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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질그릇

형체를 지닌 것은 언젠가는 깨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오래된 소중한 문화재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문화재로 지정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이 금방이라도 깨어져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죽음 받아들일 때만
온전한 슬픔 가능하고
죽음 통해 삶의 의미
새롭게 통찰 가능해
 
생명이 소중하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불노불사(不老不死), 즉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고 한다면, 생명의 가치가 소중한 줄 알지도 못할지도 모른다. 어느날 문득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에서 노인의 모습을 보게 되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젊은 날이 마치 꿈속의 일처럼 지나감을 느낄 때, 젊음이 갖는 의미와 가치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젊음이 아름다운 것은 늙음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건강할 땐 병이 들었을 때를 알지 못하고, 젊어서는 늙음이 주는 무상함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들을 범부(凡夫), 즉 번뇌에 싸여 있으면서도 번뇌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존재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질그릇에 비유한 내용이 ‘숫따니빠따’ ‘화살의 경’에 나온다. 그 대략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다만 수명이 정해져있지 않아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을 뿐, 애처롭고 고통스럽습니다.
 
태어나 죽지 않고자 하나 그럴 방도가 없습니다. 죽음이란 반드시 닥치는 것, 중생의 운명입니다.
 
과일이 익으면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태어난 자들은 죽을 수밖에 없고, 항상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옹기장이가 빚어낸 질그릇이 마침내 모두 깨어지듯이 사람의 목숨 또한 그러합니다.”
 
‘화살의 경’은 아들을 죽음으로 잃은 아버지가 몇날며칠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슬픔에 빠져 지내자, 이를 가엾이 여긴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하신 경전이다. 내용은 인용문에서 나오듯이, 죽음이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경전에서는 범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으려 하고,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슬픔에 빠져, 자신을 해치고 말지만, 지혜로운 이는 죽음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슬픔에 빠져 자신을 해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는 것도 설해지고 있다.
 
인간사에는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늙음이 그러하고, 죽음이 그러하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지기 마련이다. 어찌할 수 없는 일에 어떻게든 해보려는 것이 바로 망상이며, 집착이다. 그로 인해 괴로움은 더욱더 커질 뿐, 결코 해결되지 못한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도, 자식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대신한다고 해도 자식이 영원히 살수는 없는 것이며, 자식과는 죽음으로 이별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이 죽음에 대처하는 방식일 것이다. 이러할 때,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지만 슬픔에 매몰되어 괴로움을 키우며, 허우적 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온전히 슬퍼하는 것, 그것은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할 때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슬픔에 매몰되어 버리면, 죽음은 물론 삶의 의미를 통찰할 수 없을 것이다. 늙음과 죽음 앞에서 과연 무엇을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52호 / 2014년 7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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