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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오조 스님의 막내둥이

기자명 성재헌

법연, 닭다리 뜯는 거친 제자도 감싸다

▲ 일러스트=이승윤

어느 집안이건 막내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대상이다. 선가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조 법연선사 역시도 늘그막에 원정(元靜)이라는 제자를 얻고는 유난히 그를 아끼며 너그럽게 대하였다.

원정선사는 옥산(玉山)의 대유학자인 조약중(趙公約)의 아들이었다. 그는 열 살에 큰 병에 걸렸다. 그의 어머니가 병약한 아들을 걱정하며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였는데, 어느 날 아들을 출가시키라는 기이한 꿈을 꾸게 되었다. 그래서 부모가 그를 성도(成都)의 대자보생원(大慈寶生院)에 기숙케 하자 신기하게도 아이의 병이 말끔히 나았다. 절에서 지내며 경전을 공부하던 원정은 결국 출가하였고, 경학을 통달한 후 선종을 탐구하러 남쪽으로 내려왔다. 원정은 영안 은(永安恩)선사를 참방하고 임제 스님이 세 차례 방망이를 휘두른 인연을 참구하여 비로소 지혜가 열렸다. 그런 후 제방의 이름난 선사들을 찾아뵈었지만 자기 성에 차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법연선사의 기봉이 험준하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를 꺾어버리겠다 자신하며 오조산으로 향했다.

우람한 풍채를 자랑하던 원정은 방장실 문을 확 열어젖히고 성큼성큼 들어가 부리부리한 눈빛을 번뜩였다. 그러자 오조스님이 어린아이의 재롱을 보듯 싱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달라. 내 방에서는 앞으로 나오고, 뒤로 물러나고, 손가락을 세우고, 주먹을 쥐고, 선상을 빙빙 돌고, 여자처럼 절을 하고, 좌구를 들어 보이는 등 천 가지 만 가지로 재주를 부려봐야 소용없어.”
거창하게 한판 벌리리라 마음먹었던 원정은 속이 뜨끔하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네가 내 말을 한 마디라도 진심으로 수긍하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자네의 견처(見處)야.”

태산도 뽑아버릴 것 같던 원정의 기개가 한 순간에 꺾여버렸다.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만 나가봐.”

머리를 숙이고 물러난 원정은 삿갓과 바랑을 높이 걸고 법연선사 회하에 머물렀다. 원정의 기량을 눈여겨본 법연선사는 그에게 입실을 허락하였고, 원정은 입을 꼭 닫은 채 하루도 빠짐없이 방장실을 드나들었다. 오조스님은 늘그막에 물건을 얻었다며 원정을 대견해하였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오조스님이 그를 따로 불러 말하였다.

“내가 자네에게 해 줄 말은 이미 다했네. 이제 자네가 나에게 한번 설명해보게나. 원정은 그 자리에서 불법의 이치를 분석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설명을 제대로 하는군. 그럼 이번엔 내 견해를 판단해 보거라.”

원정은 오조스님이 질문을 따라 하나하나 그 견해의 경중을 판단하였다. 그러자 법연선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훌륭하긴 훌륭한데 아직 노승의 말뜻을 모르는구나.”

풀이 죽은 원정이 고개를 숙이자 법연선사가 다가가 어깨를 다독였다.

“점심공양 후에 오조 홍인대사의 탑에나 다녀오자꾸나.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내 하나하나 다시 점검해 주마.”

점심을 먹은 후 오조대사의 탑으로 산책을 나선 법연선사는 참배를 마치고 지팡이를 세웠다. 풀밭에 자리를 잡은 법연 스님은 막내둥이 제자와 나란히 앉아 하나하나 점검하기 시작했다. 마조 도일(馬祖道一)선사의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라는 화두와 목주 도명(睦州道明)선사의 ‘외통수[擔板漢]’, 남전 보원(南泉普願)선사의 ‘고양이 목을 벰[斬猫兒]’, 조주 종심(趙州從諗)선사의 ‘개에겐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는 화두 등 무엇을 물어도 원정의 대답은 조금도 막힘이 없었다. 그러나 자호 이종(子胡利蹤)선사의 ‘사냥개[胡狗]’ 화두에 이르러 원정이 조금 주춤거렸다. 그러자 오조스님이 얼굴을 획 돌리면서 말하였다.

“틀렸다!”

“틀렸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이 틀리면 앞서 이야기한 것도 다 틀린다.”

원정은 무릎을 꿇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스님, 부디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십시오.”

법연선사는 낯빛을 누그러트리고 자분자분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을 잘 살펴 보거라. 그분이 말씀하기를 ‘자호산에 개가 한 마리 있는데 위로는 사람의 머리를 물어뜯고 가운데로는 사람의 허리를 물어뜯고 아래로는 사람의 다리를 물어뜯는다. 산문에 들어오는 사람은 조심하라’고 하셨지. 그리고 납자들이 들어오기만 하면 으레 ‘개 조심하라'고 소리쳤지. ‘개 조심해라!’고 소리치는 자호 스님에게 그대가 한마디를 던져 자호 스님의 혓바닥을 꼼짝 못하게 한다면 이 노승도 입에 자물쇠를 채우겠네. 그래야 자네가 확실히 깨친 것이야.”

고개를 숙이고 탑에서 내려온 원정은 다음날 방장실로 들어가 조용히 법연 스님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원정의 말을 들은 법연 스님이 크게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자네가 바로 홀로 백 명 천 명을 상대할 영웅이구나. 자네가 방금 한 말이 바로 돌아가신 백운 수단 선사께서 하신 말씀이라네.”

위로 불감(佛鑑)·불과(佛果)·불안(佛眼)의 걸출한 아들들이 있었지만 법연선사는 막내아들 원정을 유난히 아꼈고, 삼불(三佛)의 사형들 역시 막내 동생을 더없이 자랑스러워하였다. 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집안의 막내둥이가 대개 천방지축이듯이 원정 역시 다듬어지지 않은 성격에다 행실까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거칠었다. 원정은 절집에 살면서도 육식을 즐기며 대중들의 싫어하는 기색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계곡 아래에 솥을 걸고 닭을 삶아서 신나게 다리를 뜯던 참이었다. 시자가 헐레벌떡 달려와 고함을 쳤다.

“스님, 큰 스님이 급히 찾으십니다.”

원정은 남은 고기를 소매에 쑤셔 넣고 입가에 묻은 기름기를 닦을 새도 없이 방장실로 달려갔다. 축축이 젖은 소매에서 풍기는 비린내와 번들번들한 입가의 기름기를 본 법연 스님이 노한 음성으로 꾸짖었다.
“너 이놈, 쫓겨나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출가한 사문이 감히 육식을 한단 말이냐! 소매에 든 건 뭐냐?”

원정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소매 속에서 먹다 남은 닭고기를 꺼내놓고 “꼬끼오!” 하고 닭울음소리를 내었다. 법연 스님은 막내둥이의 뜻밖 재롱에 멍하니 한참을 넋을 놓았다가 마침내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결국 법연 스님은 대중들의 원성을 막기 위해 절 남쪽에 작은 요사를 지어 남당(南堂)이라 이름을 붙이고 원정을 그곳에 머물게 하였으니, 늘그막에 본 자식사랑은 고래로 유별난가 보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46호 / 2014년 5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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