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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에 길이 남을 ‘탄생’의 순간들

관습·편견 넘어 무한자비로 이룬 위대한 변혁의 열매

기원전624년 태자 싯다르타, 아기부처님이 탄생하신 후 544년 쿠시나가르서 열반에 드실 때 까지, 그리고 불교가 전 세계로 전해져 오늘날의 세계종교로 성장하기까지 불교사는 굵은 획으로 기록될만한 역사적 순간의 연속이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늘날까지 지혜의 원천이자 귀의처가 될 수 있도록 토대가 되었던 결정적 사건들을 ‘탄생’이라는 키워드로 살펴보았다. 편집자

1. 싯다르타, 아기부처님의 탄생
룸비니동산에서 싯다르타가 태어났다. 샤카족의 왕비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난 아기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외쳐다. “하늘 아래, 하늘 위 오직 내가 존귀하니 괴로움에 싸인 삼계를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2600여 년 전 벌어진 인류사의 대사건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은 오래 세월의 더께처럼 신화적 치장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한 사람의 탄생, 한 우주의 탄생에 헌정된 후대인들의 찬탄이다. 그 장엄들은 싯다르타의 탄생이 인류 최초의 인권 선언인 동시에 모든 생명이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밝혀준 빛의 시작임을 말해주고 있다.

2. 성도, 깨달은 이 ‘붓다’의 탄생
“번뇌는 모두 사라졌다. 번뇌의 흐름도 사라졌다. 더 이상 태어나는 길을 따르지 않나니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 하노라.”
기원전 589년12월8일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성이 처음으로 세상에 울렸다. 그 전까지 샤카족의 태자, 수행자로 불리던 싯다르타는 동녘하늘이 태양빛으로 밝아오던 새벽, 깨달음을 이룬 붓다로 다시 태어났다.

3. 범천의 권청, 불교의 탄생
깨달음을 이룬 석가모니부처님은 전법의 여부를 놓고 깊은 사유에 들었다. ‘깨달음의 이치를 중생이 이해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부처님에게 범천이 간곡한 청을 올렸다. ‘그래도 세상에는 선과 진리 앞에 진실한 이들이 있습니다.’ 세 번에 걸친 범천의 청에 부처님은 다시 세상을 살피셨다. 그리고 마침내 선언하셨다. “내 이제 감로의 문을 여나니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부처님의 가르침이 마침내 세상을 향해 진리의 문을 열기로 한 역사적인 선언. 이로써 지혜로 나아가는 길 ‘불교’라는 종교가 비로소 이 땅에 탄생할 수 있었다.

4. 초전법륜, 삼보의 탄생
부처님은 녹야원에서 옛 도반 쿨리카, 카샤파, 바드리카, 아사지, 콘단냐 다섯 수행자에게 최초로 가르침을 펼치셨다. 진리의 수레바퀴가 처음 굴렀을 때 꼰단냐가 가장 먼저 깨달음을 이루었다. 그리고 닷새 동안 다섯 수행자가 모두 진리에 눈을 뜨고 구족계를 받았다. 다섯 비구의 탄생으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승가라는 삼보가 완성됐다.

5. 야사부모의 귀의, 우바새·우바이의 탄생
다섯 비구와 함께 녹야원에 머물던 부처님에게 바라나시 장자의 아들 야사가 귀의했다.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 헤매던 야사의 아버지는 부처님과 있는 야사를 발견하고 함께 가르침을 받았다. 야사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법의 등불임을 깨달은 야사 아버지는 삼보에 귀하고 오계를 받아 재가불자 ‘우바새’가 되었다. 머지않아 야사의 어머니 역시 우바이가 되었다. 이로써 불교 최초의 우바새·우바이가 탄생했다.

6. 죽림정사, 가람의 탄생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기 전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수행자였던 싯다르타를 만났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빔비사라왕은 “깨달음을 성취하거든 가장 만저 라자그리하를 방문해 가르침을 주시길” 부탁했다. 부처님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를 방문했다. 부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을 모시기 위해 죽림을 보시했다. 불교 최초의 도량 죽림정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7. 마하파자파티의 출가, 사부대중의 탄생
기원전 584년 부처님의 생부인 숫도다나왕이 서거했다. 정성껏 부왕의 장례를 치르고 웨살리로 떠난 부처님의 뒤를 마하파자파티를 비롯해 무려 500여 명의 여인들이 따라나서며 출가를 청했다. 이들을 측은히 여긴 아난존자의 간청으로 부처님은 비로소 여인들의 출가를 허락했다. 비구니의 탄생은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던 여성들에게 평등과 인권을 되찾아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동시에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로 이루어지는 사부대중의 탄생이었다.

8. 우데나왕 불상 조성, 불상의 탄생
기원정사에 머무시던 부처님이 홀연히 모습을 감추셨다. 도리천에 있는 어머니 마야부인에게 설법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돌아오시지 않았다. 부처님이 코삼비국에 머무시는 동안 매일같이 친견하며 가르침을 받았던 우데나왕은 부처님이 그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전단향나무로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하고 매일 같이 부처님을 뵙듯 예배했다. 인류 최초의 불상이었다.

9. 칠엽굴 결집, ‘여시아문’의 탄생
544년 쿠시나가르에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다. 슬픔을 딛고 마하가섭존자가 부처님 가르침과 계율의 결집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아라한과를 얻은 아난존자까지 합류한 후 500명의 비구가 라자그리하 웨바라산의 칠엽굴에 모였다. 우팔리 존자의 암송에 따라 계율이 먼저 결집됐다. 이어 아난존자의 암송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 법이 결집됐다. 이로써 부처님의 가르침과 교단의 계율이 정비되었으며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로 시작되는 모든 경전의 뼈대가 탄생됐다.

10. 패엽경, 경전의 탄생
부처님의 열반 후 모든 가르침은 수 백년 간 비구들의 암송에 의지해 전해졌다. 구전으로만 이어지던 삼장이 경전으로 기록된 것은 기원전 1세기 스리랑카에서였다. 부파의 대립이 생기고 지독한 기근으로 교단의 존립 마져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자 스리랑카의 비구들은 불법의 멸실을 막고자 경전 조성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스리랑카 중부 마탈레 지역의 석굴사원 알루비하라에 모인 500명의 스님들은 7년간 네 차례의 결집을 통해 삼장을 기록했다. 이것이 최초의 불교경전 ‘패엽경’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243호 / 2014년 4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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