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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의 인상


각황전과 대웅전에서는 위엄과 소박함을

석탑-석등에서는 종교성을 느낄 수 있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화엄사를 사랑하고 아낀다. 고향이 광주였던 고로, 종교와 진학문제로 고민이 많던 20대 전후, 조용한 곳을 찾아갔던 곳이 구례 화엄사였다. 그 때는 한국의 공업화가 시작되기 전이요, 지금처럼 고속도로, 교통수단, 사찰 주위 환경이 개발되기 이전, 50년대 후반인지라 사찰이 소박하리 만큼 오염되지 않은 때였다.

불교를 모르기 때문에, 사찰 경내의 가람배치, 상징물, 용어 자체 등에 낯설은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절에 가도 눈 뜬 시각 장애인과 다름없다. 지극히 피상적이고 겉만 휘 둘러보는 소풍객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아름답고도 장엄한 절’이라는 절 이름 자체가 불교진리에 무식하고 속세에 몸담고 사는 행인에겐 다소 압도적이고 멀리 높은 차원에만 있는 삼보를 연상케 한다.

한국의 어느 절이나 그렇듯이, 절이 자리잡은 위치와 절 주위의 산수경계가 뛰어난 것이 절을 찾는 보통 사람들의 첫째 이유이다. 억불 숭유정책이 시행되기 훨씬 전 6∼8세기에 화엄사찰이 건립되었다니 진리구도자와 수행자들의 진지성과 열성이 1500년이 지난 뒤에도 나를 압도한다.

화엄사 하면 두 가지 인상이 남아있다. 각황전과 대웅전의 건축물이 주는 적당한 위엄과 소박한 아름다움이다. 일본 교도나 중국 북경에서 보는 훨씬 거대한 불교사찰에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한국 불교의 특징을 본다. 무의식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같은 한국인으로서의 종교적 영성과 미의식 면에서 무엇인가 서로 통하는 원형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상상해 본다.

화엄사를 생각할 때, 둘째 인상은 화강암을 떡 주무르듯 하여 만든 훌륭한 석탑 석등들이다. 각황전 앞 석등과 서남쪽 효대 위에 세워진 사자삼층석탑이 오래도록 인상에 남아 있다. 석등이 주는 종교적 상징성은 종파를 뛰어넘어 마음의 안팎에 있는 진리의 빛을 돌아보게 한다. 네 방향을 바라보며 앉은 자세로 포효하는 네 마리의 사자상이 3층 탑신을 머리 위에 받치고 있는 사자삼층석탑은 명품이다. 고대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경한 사자라는 동물의 인상과 상징성도 그러려니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한국 종교문화의 조형예술물이 주는 감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요즘은 세태를 반영하듯, 수량과 외적 크기로서 진리를 실증하고 승부 하려는 듯, 거대한 교회당 건축과 불사 소식이 들린다. 그리고, 대웅전 앞마당 가까이 까지 진입한 높은 양반들의 승용차와 상품가게들과 식당들을 보면 개발되지 않았던 50년대 화엄사가 그립다. 장충 체육관에서 몇 만 명이 모였다는 대형 종교집회 소식을 접할 때마다 진리구도와 정진을 위해 깊은 산 속 사찰을 찾아들던 우리 조상들의 구도정신이 우러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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