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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의 자리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가치를 다시 찾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강사 명법 스님
‘벤야멘타 하인학교’/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문학동네

▲ 명법 스님은 “자기를 낮추고 냉철하게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세상은 앞만 보고, 또 높은 곳만 바라보며 달려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돈, 권력, 명예로 대변되는 이른바 사회적 성공을 향한 몸부림이다. 그것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고, 공동체가 파괴되고, 사회가 황량해져도 ‘나’ 개인의 성공을 목표로 한 거침없는 질주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부당함을 알면서도 권력자의 한 마디에 ‘예’라고 대답할 때 과감하게 잘못을 지적하며 ‘아니오’라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듯이, 무한경쟁 시대에도 성공을 향해 앞을 보는 대신 ‘성공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며 뒤를 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소설 ‘벤야멘타 하인학교-야콥 폰 군텐 이야기’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을 꼬집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야콥 폰 군텐은 하인을 양성하는 벤야멘타 하인학교에 입학해 교장 벤야멘타와 그의 여동생으로부터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이 학교는 세계를 부인하는 공간이다. 밖을 내다볼 수 없는 작은 창문은 찬란한 태양을 부정하기 위해서, 황량한 정원은 아름다운 자연을 부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이 학교는 황량함과 정적이 지배하는 곳이다.
학교의 교육목표는 ‘배우지 않는 것’ ‘늘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배워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하여 무위가 실천되는 곳이다. 학교의 이상은 인격의 완벽한 부정, 모든 사유와 감정을 부정하는 ‘무’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은 주인공이 자아소멸이라는 자아실현을 위해 유럽을 떠나 황야로 나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 ‘벤야멘타 하인학교’/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문학동네
성공하지 않은 삶도 충분히 아름답다
소설 속 주인공 야콥 폰 군텐은 귀족 태생이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작은 존재, 가장 미미한 존재가 되기 위해 하인학교를 스스로 찾았다. 반(反)영웅적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의식과 생활을 지배하는 돈과 권력의 구속력, 그리고 획일주의적 발전 논리들에 대한 비판을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그래서 출간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이 책은 1970년대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적 해석이 가미되면서 성장과 발전으로 대변되는 서양의 근대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문제작으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강사 명법 스님은 이 책을 수행으로서의 하심과 자기정체성을 확고히 확립하는 무위의 삶 등 몇 가지 키워드로 읽었다. 특히 출가 후 행자시절을 거쳐 시자, 사서 등의 입장에 섰던 경험은 이 책에 몰입하도록 했고, 그러한 몰입은 불교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했다.
스님이 먼저 주목한 대목은 성공이다.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지만, 삶은 어떤 성공이 없어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충분히 공감했다. 스님은 최근 우리사회에서 성공을 위한 필독서로 여겨지는 자기계발서가 스테디셀러 그룹에 편입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테크닉으로 가능할까. 긍정적 마인드만으로 정말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라고 성공을 전제로 한 자기계발 논리에 의문부호를 찍은 스님은 “우리 삶에서 비판적인 자세, 반성적인 자세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지나치게 성공을 강조하고, 성공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너무나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은 ‘성공하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성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말하는 것이 불교적인 것”이라고 역설했다. 때문에 ‘진실한 인간이 가진 아름다움은 결코 가시적이지 않다’는 말에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하인은 가장 열정적이며 겸손한 존재
‘성공’을 향한 무한질주가 마치 시대의 덕목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태를 비판한 스님은 하인의 존재에 대한 해석부터 달리했다. 하인은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순종하고 헌신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보다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남의 집에 매여 일을 하는 사람’이다.
