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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와 돼지의 길

법보신문 직원들은 매달 책 한권을 선정해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며칠 전 읽었던 책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이 책은 나치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갇혔다가 살아 돌아온 빅터 프랭클 박사의 자전적 체험 수기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자신 또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느닷없이 가스실로 보내지는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수용소. 잔인한 폭력과 죽음만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그는 인간에게 주어진 양심과 이성을 잃지 않았다. 그는 닥쳐오는 고통을 면밀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순간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묵묵히 나아갔다. 수용소에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에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거나 나치에 붙어 악랄하게 동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섞여있었다. 그런 아비지옥 속에서도 그는 동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를 잊지 않았고 그들에게 삶의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는 인간존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 존엄은 환경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과 행동에 달려있다는 믿음이다.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교훈
행동에 따라 인격의 향기 달라
대통령 판단은 국민 삶에 영향
총리 재활용에 우려 목소리 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즉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스스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지옥 같은 그곳에서도 어떤 사람은 성자처럼 행동하고 어떤 사람은 돼지처럼 행동했다. 사람은 누구나 이 두 개의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 어떤 것을 취하느냐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혹한 시련 속에서도 미소와 자비를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르침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항상 선택의 순간은 있다. 그의 말처럼 판단에 따라 성자의 삶이 될 수도, 돼지의 삶이 될 수도 있다. 적어도 양심에 따른 이성적 판단은 성자의 삶은 아니더라도 사람의 길은 보장할 것이다. 상황에 따른 판단과 선택은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회, 나아가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정홍원 국무총리를 ‘재활용’하면서 국민여론이 들끓고 있다. 전관예우 논란에 이어 친일미화인사를 잇따라 국무총리 후보로 낙점했다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국회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하고 낙마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질했던 국무총리를 뜬금없이 유임시켰다. 비판 여론이 비등해지자 대통령은 해명했다. 개인의 신상을 터는 여론재판으로 더 이상 총리를 구할 수 없었다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차례로 거치며 우리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형편없이 낮아졌다는 비판이 많다. 의혹 하나만 일어도 임용이 불가능했던 과거기준은 퇴행을 거듭하더니 이제는 반사회적인 행위가 고위공직자로 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자조가 일고 있다. 친일미화, 논문표절, 부동산 투기에 대한 지적이 신상 털기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그래서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성자의 길을 가든 돼지의 길을 가든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개인의 잘못된 판단은 주변 사람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친다. 하물며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의 판단이 국민에게 미칠 파장의 크기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 김형규 부장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있어 선택의 순간마다 성자처럼 판단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의 삶은 희망을 향해 한발씩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돼지처럼 판단한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돼지우리로 밀려 들어가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52호 / 2014년 7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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