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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나무] 3. 사찰과의 인연

기자명 법보신문

수 많은 고승 ‘지팡이 설화’ 남긴 사찰의 생명문화재

용문사 의상대사 은행나무 등
사찰 나무엔 다양한 전설 가득
장구한 수명·재생성이 특징

천연기념물 중 사찰 소유 28건
은행·구충제등  사찰 경제 큰  역할

사찰이 현대인 심신 치료하듯
나무·숲도 병 치유할 생명자원

▲ 사찰의 나무와 숲이 현대인의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생명자원이 될 수도 있기에 사찰의 문화유산뿐 아니라 자연 유산인 나무와 숲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운문사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180호)

불교는 나무(숲)의 종교라 할 수 있다. 불경에는 석가세존의 수도(修道), 정각(正覺), 성도(成道), 입적(入寂)의 모든 과정에 나무가 등장한다. 석가모니는 사라수 숲에서 태어나고,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과 득도의 과정을 거쳤으며, 입적도 역시 사라수 아래에서 진행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불가에서는 석가모니와 관련을 맺은 나무들을 성수(聖樹), 각수(覺樹), 도수(道樹), 사유수(思惟樹), 불수(佛樹)등으로 부르고, 총칭하는 집합명사로 보리수(菩提樹)라 부르기도 한다.

석가모니의 생애와 관련하여 나무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유는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인도의 비하르(Bihar)지역이 열대지방인 관계로 수도생활을 하는 수도자에게 폭염과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하는데 나무와 숲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수행자들이 수도생활로 득도를 하게 되면, 그 처소인 나무와 주변 숲은 성소(聖所)나 성지(聖地)가 되는 한편, 이들 장소를 오랫동안 보호와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음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천연기념물 88호)

설화 속 나무
사찰과 나무와의 관계는 도량(道場)이라는 단어로도 확인된다. 부처와 보살이 머무는 신성한 공간이라는 의미를 지닌 도량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成道)한 자리를 일컫는 보리도량(菩提道場)에서 유래되었다. 보리수가 법륜(法輪), 원상(圓相)과 함께 불상이 건립되기 전, 석가모니의 서거 이후 500여 년 동안 부처님을 상징하는 조형으로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찰과 나무는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래서 오래된 가람에는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한 여러 종류의 명목(名木)들이 많다. 그 살아 있는 사례가 고승대덕이 사용하던 지팡이에서 유래된 명목들이다. 바로 용문사의 의상대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 송광사 천자암의 담당국사 쌍향수(천연기념물 88호), 적천사의 보조국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482호), 해인사의 고운 최치원 전나무(천연기념물 541호) 등이 지팡이 설화를 간직한 사찰의 생명문화재, 자연유산이다.

수백 년 동안 사찰에서 전승되고 있는 고승대덕의 지팡이 설화에서 유래된 명목이 오늘날까지 보전되고 있는 이유는 나무만이 간직한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바로 장구한 수명, 거대한 덩치, 우주적 리듬의 재현, 재생성과 다산성이 그러한 특성이다. 나무는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보다 더 거대한 덩치로 수천 년의 수명을 가지고, 봄이면 싹을 틔우고, 여름이면 꽃을 피우며, 가을이면 잎을 떨어트리는 우주적 리듬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독특한 생명체이다.

지팡이 설화에서 유래된 사찰의 명목은 불교의 정착과 전파를 위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숭배하던 옛 조상들의 토속신앙을 배척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수용한 사례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가람은 천년의 세월동안 인간과 나무와의 아름다운 관계를 지속시켜준 현장이자 생명문화유산의 보고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찰과 천연기념물
사찰은 국보와 보물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유산의 70% 이상이, 그리고 국보와 보물의 절반이상이 불교문화유산임을 감안하면 우리 문화에 자리 잡은 불교문화유산의 위상을 알 수 있다. 그 위상에 걸맞게 불교문화유산은 끊임없이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음에 비해, 같은 문화재임에도 자연유산인 천연기념물의 유래나 가치를 옳게 인식하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그래서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불자들조차 불상, 탑, 건축물, 불화, 조각 등의 문화유산만을 문화재로 인식할 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와 숲과 같은 자연유산을 문화재로 인식하는 이는 많지 않다. 불교문화유산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우리 역사와 정신문화의 맥을 바르게 짚는 지름길이듯이, 자연유산인 사찰의 천연기념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조상들의 수목관과 자연관을 엿볼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천연기념물은 ‘학술적으로나 관상적으로 그 가치가 높아 그 보호와 보존을 법률로 지정한 동물(서식지), 식물(자생지) 및 지질, 광물들’을 일컫는 국가지정문화재이다. 오늘날 지정 보호되고 있는 455건의 천연기념물 중, 식물은 총 263건이다. 이들 중 사찰이 보유하고 있는 천연기념물은 28건으로 전체의 10.6%에 이른다. 국토면적의 0.7%미만인 사찰소유 토지(약 6만3천ha)에서 천연기념물(식물)의 10.6%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토지 면적에 비해 15.3배나  많은 자연유산을 사찰이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한국의 자연유산보전에 사찰의 기여가 지대함을 뜻한다. 이 단적인 사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 4건 중 3건(화엄사 매화, 백양사 고불매, 선암사 선암매)을 사찰이 보유하고 있는 사실로도 확인된다.