명법 스님은 “하인의 삶을 수동성, 자기를 버림, 나아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인이 되려면 먼저 자기 의지를 버려야 한다. 그것이 상당히 굴종적이지만, 한편 가장 깊은 수행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현대인들의 모순적 삶을 끄집어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하고 하심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사람에게는 굽신거리며 비위를 맞추면서도 힘없고 나약한 사람에게는 독선적이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스님은 어떤 상대이든 모두에게 겸손하고 하심하는 마음가짐에 주목했다. 그리고 하인을 ‘근대인들과 달리 자기중심을 가지지 않고, 성급하게 승리에 도취되지 않으며 사사로운 이익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쉼 없이 충직하게 일하는, 그러면서도 열정적이면서 겸손한 존재들’이라고 정의한 대목에서 눈길을 멈췄다. 어쩌면 옛날 우리사회 촌부들의 일상적 모습과도 닮아 있는 이 표현을 보면서 스님은 “우리는 무엇인가 목적 지향적으로 살면서 이익을 얻을 때는 열정적이지만, 이익이 없을 때는 곧바로 무관심해진다”며 늘 열정적이고 겸손한 그들의 삶에서 진정한 ‘하심’이 무엇인지 배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인을 섬기는 그 자체가 상황의 주인
명법 스님은 서울대 불문과 졸업 후 같은 대학 대학원 미학과에서 독일미학으로 석사, 동양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스미스칼리지에서 박사후과정 연수를 마치고 서울대 미학과 강사,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상담학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운문승가대학 회주 명성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기도 한 스님은 늘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미학, 철학, 인문학적 사고가 더해진 자기만의 시각으로 사물과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이 책을 보는 시각이 남다른 것도 그러한 영향이 적지 않다. 스님은 여기서 또한 하인들이 굴종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하지만, 반대로 상황의 주인이 되고 있음을 간파했다. 그 때문에 저자가 ‘하인은 주인을 섬기는 행위를 통해서 상황의 주인이 된다’고 한 표현을 변증법을 적용해 해석한다.
스님은 “헤겔의 논리학에서 주인과 노예의 예가 나온다. 주인이 노예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인이 노예에게 의지하게 된다. 의지함을 통해서 나중에 노예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변증적으로 보자면 노예가 주인이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책에서도 “주인은 목적을 얻기 위해 행동하지만 하인은 섬기는 행위 자체만 하기 때문에 그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주인의 자리에 있을 때 성공이라는 목적을 갖고 성과를 얻기 위해 일하지만 암초를 만나 목적이 흔들리면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인은 처음부터 바라는 바 없이 그 일을 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상황의 변화에 흔들림 없는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무위의 삶에서 인간 주체성을 찾다
그래서 하인학교는 단순하다. 일하는 기법을 가르치거나, 누구에게 어떻게 복종할 것인가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대신 모든 일에서 자발적으로, 또 충직하게 행하는 자세를 기를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큰 배움은 다름 아닌 ‘무위(無爲)’다.
무위, 즉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음을 배우는 단계다. 빈둥거리는 것, 몸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충실하게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자유를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자유는 영원히 존속하지 않는다. 저자는 자유를 겨울 같은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자유는 차가우면서도 아름답다. 다만 자유와 사랑에 빠지지만은 마라. 그건 슬픔만 안겨줄 거야. 왜냐하면 자유의 영역에서는 누구나 잠시 동안만 머무를 뿐, 그 이상 오래 머물지는 않기 때문이지. 봐라 우리가 떠다닌 저 멋진 길이 서서히 녹고 있는 것을. 이제 눈을 뜨면 자유가 소멸해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앞으로도 가슴을 조이는 이런 광경에 자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느끼는 자유가 얼음처럼 녹아 없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구절에서 스님은 인간의 주체성을 떠올렸다. 그리고 하인들처럼 성공적인 결과를 애써 바라지 않는 상황에서 바로 사람이 갖고 있는 자발성, 주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웅이 아닌, 어쩌면 시시콜콜한 이 인물들이 근대적 삶이 놓친 가치들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우리도 근대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외형적인 성공에만 치우쳐 있는데, 그것에 반대되는 삶의 진짜 모습을 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책에서 ‘꽃이 만발한 정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고 표현한 것을, 겉으로 보이는 성공만을 좇다가 삶에서 갖춰야 할 가치를 잊은 우리들에게 자기의 본래 모습을 보도록 안내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무위의 삶에서 인간 본연의 주체성을 확실하게 찾을 수 있다”는 스님의 설명은 책 전반이 ‘본래면목’을 찾아가는 수행의 과정과 다르지 않음을 상기하게 하고 있다.

