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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주먹

사람은 살면서 이런 저런 비밀들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이른바 ‘내 사람들’과만 공유한다. 그리고 혹시나 그 공유된 ‘비밀’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비밀을 누설한 사람을 색출하여 비난하며, 심지어는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도 한다.

때로는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일기장에 자신의 비밀을 빼곡히 적어놓기도 한다. 그것은 대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추억의 순간’이거나 ‘아픔’인 경우가 많다.

부처님 가르침엔 편 없고
서로 인정하면 모두 진짜
욕망 움켜쥔 두주먹 펴면
비로소 마음 편해지는 것

여하튼 어떤 비밀이건 그것은 나와 너의 경계선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어떤 사소한 것이든 일단 그것에 ‘비밀’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그것은 ‘대단한 것’이 된다. 대단한 것이 되어 버린 ‘사소한 것’ 때문에 사람들은 울고 웃는다. 그리고 내 편, 네 편을 가르게 되고 그것이 패거리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때때로 거대한 조직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비밀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감추고 싶은 것이 있거나, 뭔가 있는 것처럼 꾸며대기 위함이거나 혹은 감추려고 하지 않았는데 어찌 하다 보니, 비밀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비밀이 만들어지는 것은 어떤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 어떤 종류의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비밀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의도’ 혹은 ‘욕망’을 감추고 싶어 한다는 것과 동일하다. 그래서 욕망을 움켜쥐듯이, 주먹을 꼭 쥐고 절대 펴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주먹과 관련된 비유가 경전에 전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아난다여, 승가는 나에게 무엇을 더 기대하는가? 나는 이미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법을 설했다. 여래의 가르침 가운데 ‘스승의 주먹(ācariya-muṭṭhi)’ 따위는 없다.”(Dīgha Nikāya, Mahāparinibbānasutta 가운데)

여기서 ‘스승의 주먹’이란 스승이 자신의 제자에게만 비밀스럽게 전수하는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런데 열반을 앞에 둔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따로 전할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없다.’라고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이 말은 이미 부처님께서는 45년 동안 하나도 감추어 두지 않고 진실된 가르침을 빠짐없이 설했다는 의미이다. 얼마나 당당한가. 참으로 천신과 인간의 스승이시지 않은가.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수많은 영적 스승들이 존재했었고, 또 존재하고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만이 최고의 진리를 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비전(祕傳)을 자신이 인정한 사람에게만 전수하겠다고 한다. 단언하건데, 이런 사람에게 비전이란 앞서 말한 바대로 ‘보잘 것 없는 사소한 것’일 뿐이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것을 포장해서, 대단한 것이 있는 양 꾸민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의 주먹은 결코 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안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모두 드러내어, 티끌만큼도 감추어둔 비전이 없다. 진실된 법은 모두 드러나 있으며, 공개되어 있으며, 잘 설명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려고 한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처님 가르침에는 내 편, 네 편이 없다. 그저 진실을 추구하는 도반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현실은 나와 너의 경계선을 분명히 긋고, 원수를 대하듯 싸우고 있다. ‘내 편이 진짜고, 네 편은 가짜다.’ 라고 외친다. 서로를 인정하면 모두 진짜가 될 수 있는데도, 부정해서 모두 가짜를 만들고 만다. 그릇된 욕망을 움켜쥔 주먹을 펴면 비로소 편해질 수 있는데도, 움켜쥐어 고통만 더하는 것과 같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47호 / 2014년 6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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