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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상무대 비리의혹 사건

개혁세력에 명분 실어준 의현 총무원장의 ‘비리 커넥션’

▲ 정대철 의원의 폭로로 촉발된 상무대 비리의혹 사건은 당시 정치권과 불교계를 강타한 최대 이슈였다. 중앙승가대 학인 250명은 1994년 3월21일 서울 검찰청사를 방문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종단개혁기념사업추진위 제공

조기현 씨 상무대 공사비 챙겨
80억 동화사 대불 불사에 시주
정대철 의원 폭로로 처음 공개

총무원장·정권과의 연루 의혹
의현 스님 돈세탁 후 정치자금
정치권·교계 강타한 최대 이슈

의현 총무원장 사퇴로 이어져
국정 조사권까지 발동했지만
진상규명 못하고 불교계 상처

1994년 2월26일, 불교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정대철 민주당 의원이 전날 국회에서 “상무대 이전 공사 과정에서 검은 돈이 대구 동화사 대불조성 불사에 흘러 들어갔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1994년 2월26일자 1면)에 따르면 정 의원은 이날 광주 상무대 교외이전사업 시공업체인 청우종합건설 조기현 회장이 1992년 대선 직전 공사대금 5800억 원 가운데 227억 원을 유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중 80억 원은 대구 동화사 대불 건립비에 시주하고, 40억 원은 정치자금으로 여권 고위층에 전달됐다는 것이다.

당시 조 회장은 조계종 전국신도회장으로 의현 총무원장과는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었다. 종단 내부에서 의혹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 의현 스님은 선거 때마다 여당 후보를 지원하면서 정치권력과의 유착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직전 상무대 비자금 일부가 동화사 대불 불사금으로 전달됐다는 것을 순수하게만 볼 수 없었다. 이 사건은 정치권의 최대 이슈로 부각됐고, 불교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철옹성 같았던 의현 총무원장 체제가 무너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94년 불교개혁운동의 반성적 점검’(김봉준, 불교평론 8호)에 따르면 상무대 비리 사건은 의현 총무원장 체제의 권력예속화와 부패상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범승가종단개혁 추진위(범종추)’가 대중적인 지지를 받게 된 계기가 됐다.

상무대 비리 의혹은 김영삼 정부가 노태우 정부의 ‘율곡사업 비리’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처음 불거졌다.

상무대 이전공사는 광주시와 경남 김해시에 있는 제병협동교육본부 등을 전남 장성지역으로 이전하는 사업이었다. 국가예산 5800억 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기도 했다. 이 사건을 조사했던 국방부 율곡특별감사팀은 1994년 1월27일 “상무대 이전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조기현 회장이 군 간부 2명에게 수천만 원의 뇌물을 제공했으며 공사대금을 유용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민자당 중앙당 후원회원이기도 했던 조 회장이 공사수주를 목적으로 정치권과 군관계자에게 거액의 로비자금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 혐의로 조 회장은 서울지검에 구속돼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때까지 조 회장이 유용한 공사대금의 사용처가 드러나지 않아 정치권에서 말들만 무성한 상태였다.

그로부터 1달 뒤 민주당 정대철 의원의 폭로로 상무대 비리의혹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조 회장의 정치자금이 김영삼 후보의 선거자금으로 이용됐을 것으로 보고 연일 정부와 여당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언론들도 의혹을 증폭시켰다. 특히 한겨레는 정치권과 불교계의 유착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한겨레(1994년 2월27일자)는 “조기현씨가 조계종 전국신도회장 등을 맡아 13대 대선 때인 1987년 노태우 후보를 지원했다”며 “14대 대선에서도 기독교신자였던 김영삼 후보 진영에서 취약했던 불교계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조 회장을 이용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야당과 언론의 의혹 제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의현 총무원장과 김영삼 정부와의 검은 거래의혹으로 좁혀졌다. 정대철 의원은 2월28일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조 회장이 동화사 통일약사대불 건립비용으로 냈다는 80억 원도 정치자금으로 쓰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약사대불의 실제 건립비는 42억 원에 불과해 이 정도는 신도들의 시주금으로도 가능하다”며 시주금 80억 원이 돈세탁을 거쳐 92년 대통령선거 당시 선거자금으로 이용됐을 것이라고 의혹을 키웠다.

민주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대대적으로 의혹 규명에 나서면서 상무대 사건은 눈덩이처럼 커져 갔다.