삶의 가치 되살릴 진정한 체제전복
스님이 본 하인의 삶은 처절할 정도로 객관적 삶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상실된 인간의 본래 성품을 회복하고 깊은 성찰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수행의 여정이 동반된다. 불교적 가치를 투영한 책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스님은 또 그렇게 껍데기로 존재하던 자기를 놓고 내면에 숨어있던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이 바로 삶의 가치를 되살리는 체제전복으로 나아가는 삶이라고 설명했다. 스님이 이를 체제전복으로 본 이유는 주인공의 신분과 가치관 때문이다. “야콥 푼 군텐은 귀족의 신분을 버리고 하인학교에 들어갔다. 이는 계급을 중시했던 전근대적 가치 속에서 최대 수혜자가 그 수혜를 버리고 낮은 삶으로 들어간 것으로, 체제전복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한 스님은 기득권에 있던 존재가 기득권의 문제를 성찰하고 그 삶이 아닌 다른 삶에서 가치를 찾는 것 자체가 체제의 유지를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스님의 해석처럼 그 시대 세계 곳곳은 날 때부터 정해진 계급으로 인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작가 역시 대다수 사람들이 불평등하게 억압된 삶을 살아가야만 했던 그 시대상을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을 통해 항변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꿨을 법 하다. 지구촌은 전근대적 세계질서의 재편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기존 체제를 전복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새로운 자본주의적 가치에 매몰되면서 또 다른 형태의 계급을 만들어냈고, 역시 그로인한 정체성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스님이 이 책을 독자들에게 권하는 이유다. 하인학교를 찾은 주인공처럼 자기를 낮추고 냉철하게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 진정한 무위의 삶을 배우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배어있다. 그래서 스님은 “쉽지는 않겠지만 나를 무위로 가져가는 것으로 삶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칙과 상식에 기반한 삶이 진짜 교양인
주인공 야콥 푼 군텐의 눈에는 모든 것을 쟁취하고자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의 삶은 진취적이지도 주체적이지도 않았다. 자기 위치에서 자기가 해야 할 바를 가장 충실하게 하는 사람이 자유로울 때, 그때 가장 주체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 말하는 가치 있는 인간의 삶이다.
그리고 특별하지는 않아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결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항상 그는 자신이 세운 규율에 맞춰 산다’고 묘사한 어느 인물의 삶에서 가치가 발현되는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남들이 강요한 규율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규율을 따르며 사는 그것을 교양이라고 정의했다. 스님은 “어떠한 이기심도 없이 자기가 갖춘 규율에 맞춰서 사는 사람, 외부적인 보상도 관계없이 살아가는 그 사람을 가장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라며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핵심을 찌르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 부분에서 현실세계의 모순을 다시 한 번 질타했다. “원칙(사회적 규율)을 존중한다면서도 누군가 보지 않으면, 또 현실을 사는데 필요가 없으면 원칙을 헌신짝처럼 버린다”고 일갈한 스님은 세월호도 지켜야할 원칙을 버렸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며 “지금 우리 사회 모두가 그렇다”고 진단했다.
스님은 여기서 책 속 한 장면을 소개했다. 어떤 아가씨가 길을 가던 중 물건을 흘렸고, 그때 그 물건을 주워서 전해준 남자에게 ‘신사 분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그 남자의 신분은 하인이었다. 이 장면을 보고 스님은 “하인과 주인의 신분을 떠나 행위를 통해서 신사가 되는 것”이라며 그때 그 사람이 바로 진짜 교양인이라고 강조했다.
지인의 소개로 죽음을 앞둔 어느 트위터를 알게 되고, 그가 전하는 짧은 병상일기에서 몇 차례 언급된 이 책을 직접 찾아 읽은 스님은 원칙이 무너지고 자아 상실감이 강한 현대인들이 삶의 전환점을 맞을 수 있는 양서라며 일독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 보고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상관없이, 또 어떠한 이득이 있거나 없거나 관계없이 모두가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삶을 가꿔가길 기원했다.

관심 분야 서적 집중적으로 탐독 습관
로베르트 발저의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본을 성찰하고, 정체성을 새롭게 해 주체적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한 스님은 “무위를 절대 은거로 생각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또한 “세속에서 자기 의지를 버린다는 것이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타인을 위해 하심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삶 속에서 무위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님에게 책은 “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실제 경험보다 더 깊을 수 없기에 그렇다. 하지만 책은 항상 경험을 다시 정리하고, 경험에 깊이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책에서 얻은 것이 적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전을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학문적 연구를 위해 다른 분야 책을 주로 보지만, 그래도 삶에서 학문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경전이다.
