야,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조그만 것도 얻은 게 없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한다.”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는 이 깨달음은 단순히 공(空)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와 이 세상의 관계가 아니라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나와 내가 없는 세상의 관계다. 생(生)과 무(無)의 이 섬뜩한 관계의 깨달음으로부터 다시 돌아와 오늘을 보면 일상의 모든 순간순간이 황홀하며 귀중할 것이고 그런 만큼 미망에 사로잡힌 자들의 허망함도 보이고 아파하는 이들의 아픔도 보인다. 허망함을 질타하고 아파하는 이들과 같이 아파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돈과 신분과 명성이 있고 없음을 떠나 친구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하물며 세존조차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그 그림 진짜냐고 다그치면서 그림 값이나 묻고 있으면 그것은 마귀나 할 짓이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그림 값을 묻지 못하게 한 것이다.

세존이 그러지 않으셨나. “수보리야, 보살에게 자아라는 생각, 인간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목숨이라는 생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다.” 세존의 말씀을 로맨틱 코미디에 적용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겠지만, 잘난 몸 못난 놈, 가진 놈 못 가진 놈이 함께 사는 세계, 염소가 바이올린을 켜고, 진짜 그림을 받아도 그림 값을 묻지 않는 세계는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 그 이상인 것이다. 공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자비 밖에 없다. 또 자비는 보살이 되는 거의 유일한 길일 것이다. 중생은 모두 친구들인 것이다. 너무나도 힘든 일이지만 사랑과 자비 밖에는 방법이 없다. 세존의 말씀이 이것 아니었겠는가.

정장진 문화사가 jjj1956@korea.ac.kr

[1243호 / 2014년 4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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