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 역주행 에너지

把定則雲橫谷口 (파정즉운횡곡구)
放下也月落寒潭 (방하야월락한담)

선정삼매에 집착하면 구름이 골짜기 입구를 가로막으니 / 놓아버려야 달이 차가운 연못에 떨어져 내린다네

집착하지 않으려는 집착병을
오히려 모르는 사람도 있어
스스로 성내지 않는 마음서
갈등 사라진 무쟁삼매 이뤄

금강경에서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부처님은 무쟁삼매를 얻은 사람 중에 제일가는 사람이다. 육조 혜능 스님은 마음에서 생겨났다,  없어졌다하는 작용이 사라지고 본각(本覺)이 항상 광명을 뿜어내는 자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야부 스님은 무쟁삼매에 게송을 붙여서 선정삼매에도 집착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집착하지 않으려는 집착병이 붙어서 엄청나게 집착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집착인줄 모르는 사람도 어쩌다가 있기도 하다.

일체 모든 다툼이 사라지는 삼매가 무쟁삼매이다. 겉으로 화도 내지 않고 인자한 미소를 영화배우가 연기하듯이 머금는 것이 아니라 진정 자신의 양심에서 성내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솔직하게 이런 삼매를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럽다. 지난호에 두줄 짜리 시를 소개했는데 거기에서 오자가 났다. 교정을 직접 보면서도 잡아내지 못했다. 그 직전의 경허 스님의 시에서도 한문 원문의 글자 하나가 다른 글자로 둔갑했다. 머리없는 원숭이는 무수호손(無鬚猢猻)인데 무상호손(無相猢猻)이 되어버렸다. 모양없는 원숭이가 되었으니 머리없는 원숭이보다 심오한 원숭이라고 위안을 삼기로 했다. 이번에는 어찌 기자(豈)가 오를 등자(登)로 변신했다. 신문을 읽는 순간 심장근처까지 화가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무릎 바로 아래 종아리부분까지 부글부글 끓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보니 교정을 직접 보면서도 잡아내지 못한 내잘못이지 다른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오자 하나 난다고 해서 목숨이 오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화라고 부르는 것이 몸속에서 어떤 메카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인지 힌트를 받아서 한편으로는 정말 무척 고맙기까지 하다. 머리에서 발끝과 손끝까지 내려가는 에너지가 있고 손끝과 발끝에서 머리로 올라오는 에너지가 있는데 중간에 이 에너지들이 어떤 원인에 의해서 역주행을 하게 되면 그것이 화가 되기도 하고 체기가 되기도 하고 가슴 답답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찌 기자가 오를 등자로 되어있는 것을 신문이 이미 나온 다음에 발견하는 순간 종아리 뒤를 통과해서 새끼발가락 끝으로 간 다음 발바닥을 뚫고 복숭아뼈 안쪽으로 길을 잡아서 올라와야 정상인 에너지가 급브레이크를 밟더니 역주행을 하려고 소용돌이를 만들 기세를 보였다. ‘내 잘못이다’하고 알아차리자 종아리가 풀리면서 차가워지려던 발바닥에 다시 온수가 흘러주었다. 아직 무생삼매로 가려면 멀었다 하고 종아리가 종아리를 때리면서 큰 법문을 들려준 것이다.

그렇지 않고 역주행에너지가 자동차를 머리끝까지 거꾸로 밀어 올리면 눈에서 푸른  불이 활활 타오르면서 혀와 입술이 거친 말을 쏟아내게 된다. 발가락 끝과 발바닥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야 정상인데 중간에 돌아가 버리면 종아리 아랫부분의 복숭아뼈와 발가락과 발바닥과 발등도 정신을 잃고는 되는대로 닥치는대로 걷어차거나 동동 구르거나 부들부들 떨거나 하는 이상 행동을 일으키게 된다. 주위에 혹시 이런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이 많이 아파서 그러는구나’하고 측은지심을 낼 일이지 절대로 맞대응을 해서 교통사고를 낼 일이 아니다.

저으기 생각을 가다듬어보니 오자가 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려고 불보살님께서 높다란 산을 하나 장치해 놓으신 것이로구나. 산이 높다고 어찌 흰 구름 날아가는 것을 막겠는가. (山高豈碍白雲飛)

一片白雲橫谷口 (일편백운횡곡구)
幾多歸鳥盡迷巢 (기다귀조진미소)

한 조각 흰 구름이 골짜기 입구를 막아서니 / 얼마나 많은 새들이 둥우리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해 해메었던가.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47호 / 2014년 6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