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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극근(克勤) 스님의 열병

기자명 성재헌

극근, 생사열병 앓고서야 법연 가르침 알아

▲ 일러스트=이승윤

인생만사(人生萬事)라 했다. 살면서 겪는 온갖 일들을 뜻하기도 하겠지만 곰곰이 되짚어보면 온갖 일들을 빠짐없이 겪어야하는 게 바로 인생살이란 생각이 든다. 예외가 없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기구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햇살 좋은 둔덕에 늘어선 무덤들을 바라볼 때마다 늘 생각한다.

‘구곡양장(九曲羊腸)의 험난한 길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 않은 이 누가 있고, 살고 있지 않은 이 또 누가 있고, 앞으로 살지 않을 이 또 누가 있을까?’

겪어야 할 일이 오만가지이니, 그에 따라 번뇌와 괴로움도 오만가지이다. 그 숱한 일들 가운데 가장 큰 일[大事]은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다. 그 일이 코앞에 닥쳤을 때, 비탄의 눈물과 공포의 전율을 피할 자 과연 누구일까? 왕후장상도, 산더미 같은 재산도, 수많은 학식도 소용없다.

부처님과 조사들의 가르침을 해탈법문(解脫法門)이라 한다. 그 가르침이 고통을 벗어나는 요로(要路)가 된다는 뜻이다. 번뇌와 괴로움이 오만가지이니, 그에 따라 지혜와 해탈도 오만가지일 것이다. 숱한 이해득실과 시비분별에서 자유롭고 변재가 걸림 없는 것도 지혜라면 지혜이고, 해탈이라면 해탈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작은 지혜이고, 작은 해탈이다. 공자님도 “겨울이 닥쳐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선문의 조사들은 질병과 죽음 앞에서도 찬란히 빛나는 큰 지혜[大智慧]와 큰 해탈[大解脫]이 아니면 끝내 인정하지 않으셨다.

젊은 시절 촉(蜀) 땅에서 지역의 명사들과 교류하며 호사를 누리던 극근(克勤)은 우연한 기회에 범백재(范伯才)를 만나게 된다. 범백재는 따끔한 충고의 글을 극근에게 남겼다.

“성도 땅은 더구나 번화한 곳이 아닌가? 마냥 눌러앉는다면 단지 여자와 술의 유혹 때문이겠지.”

극근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얼마 후 갑자기 큰 병에 걸리자 범백재의 말이 가슴을 쳤다. 병마 앞에서 현란한 지식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아, 열반으로 가는 바른 길은 문자에 있지 않구나!”

병이 차도를 보이자 극근은 곧바로 촉 땅을 떠났다. 그리고 진각 승(真覺勝)스님과 기주(蘄州) 북쪽 오아사(烏牙寺)의 방(方)스님으로 인해 조계의 길을 깨달은 극근은 선지식들의 인가를 받기 위해 천하를 주유하였다. 제방 어디에도 그의 지혜를 당할 자가 없었고, 그의 지혜를 인정하지 않는 선지식이 없었다. 옥천 호(玉泉皓), 금란 신(金鑾信), 대위 철(大溈喆), 동림 도(東林度)선사 등이 그를 지목해 법기(法器)라 하였고, 특히 당대 최고의 선사로 명망이 높았던 회당 조심(晦堂祖心)선사는 “훗날 임제종의 한 파를 이룰 것이다”며 칭찬하였다. 하지만 거침없던 그의 발걸음이 오조산(五祖山)에서 막혀버렸다.

법연선사는 극근의 깨달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참을 머물며 자신의 기용(機用)을 몽땅 발휘했지만 법연선사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억지로 사람을 바꾸려 든다고 생각한 극근은 결국 풀었던 바랑을 챙겼다.

“멀쩡한 사람 병신 만들지 마십시오. 스님이 사람을 알아볼 눈이나 있습니까?”

불손한 말을 내뱉고 성질을 내면서 돌아서는 극근에게 법연 스님은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이놈아, 네가 한 차례 열병을 앓게 되면 그때서야 내 생각이 날게다.”

우연의 일치일까? 절강성을 유람하던 극근은 금산사(金山寺)에 이르러 감기로 몸져눕게 되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점점 심해져 온몸이 불덩어리에 정신마저 혼미해지자 슬그머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터득한 선으로 이겨보려고 애썼지만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물 한모금도 넘기지 못한 채 중병려(重病閭)로 옮겨져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자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공포가 밀어닥쳤다.

정신을 잃으면 온갖 귀신들이 달려들어 헛소리를 하고 식은땀을 흘렸으며, 정신을 차리면 살아보겠다고 물방개처럼 발버둥치는 자신의 모습에 회한의 눈물이 흘렀다. 그때 비로소 자신의 깨달음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던 오조산의 법연선사가 생각났다. 극근은 스스로 맹세하였다.

“제불보살의 보살핌으로 만에 하나라도 다시 살아나게 된다면, 내 반드시 오조스님께 돌아가리라.”

죽음의 문턱에 발을 올려놓았던 극근은 기적처럼 다시 살아났고, 기력을 회복하자마자 극근은 오조산으로 달려갔다. 돌아온 극근을 보고 법연 스님은 “네가 다시 돌아왔구나!” 하며 매우 기뻐하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선방에 들어가도록 허락하고 시자를 시켰다.

그 후 한 보름쯤 지나 극근이 잠시 출타했을 때였다. 진제형(陳提刑)이 벼슬을 그만두고 촉으로 돌아가는 길에 법연선사께 찾아와 도를 물었다. 이야기 끝에 법연 스님이 말하였다.

“제형께서도 어린 시절에 소염시(小艶詩)를 읽어본 적이 있지요?

‘소옥이를 자꾸 부르지만 본래 일이 없었네 그저 우리 낭군님이 뭔 소린지 알아차렸으면.’

이 두 구절이 제법 우리 불법과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소옥이는 양귀비의 몸종입니다. 양귀비가 ‘소옥아’ 하고 불렀지만 사실 그건 자신의 애인 안록산을 부르는 암호이지요.”

그러자 제형이 “예, 예” 하고 대답하였다. 오조스님은 재차 당부하였다.

“자세히 살피셔야 합니다.”

제형이 떠나고 극근이 돌아와 물었다.

“스님께서 ‘소염시’를 인용해 말씀하셨다는데 제형이 스님의 뜻을 깨달았습니까?”

“그는 그저 뭔 소린지 알아들었을 뿐이다.”

“그가 뭔 소린지 알아들었는데, 왜 도리어 깨닫지 못했습니까?”

그러자 법연선사가 정색을 하고 말씀하셨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뭐냐? 뜰 앞의 잣나무냐?”

그때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었다. 갑자기 방문을 나서자 닭이 횃대로 날아올라 나래를 치며 울었다. 이것을 보고 극근이 속으로 외쳤다.

“이것이 어찌 그 소리가 아니랴!”

드디어 소매 속에 향을 넣고 방장실에 들어가 깨달은 바를 적은 게송을 올리자, 오조스님이 환하게 웃으며 극근의 깨달음을 인가하였다.

“부처님과 조사들의 큰 일[大事]은 하열한 근기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어서 기쁘구나!”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45호 / 2014년 5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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