▲ 백양사 고불매.(천연기념물 486호)

전국의 사찰에서 보유하고 있는 천연기념물(식물)은 모두 28건으로, 전라남도의 사찰(12건)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전라북도의 사찰(5건)이다. 충남·북 및 경남·북의 사찰이 각각 2건씩, 서울, 부산, 경기도의 사찰은 각각 1건씩의 천연기념물(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전남지방의 사찰들이 다른 지방의 사찰에 비해 특히 많은 건수의 천연기념물(식물)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는 첫째, 남해안의 온난한 기후조건에서 생육하고 있는 학술가치가 높은 동백나무, 비자나무, 산닥나무, 참식나무 등이 예로부터 사찰에 자라고 있었으며, 둘째, 사찰이 독립적으로 또는 왕실에 바칠 조공특산품의 일환으로 비자나무, 산닥나무, 올벚나무를 오래전부터 보전하거나 재배해 왔기 때문이다. 셋째, 이들 식물의 생육특성은 학술적 측면에서 천연기념물의 선정 기준인 한정된 분포성과 역사성에 잘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 선운사 장사송.(천연기념물 354호)

사찰이 보유하고 있는 28건의 천연기념물(식물) 중, 은행나무(용문사, 영국사, 보석사, 적천사), 소나무(법주사, 운문사, 선운사), 백송(조계사), 향나무(천자암), 전나무(천황사, 해인사), 매화나무(백양사, 화엄사, 선암사), 청실배나무(은수사), 올벚나무(화엄사), 호두나무(광덕사) 등 9수종은 개별수종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숲이나 군락의 형태로 지정된 사찰의 천연기념물은 동백나무 숲(백련사, 선운사, 옥룡사), 비자나무 숲(금탑사, 개천사, 백양사), 상록수림(진도 쌍계사), 등나무 군락(범어사), 단풍나무 숲(문수사), 산닥나무 자생지(화방사), 참식나무 자생지(불갑사) 등 7건이다.

사찰의 천연기념물(식물) 중, 지정건수가 가장 많은 수종은 은행나무(4건)이고, 그 다음으로 매화(3건), 소나무(3건), 전나무(2건) 순이며, 숲으로는 동백나무 숲(3건)과 비자나무 숲(3건)이다. 나무 중에 은행나무가 가장 많이 지정되었고, 숲의 형태는 동백나무와 비자나무 숲이 특히 많이 지정된 이유는 농경사회에서 이들 수종이 사원 경제에 차지하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은행은 기호식품으로, 동백은 머릿기름으로, 비자는 구충제로 널리 사용된 사례를 참고하면 더욱 그렇다.

사찰의 명목은 사찰림과 더불어 오늘날 그 존재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환경과 생태의 가치가 고양되는 21세기에 이들 사찰의 자연유산이 물질문명에 지친 현대인의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생명자원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그 하나이다. 현대 문명이 자연과 유리된 삶을 강요할수록 현대인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생태에 대한 욕구 충족을 더욱 갈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태의 진면목을 가급적 더 많이 즐기고 누리기를 원한다. 물질소비 대신에 생태소비와 자연소비에 더 큰 관심을 갖는 이유도 삶의 질이란 물질적 욕망으로는 결코 충족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마음의 풍요로 충족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전영우 교수
우리들이 사찰의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자연유산인 나무와 숲에도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사찰의 나무와 숲이 현대 문명병을 치유할 수 있는 생명자원이기 때문이다.
 

 

 

 

[1243호 / 2014년 4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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