상무대 사건은 종단 개혁세력들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 무렵 실천불교전국승가회(실천승가회)와 선우도량을 비롯한 학인단체는 종단 개혁에 공감하면서도 방법에 있어서는 이견을 보였다. 실천승가회 등은 의현 총무원장을 비롯한 종단 지도부의 퇴진을 요구했다. 반면 선우도량은 ‘교육을 통한 의식개혁에서 시작되는 종단개혁’을 추구했다. 뚜렷한 입장차로 종단개혁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일 일간언론에 제기된 상무대 비리의혹은 개혁세력들에게 종단개혁의 명분을 안겨줬다. 특히 급격히 확산된 종단 집행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개혁세력들의 활동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개혁세력들은 상무대 의혹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지선·청화·진관 스님 등 실천승가회 대표들은 3월9일 이기택 민주당 대표를 방문해 “상무대 의혹의 진상을 파헤쳐 줄 것”을 요구했다. 한발 더 나아가 이 대표에게 ‘조기현 회장으로부터 시주금을 받는 게 무슨 잘못이냐’는 의현 총무원장의 말을 전하면서 민주당의 의혹제기에 힘을 실었다. 이때부터 민주당과 종단개혁 진영의 스님들은 여권과 의현 총무원장을 협공했다. 민주당은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하며 여당을 공격했고, 교계 재야단체들은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종단 집행부를 압박했다. 중앙승가대 학인 250명은 3월21일 서울 검찰청사를 방문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뒤이어 실천승가회와 선우도량, 중앙승가대 등 학인단체들은 3월23일 범종추를 구성하고 연대 활동에 돌입했다.

종단 안팎의 비판 여론에 부담을 느낀 의현 총무원장은 무리수를 뒀다. 의현 스님은 임기를 5개월이나 앞두고 3선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 조계사에서 대규모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공권력과 폭력배를 동원한 의현 스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의현 총무원장과 정권과의 검은 거래 의혹들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언론은 이번 사태의 배경이 된 상무대 사건을 정조준 했다.

이런 가운데 4월5일 동화사 전 재무국장 선봉 스님의 양심선언은 의현 총무원장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선봉 스님은 “내가 동화사 재무국장으로 있던 92년 12월까지 조 회장이 낸 시주금이 동화사에 입금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대불공사 당시 정부보조금 20억 원과 대구지역 대불후원회 시주금 20억 원 등 불사비용 40억 원 가운데 35억 원을 집행했으나, 조 회장이 낸 돈은 공사비용으로 입금된 적도 없고 금전출납부에 기록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조 회장이 검찰에서 “80억 원을 동화사 시주대금으로 썼다”는 진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의현 총무원장이 조 회장으로부터 직접 받아 이를 정치자금으로 제공했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조 회장은 4월8일 서울지방법원 4차 공판에서 나와 “문제의 80억원은 총 8차례에 걸쳐 동화사 대불 시주금을 냈다”며 “이 가운데 5번은 총무원에서 현철 스님에게, 3번은 여의도 사무실로 찾아온 의현 총무원장에게 건네줬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의현 총무원장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현철 스님은 동화사를 방문한 민주당 진상조사위에 “내가 직접 조 회장으로부터 80억원을 모두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의현 총무원장이 모든 책임을 현철 스님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80억 원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서로 말이 달랐다. 그럼에도 정권의 눈치를 살피던 검찰은 조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시줏돈은 종교계 내부의 문제로 조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오히려 검찰은 현철 스님과 조 회장을 조사한 결과 “80억 원은 동화사 대불조성사업에 사용된 것이 맞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그러나 수표추적 등을 하지 않은 채 현철 스님과 조 회장의 진술조사에만 의존한 것이어서 검찰의 수사발표에 의문이 제기됐다.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그러는 사이 의현 총무원장은 종단 안팎의 거듭된 퇴진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4월13일 사퇴를 표명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상무대 사건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민주당은 국정조사권 발동을 거듭 요구했다. 비판 여론에 밀린 민자당은 결국 의현 총무원장이 퇴진한 4월13일 국정조사권 발동을 전격 수용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5월21일부터 1달간의 일정으로 상무대 비리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여야가 국정조사를 합의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상무대 비리의혹은 곧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국정조사는 여당의 조직적인 방해로 난항을 거듭했다. 민자당은 증인채택과 계좌추적 등을 두고 민주당과 번번이 실랑이하며 시간끌기를 이어갔다. 국방부와 검찰도 수사기록을 제출해 달라는 국회의 요구에 “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국정조사는 한걸음도 진척되지 않았다. 결국 민주당은 국정조사 불참을 선언했고, 민자당 단독으로 국정조사가 마무리 됐다. 6월18일 상무대 사건 국정조사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마무리됐다. 조기현 회장이 동화사에 시주금으로 냈다는 80억 원의 행방도, 의현 총무원장과 김영삼 정권과의 검은 거래 의혹도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조기현 회장만 공사비 189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3년형을 받는 선에서 상무대 사건은 일단락됐다.

상무대 사건은 1994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1년 내내 정치권을 흔드는 최대 이슈였고, 불교계에서는 의현 총무원장 체제를 무너뜨린 결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상무대 사건은 숱한 의혹에 비해 어느 것 하나 명백히 밝혀진 것이 없었다. 실제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됐던 의현 스님도 1994년 3월30일 제112회 중앙종회에서 세 번째 총무원장 당선된 직후 인사말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스님은 “국회에서도 100만원 봉투사건으로 구석이 되는 판인데 80억이 아니라 단돈 80만원이라도 받았으면 나는 구속됐을 것”이라며 “나는 단돈 천원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처럼 상무대 사건은 뚜렷한 진상규명 없이 불교계에 커다란 상처만 남겼다. 정치권과 언론에 끊임없이 제기된 불교계와 정권과의 검은 거래 의혹은 사회적으로 불교에 대한 불신만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244호 / 2014년 5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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