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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함걸 스님의 사금파리

기자명 성재헌

조각난 사금파리서 바른 법안 얻은 함걸

▲ 일러스트=이승윤

불교는 집착을 버리는 종교이다. 마음에 드는 것이면 꼭 붙들고 놓지 못하는 게 중생의 마음이다. 그렇게 ‘내 것[我所]’이라는 이름을 붙여 차곡차곡 쌓아두려는 것이 욕심[貪]이고, 내 것이 남의 것이 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분노[瞋]이고, 내 것이 남의 것보다 낫다싶어 우쭐거리는 짓이 교만[慢]이다. 그리고 이런 욕심과 분노와 교만의 밑바탕에는 본래 ‘나’라고 할 만한 것도 ‘나의 것’이라 할 만한 것도 없는 실상(實相)을 알지 못하는 무지(無知)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겼다 인연 따라 사라질 뿐이다”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존재의 실상을 확연히 파악하게 되면 욕심·분노·교만은 저절로 잦아들게 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번민과 다툼 역시 거짓말처럼 잦아든다. 그래서 긴 역사 속 수많은 스승들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존재의 실상을 파악하는 것이다”고 한결같이 강조하셨다.

방장실 방바닥 닦던 함걸은
뭐가 바른 법안인가  물음에
보지도 않고 “깨진 사금파리”
스승 담화 흐뭇한 미소로 인가
존재실상 파악하는게 곧 법안

존재의 실상을 파악하는 능력을 흔히 ‘법안(法眼)’이라 표현한다. 고래로 부처님의 제자들은 온 생애를 다 바쳐 법안을 얻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제대로 법안을 갖춘다면 그 자리에 욕심·분노·교만이 남아날 수 없다. 만약 이전에 알지 못하던 것을 지금 ‘내’가 알게 되었다 하고, 알고 체험한 내용을 잊어버리면 어쩌나 조바심을 내고, 내가 안 것을 누군가 부정하면 화를 내고, 내가 안 것을 저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며 목에 힘을 준다면, 그는 욕심과 분노와 교만이 여전한 것이다. 그 스스로는 “법안을 얻었다”며 자신할는지 모르지만, 그는 여전히 ‘나’와 ‘나의 것’에 사로잡힌 중생일 뿐이다.

제자들이 이런 미묘한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스승의 임무이다. 하지만 스승노릇은 실로 용이하질 않다. 아무리 타이르고 또 타일러도 ‘내’가 ‘법안’을 얻으려 들지, ‘나’도 ‘나의 것’도 없는 실상을 진심으로 수긍하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대로 법안이 열린 제자를 만나면 스승들은 더없이 기뻐하였다.

송나라 때 함걸(咸傑) 스님이란 분이 계셨다. 어려부터서 남달리 영특했던 스님은 일찌감치 출가해 선지식을 찾아 부지런히 천하를 유행하였다. 언젠가 무주(婺州) 지자사(智者寺)에서 겨울을 보내고, 툇마루에 앉아 따뜻한 봄볕을 쪼이고 있을 때였다. 바랑을 싸느라 분주한 대중들 틈에서 노스님 한분이 다가와 곁에 앉으셨다.

“자네는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인가?”

“사명산(四明山) 육왕사(育王寺)로 갈 생각입니다. 그곳에 주석하고 계신 불지 본재(佛智本才) 스님의 명성이 자자하더군요.”

원행을 꺼리지 않는 젊은 납승의 기개를 칭찬하기는커녕 노스님은 뜻밖에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이 말세라 불법도 시드는구나. 요즘 후배들이 행각하는 걸 보면 귀만 달고 다니지 눈이 없단 말이야!”

“무슨 말씀입니까?”

“본재선사께서 훌륭한 선지식임은 분명하지. 하지만 자네처럼 소문 듣고 육왕사로 몰려든 대중이 지금 천명이야. 수없이 드나드는 사람들과 제대로 인사치레할 겨를도 없는데, 자네에게 착실히 기연을 틔워줄 겨를이 있겠나?”

당황하여 토끼눈을 뜬 함걸을 보고 노스님은 혀를 찼다.

“어이구, 이 못난 사람아. 자네는 부처를 구경하러 다니는 사람인가, 직접 부처가 되려는 사람인가?”
함걸 스님이 벌떡 일어나 절을 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노스님, 저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합니까?”

“곧장 구주(衢州) 명과사(明果寺)로 가게. 그곳에 담화(曇華)라는 자가 있을 게야. 비록 후배이긴 하지만 식견이 출중하지. 그런 사람에게 직접 지도받는 것이 좋아.”

함걸 스님은 노스님의 지시에 따라 담화 스님을 찾아갔다. 담화선사는 냉랭한 분이었다.

“저래 가지고서야… 쯧쯧.”

예의를 갖춰 정성껏 질문해도 무시하기 일쑤이고, 물음에 최선을 다해 대답해도 비웃기 일쑤였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과 삭풍보다 차가운 비웃음에도 함걸은 담화선사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집의 동아줄이 잘려나가고 아만의 열기가 사그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방장실에서 방바닥을 닦던 함걸에게 담화선사가 갑자기 물었다.

“뭐가 바른 법안이냐?”

걸레로 먼지를 훔치던 함걸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조각난 사금파리지요.”

담화선사는 등 뒤에서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4년의 세월을 보낸 함걸은 모친께서 병환이 깊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향하였다. 그저 감사의 절을 올릴 뿐, 이렇다 할 한마디 없이 떠나는 제자를 아쉬워하며 담화선사는 게송을 지어 전송하였다.

크게 깨쳐 기연에 투합한 말은/ 볕바른 성곽의 큰 버팀목/ 4년의 세월을 함께 보내며/ 아무리 따져 봐도 흠집이 없었네.

비록 의발을 전하진 않았지만/ 그 기상이 온 우주를 삼켰으니/ 바른 법안을 손아귀에 쥐고서도/ 도리어 깨진 사금파리라 하였지.

이렇게 부모님을 뵈러 나선 길/ 부디 그곳에 눌러앉진 마시게/ 내 미처 하지 못한 마지막 한 마디를/ 돌아오면 반드시 그대에게 전하리라.

훗날 구주(衢州) 오거사(烏巨寺)의 주지가 되어 세상에 드러난 함걸선사는 이후 장산(蔣山)의 화장사(華藏寺)와 경산(徑山)의 영은사(靈隱寺) 등지에서 후학을 교화하였다. 그리고 만년에 태백산(太白山)에 머물며, 자신의 진영에 스스로 이런 글을 남겼다.

집에서 지낼 땐 책을 읽지 않았고/ 행각할 때도 참선을 하지 않았네/ 휩쓸려서 부질없이 난리만 떨었으니/ 땅을 헤집으며 하늘을 찾은 격이로다./ 이렇게 늙고 나서야 속절없이 후회하며/ 사람들의 상처를 꼬집으면서 힘껏 채찍질한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48호 / 2014년 6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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