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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봉정암 산행길의 계곡물

지난 현충일과 그 다음날까지 1박2일 동안 설악산 봉정암을 다녀왔다. 다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서이다. 그 전에 통증에 시달릴 때는 1박2일은 커녕 1분이나 2분만 걸어도 만사가 귀찮아졌었다. 이제 통증이 과거형으로 회억되는걸 보니 하여간 살아볼 일이다. 위엄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화를 벌컥내는 것은 99.9퍼센트가 몸 속에 깊이 들어있는 통증이 입이나 손이나 발을 활용해서 아파 죽겠다고 울부짖는 것이다.

계곡물에 천천히 발 밀어 넣자
시원한 기운 머리까지 휘돌아
맑고 시원한 계곡물의 시원함
더 이상 바랄것 없이 한가로워

많이 울부짖었다. 무슨 정의의 사도처럼 목소리를 근엄하게 해서 그럴듯하게 얘기하는 것도 이제 생각해보니 저 뼛속 깊이 들어있는 통증을 달래느라고 몸부림친 것이었다. 팔할이 바람이었던 분은 필시 전생에 선공덕을 많이 지은 분이다. 필자는 구할이 통증이었다.

통증이해공감상담사를 하면 참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나날이 증폭되고 있다. 그건 뼛속 깊이 들어있는 골수의 통증이 거울에 비치는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통증이 나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통증을 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참가하고 있는 선수쯤 되면 전생에 대장군 중에서도 대장군을 지냈음에 틀림없는데 경기를 하다가 발목이나 무릎을 부여잡고 한참 있다가 부축을 받으면서 걸어 나오는 선수들이 있다. 어느 신문에서 보니 어떤 선수는 아픈걸 이를 악물고 뛰어서 경기를 마치고 검진해보았더니 정강이뼈가 부러져 있었다고 했다. 눈물겨운 부상투혼이다.

축구선수 뿐이겠는가. 극심한 두통의 부상과 요통의 부상을 안은 채 출근 퇴근을 하면서 부상투혼의 열정을 오늘도 내일도 불태우는 사람도 많다. 엄청난 투혼을 지닌 선수가 부상의 통증에 굴림을 당하는 바람에 부축을 받으면서 비틀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경기장 밖을 향해서 나오는 그림이 화면에 뜰때면 참 가슴이 짠해진다. 고의적으로 상대선수에게 부상을 입히는 그런 선수는 축구계는 물론 지구에서 추방해야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백담사 주차장까지는 버스가 연결되었고 봉정암으로 가는 산행 길에 접어들었다. 굽이굽이 설악산의 계곡물이 참으로 아름답다.

기단석인 발바닥과 발목이 풀리도록 걸음을 조절했다. 탑의 기단석이 튼튼해지면 기단석 위에 있는 5층이나 7층의 탑이 안정적인 상태로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를 걸었더니 발바닥이 화끈화끈 풀리기 시작한다.

한참 가다가 봉정암 참배에 함께 동참한 분께서 계곡 물에 발이라도 좀 담그고 가는 게 좋겠다고 하신다. 예 그렇게 하시지요.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나서 계곡물에 천천히 발을 밀어 넣었다. 아. 뼛속으로 관통해서 올라와주는 설악산 계곡의 시원함이여. 차가운 기운이 아니라 시원한 기운이 온 내장을 돌면서 머리 꼭대기까지 휘휘 위아래로 돌아준다.
진각국사의 게송이 떠올랐다.

淸溪洗我足 (청계세아족)
看山淨我目 (간산정아목)
此外更無求 (차외갱무구)
不夢閒榮辱 (불몽한영욕)

맑은 계곡물이 나의 발을 씻어주고 / 푸른 산빛이 들어와 나의 눈을 맑혀주네 / 이 밖에 더 이상 구할 것 없어라 / 꿈꾸지 않으니 영욕에 한가롭다.

지친 다리를 계곡물에 맡겼더니 흘러내리는 시냇물이 알아서 발을 씻어준다. 시원해지는 기운을 따라 허리를 쭈욱 펴면서 고개를 들어 올리자 산빛이 저절로 눈에 들어와서 눈동자를 청소해주는 느낌이 든다. 브라질에서 허덕허덕 뛰고 있는 전 세계의 젊은 선수들에게 골고루 이 맑고 시원한 설악산 계곡의 시원함이 가닿았으면 한다. 좀 더 힘내서 축구라는 월드컵시를 멋지게 쓸수 있도록.

일상생활 자체가 월드컵보다 더 절박하고 절실한 분들에게도 청량한 기운이 함께 전달될 것이 틀림없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50호 / 2014년 6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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