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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작자미상, ‘수선전도’

기자명 조정육

“움켜쥔 모든 것들은 끝내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알라”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함을 관조해 깨닫고 모든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났다." 반야심경

▲ 작자미상, ‘수선전도’, 19세기, 160.8×79cm, 목판본, 서울역사박물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불교를 모르던 시절이었다. 찻집에 앉아 있는데 스피커에서 장엄한 합창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 목소리에 대금과 소금이 뒤섞인 숭고한 합창이었다. 합창단 목소리가 어찌나 경건하던지 헝클어진 영혼이 맑게 헹궈지는 것 같았다. 주인에게 제목을 물어 바로 CD를 구입했다. 알고 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합창단원이 아니라 송광사 스님들이었고 음악 제목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이었다. 작곡가 김영동이 송광사 새벽예불의 현장을 녹음해서 만든 곡이었다. ‘반야심경’에 대해 전혀 몰랐으니 예불소리가 합창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그래도 아름다웠다. 뜻을 몰라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전달되는 소리였다.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다라니(陀羅尼)와 진언(眞言)이 왜 필요한지를. 굳이 뜻을 알지 못해도 그 자체만으로도 힘과 효력이 있음도 알게 됐다. 한동안 ‘옴마니반메홈’을 염송하다 ‘광명진언’을 거쳐 ‘신묘장구대다라니’에 주력하게 된 것은 그날 찻집에서 들은 ‘반야심경’의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양 모습 목판인쇄한 수선전도
수백년 동안 온갖 세상사 지켜본
사대문·내사산 등 생생히 표현
 
이 땅에 수많은 사람 살아왔지만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마련
공함을 깨달아 집착서 벗어나야
 
‘반야심경’은 법회 때마다 항상 독송하는 경전이다. 불자(佛子)라면 누구든지 친숙하게 느끼는 경전이다. 워낙 자주 읽다보니 거의 대부분 외우고 있을 정도다. 잘 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습관적으로 외우다보니 그 안에 담긴 뜻을 놓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를 보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반야심경’도 마찬가지다. 외울 정도로 익숙한 경전이라해서 슬렁슬렁 넘기기에는 너무 아까운 가르침이다. ‘반야심경’의 진짜 매력을 알기 위해서는 ‘풀꽃’이란 시에 다음 한 구절을 추가하면 좋을 것 같다.
 
‘깊이 들여다봐야 깨닫는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의 준말이다. 마하(摩訶)는 ‘크다’는 뜻이다.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다(波羅密多)는 ‘저 언덕에 이른다(到彼岸)’는 뜻이다. 그러니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은 ‘큰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게 하는 경전’이라 풀이할 수 있다. 저 언덕은 ‘해탈과 열반’의 세계가 있는 곳이다. 그 언덕에 가기 위해서는 큰 지혜가 필요하다. 반야의 지혜는 배워서 얻는 지혜가 아니다. 직관에 의해 얻는 지혜다. 우리가 세속에서 배운 분별에 의한 지식을 여윈 상태에서만 드러날 수 있는 지혜다. 그 지혜가 얼마나 커야 해탈과 열반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육조 혜능(惠能)대사는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마하(摩訶)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해 놓았다.
 

 

“마하는 크다는 뜻이다. 마음은 한량없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다. 허공은 능히 일월성신과 대지산하와 모든 초목과 악한 사람과 악한 법과 착한 법과 천당과 지옥을 그 안에 다 포함하고 있으니 세상 사람의 자성(自性)이 빈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혜능대사는 ‘자성이 만법을 포함하는 것이 큰 것이며 만법 모두가 다 자성’이라고 설명한다. 즉 ‘모든 사람과 사람 아닌 것과 악함과 착함과 악한 법과 착한 법을 보되, 모두 다 버리지도 않고 그에 물들지도 아니하여 마치 허공과 같으므로 크다고 하나니, 이것이 곧 큰 행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야행은 어떻게 닦아야 할까. 혜능대사는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우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으로 행한다’라고 가르친다. 마음이 아무리 크고 넓다 해도 실행하지 않으면 작은 것이다.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다. 세간(世)의 소리(音)를 관(觀)하는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이라는 호칭에서도 알 수 있듯 대자대비(大慈大悲)를 근본 서원으로 한다. 모든 중생의 고통과 괴로움을 전부 보고 어루만져주기 위해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가진 보살이다. 여기서 천 개는 딱 천 개가 아니다. 많다는 의미다. 행여 관세음보살이 이미 천 명의 다른 사람에게 손을 다 뻗어버려 나한테 내 줄 손이 더 없을까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관세음보살은 언제 어디서든 중생이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지체 없이 손을 내미는 분이다.
 
그런데 ‘반야심경’에서는 관세음보살이란 이름 대신 특별히 관자재보살이라 표현했다. 왜 그랬을까. 관자재보살은 ‘지혜로 관조하므로 자재한 묘과(妙果)를 얻는 보살’이기 때문이다. 같은 보살임에도 관자재보살이란 호칭에는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보다 지혜가 더 강조되었다. 지혜로 관조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오늘 읽은 ‘반야심경’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 깊은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를 행할 때 오온(五蘊)이 공(空)함을 관조해 깨닫고 모든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났다.”
 