특히 강원시절에 혼란을 겪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무난하게 넘길 수 있었던 것도 경전 덕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유마경’과 ‘보현행원품’에서 위로 받고 힘을 얻었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책 읽는 습관이 독특했다.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항상 그 분야의 책을 모두 섭렵하고야 마는 습관이었다. 그러한 책 읽기가 지금 연구하면서 수행하고, 수행하면서 대중들을 만나 마음을 나누는 길을 가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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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 스님이 추천하는 책

 
‘불가의 인생론’
원황 지음/ 이상우 옮김/ 솔과학
명대와 청대 이래 중국 불교계에 큰 영향을 끼친 저작중 하나입니다. 불자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인데요. 운명을 바로 세우는 학문, 잘못을 고치는 법, 선행을 쌓는 방법, 겸허의 덕 등 재가불자, 혹은 보통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자각한 글을 묶은 책입니다. 책에 작은 잘못을 한 하인을 그동안의 선행을 이유로 관대하게 대했음에도 그가 살인을 저지르는 상황에 이르는 내용이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인데요, 눈앞에 보이는 선이나 아름다움이 전부가 아니라, 진짜 아름답고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화하미학’
이택후 지음/ 동문선
중국 미학자 이택후가 쓴 책입니다. 미학을 공부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추천하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책을 통해서 중국의 동아시아적 사유를 볼 수도 있습니다. 화하미학은 유가사상을 주체로 하는 중화의 전통미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역사적 근원은 ‘비주신형(非酒神型)’의 예악전통(禮樂傳統)에 있으며, 이것의 중심은 사회와 자연, 정감과 형식, 예술과 정치, 하늘과 사람 등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하고 자연의 인간화와 인간의 자연화를 어떻게 이해할것인가에 맞추어져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고대의 예악, 공맹의 인도, 장자의 소요, 굴원의 심정, 선종의 형상 추구를 통해 결론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무지한 스승’
자크 랑시에르 지음/ 양창렬 옮김/ 궁리
‘지적 해방에 대한 다섯 가지 교훈’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으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지은 책입니다. 저자의 대표작이기도 한데요, 저자는 책의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무지한 스승에 대해 언급하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스승의 앎이나 학식을 전달하고 설명하는 데에만 기초하지 않고 학생의 지능이 쉼 없이 실행되도록 강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주입식 교육과 과외가 성행하고 있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승이 학생에게 권위를 갖고 자신의 지능과 지식을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책의 지능과 씨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가슴에 와 닿는 책입니다.

 
‘규기의 소에 의해 대역한 설무구칭경․유마경’
김윤수 지음/ 한산암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이 정식 명칭인 ‘유마경’은 이미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듯이 저잣거리에 살면서도 청정함을 잃지 않았던 세속의 거사(居士) 유마힐의 행적을 다룬 경전입니다. 유마힐은 “중생이 앓으니 보살도 앓는다”며 중생들과 동심일체(同心一體)를 이뤘던 재가불자로 대승불교의 깊은 교리인 불이(不二)의 경지에 이른 보살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김윤수 판사가 ‘규기의 소에 의해 대역한 설무구칭경ㆍ유마경’으로 펴냈습니다. 이 책은 흔히 ‘유마경’으로 불리는 대승불교 초기 경전을 번역하고 자세한 주석을 곁들였습니다. 현장법사의 ‘설무구칭경’에 대해 소상한 주석을 달아놓은 자은규기(慈恩窺基, 632∼682) 스님의 ‘설무구칭경소’(전6권)를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중론’
김성철 지음/ 경서원
‘중론’은 학술적으로 보지 말고, 근본을 봐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논리 속에서 길을 잃기가 쉬운데, 논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실상을 이해하면 굉장히 단순하지요. 그 중론의 사유가 바로 불교를 관통한 사유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연기, 공, 중도 이 말이 다 같은 말이고 그 점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불교의 요강을 잡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책이 ‘중론’입니다. 제가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최근에 인문학이 발달하고 폭이 넓어지면서 불교적 사유에 상당히 접근해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과거에 비해 불교를 말하는 것이 더 쉬워졌습니다. 그래서 중론을 이해하면 불교를 바탕으로 세간에 더 많은 비전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1251호 / 2014년 7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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