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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세기수좌의 개구리 소리

기자명 성재헌

개구리 울음소리에서 깨달음의 길 찾다

▲ 일러스트=이승윤

유약하고 불안정한 자식이 자기 두 발로 우뚝 서도록 돕는 것이 부모가 할 노릇이다. 부모노릇은 기꺼운 일이긴 하지만 더불어 힘든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한없이 은혜를 베풀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일찌감치 독립(獨立)하여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식이 있다면, 이보다 큰 효도(孝道)가 없다.

세간에서의 스승노릇도 쉽지가 않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숙련된 자신만의 업적을 몇 마디 말로 정리해 전수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의 가르침은 ‘시간’이라는 첨가제를 빼버리면 그야말로 앙꼬 없는 붕어빵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수(傳授)를 첫걸음으로 여기고 무던히 자신만의 세월을 보내는 제자가 있으면, 세간의 스승들은 흐뭇해한다.

출세간의 스승노릇은 더더욱 어렵다. 세간의 스승이야 성취하고 전수할 업(業)이라도 있다. 하지만 출세간법이란 궁극에 성취할 만한 것도 없고[無所得] 성취할 수도 없는[不可得] 공(空)이다.

그런 공은 스스로 수긍하고 무욕(無欲)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지, 스승이 제자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자가 스승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스스로 밝히고 묵묵히 정진하는 자가 있으면, 출세간의 스승들은 그런 제자를 더없이 흐뭇해하였다.

세기(世奇) 스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성도(成都) 출신의 세기 스님은 젊어서 선문에 들어와 여러 스승들의 법석을 편력하며 오래도록 참구한 구참납자였다. 오랜 수행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깨달음이 없었지만 그는 성품이 자상하고 넉넉하며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겸손해 대중들에게 늘 존경받는 선배였다. 그런 그가 서주(舒州) 용문사(龍門寺) 불안(佛眼)선사 회상에서 지낼 때였다.

여느 날처럼 좌선을 하다가 태산처럼 짓누르는 눈꺼풀을 견디지 못해 선상에서 꼬박꼬박 졸고 있었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갑자기 눈을 번쩍 뜬 세기는 후다닥 일어나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허겁지겁 달려 나갔다. 한 스님이 휘청거리는 그의 걸음과 휘둥그런 그의 눈빛을 이상하게 여겨 절 마당에서 소매를 붙잡았다.

“스님, 갑자기 어딜 그렇게 가십니까?”

“머리 감으러 가야지요.”

“네?”

그 스님의 놀란 표정에 세기 스님이 되물었다.

“방금 머리 감으라고 선판을 두드렸잖아요?”

눈가에 묻은 졸음을 눈치 챈 그는 잡았던 소매를 놓고 뒤돌아섰다.

“아이고, 개구리소리를 잘못 들으셨군요.”

마당에 덩그러니 세기를 세워두고, 그는 깔깔대며 멀어졌다. 그때서야 세기의 귓가에 개구리소리가 밀려들었다. 모내기철에다 비라도 오려는지 와글거리는 개구리 소리가 온 마당에 가득했다. 세기는 번뜩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래서 곧장 방장실로 달려가 자신이 깨달은 바를 불안선사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던 불안선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네 들어보지 못했나? 라후라(羅睺羅)가…”

“스님!”

세기가 갑자기 불안선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굳이 말씀해 주실 것 없습니다. 제가 돌아가 스스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깨달은 바를 게송으로 지어 불안선사께 올렸다.

잠결에는 선판소리였는데
깨고 보니 개구리소리
개구리소리와 선판소리가
동시에 온 산을 울리는구나.

게송을 본 불안선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세기는 조용히 방장실을 물러났다. 그날 이후로도 세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참구에 참구를 거듭할 뿐이었다. 조용히 대중을 따라 밥을 먹고 참선을 하고 울력을 하고 잠을 잤지만 불안선사는 그가 이미 심오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아보았다. 어느 날 불안선사가 그를 따로 불렀다.

“배가 터지도록 넉넉히 참구했으니, 자네가 이제 나의 짐을 덜어줄 때도 되었네. 오늘부터 나를 대신해 대중들을 지도하게.”

세기 스님은 극구 사양하였다.

“남의 결박을 풀어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금바늘로 눈에 낀 백태를 긁어내는 것과 같지요. 조금만 실수해도 눈동자를 다치게 됩니다. 그렇게 막중한 일을 제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불안선사가 한참을 침묵하다 다시 말했다.

“그냥 수좌(首座) 자리에 앉아있기만 하게.”

세기 스님은 또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스님. 제가 어떻게 타의 모범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제 소원은 그저 스님을 모시고 평생 공부하다가 죽는 것일 뿐입니다.”

다음 날, 법좌에 오른 불안선사가 대중에게 공포하였다.

“세기 아사리는 이 말법시대에 정진(精進)의 표상이다. 오늘부터 세기화상을 용문사의 수좌로 명한다.”
그리고 흐뭇한 표정으로 세기수좌를 돌아보며 게송을 읊었다.

저 사람에게 도가 있는 건
그저 물러나고 또 물러나기 때문
저리 겸손하고도 온화한 건
늘 스스로를 돌아보기 때문
저만 몰라
이미 푸른 구름 위에 있다는 걸
그래서 또 물러나네
대중 속에 몸을 숨기려고.

그는 빗발치는 학인들의 청을 거절치 못해 결국 입을 열었고, 구참납자들의 묵은 체증도 그의 한 마디면 뻥뻥 뚫렸다. 그런 세기수좌를 보며 가장 기뻐한 사람은 불안선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중들을 모두 모이게 하고 게송 한 수를 읊었다.

모든 법이 공하기에 내 마음도 공하고
내 마음이 공하기에 모든 법도 공하네
모든 법과 내 마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
지금 이 한 생각 가운데 있을 뿐.
그리고 대중들에게 물었다.

“자, 말씀해 보세요. 뭐가 한 생각입니까?”

멀뚱멀뚱 쳐다보며 어쩔 줄 모르는 대중에게 크게 할을 하고, 세기수좌는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47호 / 2014년 6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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