반야바라밀다는 법계의 실상을 통찰하는 근원적인 지혜다. 괴로움과 고통에서 열반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게 해주는 지혜다. 관자재보살은 우리가 실재한다고 확신하는 오온(色受想行識)이 텅 비었다는 것을 관조하여 깨달았다. 내가 괴로움이라고 부르는 현상, 늙어가는 고통, 행복이라고 부르는 감정, 죽음 앞의 공포가 전부 실제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오온이 인연에 의해 잠깐 동안 화합한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짜를 보고 진짜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짜를 보고 울고불고 난리치지 말라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시험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이 떠나갈까 봐 조마조마할 이유가 없다. 수행자는 깨달음을 얻지 못할까 봐 조바심 낼 필요 없고 나이 든 사람은 건강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할 필요 없다. 걱정도 공하고 즐거움도 공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공하다. 과거심도 얻을 수 없고 현재심도 얻을 수 없고 미래심도 얻을 수 없다. 그러니 앞뒤로 길게 이어져있는 걱정을 잘라내고 오직 현재를 충실히 살면 된다. 오직 할 뿐이다. ‘금강경’에서 말한 대로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而生其心)’는 의미다. 관자재보살은 모두가 공하다는 반야바라밀다를 깨닫고 나서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수도 한양(漢陽)의 전체 모습을 목판으로 인쇄한 지도다. 김정호(金正浩)가 1824~1834(순조 24~34)년 사이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선전도’를 멀리서 보면 한양이 두 개의 테두리로 둘러싸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도시든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다. 한양에는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 도성 안에는 내수(內水:청계천)가, 도성 밖으로는 외수(外水:한강)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 맨 아랫부분에 있는 테두리는 한강이고, 그 안쪽에 있는 테두리는 산을 연결하는 서울성곽이다. 서울성곽은 현재 10.5km만 남아 있지만 원래는 18.127km로 한양 도성을 전부 감싸 안아 보호하고 있었다. 한양은 삼국시대부터 여러 국가들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던 곳이다. 현재의 한양의 모습은 조선 시대 때 설계되고 축조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무학대사(無學大師)의 건의를 받아들여 1394년에 한양을 수도로 정한 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 7월17일에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한양은 내사산(內四山:백악산, 낙산, 목멱산, 인왕산)의 보호를 받는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동쪽에 종묘, 서쪽에 사직단)를 배치하는 식으로 설계됐다. 즉 진산(鎭山)인 백악산(白岳山:북현무)이 주궁(主宮)인 경복궁 뒤에 버티고 서 있는 가운데 좌청룡(낙산), 우백호(인왕산)가 양쪽에서 호위하고 앞쪽에는 남주작(목멱산)이 들어선 형국이다. 서울을 둘러싼 내사산은 모두 성곽으로 연결했는데 그 사이에는 동서남북에 모두 네 개의 큰 문인 사대문(四大門)을 세웠다. 사대문에는 흥인지문(興仁之門:동대문), 돈의문(敦義門:서대문), 숭례문(崇禮門:남대문), 숙정문(肅靖門:북대문)에서 알 수 있다시피 유교(儒敎)의 기본 가르침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한 글자를 문 이름에 넣었다. 글자가 다른 숙정문(肅靖門)의 정(靖)자는 지(智)자와 뜻이 같다. 마지막 글자 신(信)은 종로에 있는 보신각(普信閣)에 들어 있다. 도시가 큰 만큼 사대문만으로는 도성 출입에 불편함이 많았다. 그래서 만든 것이 네 개의 작은 문인 사소문(四小門)이었다. 즉 북동쪽에는 혜화문(惠化門:동소문), 남동쪽에는 광희문(光熙門:수구문), 남서쪽에는 소의문(昭義門:서소문), 북서쪽에는 창의문(彰義門:자하문)을 세웠다. 서울 외곽에는 또 다시 네 개의 큰 산인 외사산(外四山:삼각산, 용마산, 관악산, 덕양산)이 외호하고 있다. 겹겹이 둘러쳐진 산 속에 개천과 강이 있는 도시 한양은 그야말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천혜의 터가 아닐 수 없다. 무학대사의 안목이 빼어남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계가 1394년에 한양으로 수도를 천도한 지 올 해로 620년이 되었다. 한 사람의 생애가 대략 60년이니까 620년이면 한 사람이 태어났다 죽기를 10번 넘게 반복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긴 세월 동안 한양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다. 경복궁의 주산이자 청와대의 뒷산인 백악산은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을 어슬렁거리다 사라지는 것을 620년 동안 지켜봤다는 뜻이다. 그들 중에는 세종, 영조, 정조 같은 현군(賢君)도 있었다. 세조, 연산군, 선조 같은 사연 많은 왕도 있었다. 어찌 그 뿐인가. 백성을 지킨 청백리,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탐욕에 눈이 먼 관리도 있었다. 학자, 상인, 무사, 의원, 가마꾼, 박물장수 등도 있었다. 그들 모두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살아생전 어떤 고민을 끌어안고 있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도 흔적이 없는데 하물며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현재의 감정은 어디서 그 실체를 찾겠는가.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 같고 이슬과 같으며 또한 번개와도 같다(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모두가 공하고 때가 되면 사라진다. 비누거품을 소유하기 위해 목숨 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원하다고 생각하니까 집착한다. 우리가 움켜쥐려는 재물과 권력과 명예도 마찬가지다. 비누거품처럼 공하다.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알 때 현재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옆 사람을 떨쳐내는 발길질을 멈출 수 있다. 이것이 반야바라밀다를 얻을 수 있는 지혜다. 관자재보살처럼 누구든지 저 언덕으로 건너갈 수 있는 깨달음의 배다.
 
[1251호 / 2014년 7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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