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6. 통증개공의 꿈

초극세필이 있다. 전에 어디선가 사진으로 쌀 한톨에 앞뒤로 반야심경을 새겼던가 썼던가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실로 대단한 집중력이다. 의식을 초극미세하게 집중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전남 장성에 있는 용흥사에서 초의 스님의 세필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다. 자초지종은 생략하고 초의 스님의 세필을 보는 순간 ‘아, 이건 삼매필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아도 그냥 선을 아주 가느다랗게 이리저리 그어놓은 덩어리들의 집합처럼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니 한자로 된 중국 고전의 작품을 한 자 한자 극세필로 써놓은 것이었다.
 
하나의 티끌 속 시방세계 있듯
모든 티끌 속 우주 시공간 있어
끝 없이 속으로 들어가지는 것
글자 한 획에서도 확인 가능해
 
엊그제 낮잠인지 명상인지 의자에 앉아있는데 화면이 서서히 떠올랐다. 전에 현미경으로 일부를 확대해서 사진을 찍은 반야심경이 새겨져 있는 쌀 한톨이 제법 큰 크기로 확대돼서 눈에 들어왔다. 현미경을 사용하지 않아도 반야심경임을 알 수 있었다. 참 별일이 다 있구나 생각하면서 전체를 가볍게 훑어보고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고 쓴 제목을 보는 순간 필자는 필자의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이런, 한자로 쓰여진 반(般)자의 처음 획이 조금씩 확대되면서 보이는데 그 한 획 속에 반야심경 전체가 다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꿈이라면 참 재미있는 꿈이구나 생각이 들면서 한 획 속에 다 써져있는 반야심경을 감상했다. 전도몽상의 꿈 몽자를 보는 찰나 또 일이 일어났다. 머리에 있는 초두가 서서히 확대되더니 그 초두머리 속에 또 반야심경이 제목부터 사바하까지 다 써져있다. 쌀 한톨에 새겨져 있는 반야심경의 한 글자의 한 획 속에 반야심경이 다 들어있고 그 한 획 속에 써져 있는 반야심경의 한 글자의 머리 부분에 또 다시 반야심경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정신을 조금 더 집중해서 바라보니 장관이 펼쳐진다. 한 획 속의 반야심경의 글자와 글자의 한 획 한 획 속에 모두 반야심경이 써져있고 그 한 획 속의 반야심경이 한 획 마다 그 속에 다시 반야심경 전체가 써져있고 끝없이 속으로 들어가면서 써져있다.

의상대사 법성게 한 구절이 떠올랐다.
 
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
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
 
하나의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있으니 / 모든 티끌 속에도 마찬가지로 우주의 시공간이 들어있다네.
 
우리 몸의 통증도 마찬가지이다. 통증관찰이 일상사이면서 취미가 된 요즘 저만치 떨어져서 옛날에 이래서 아팠구나 하는 어깨 날개뼈의 한 모서리를 바라보노라면 벌겋게 달구어진 인두로 톡톡 갖다대는 통증이 보이고 1차 통증을 느끼는 부위의 깊은 곳에 또다시 통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게 끝이 아니다. 통증 속에 통증이 들어있고 통증 뒤에도 통증이 있고 앞과 옆과 뒤와 대각선 방향과 위 아래에도 친구통증인지 도반통증인지 동반자통증인지가 무리지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자세히 보면 어느 한 조그만 지점이 통증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입체적인 덩어리가 날개뼈에서 어깨 앞과 옆까지 밀어붙이면서 덩어리의 뾰족한 부분이 통증증세를 일으키고 있다. 어이구 필자의 경우에 간이나 콩팥 속에 그리고 나머지 장기 속에 저 울퉁불퉁하고 뾰족뾰족하고 각지거나 깨져있는 통증유발 덩어리가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꿈속에서 반야심경을 읽고 나서 이제 멀쩡한 정신으로 무형의 작업을 하고 있다. 통증유발덩어리에 마음으로 ‘통증개공’을 멋들어지게 붓글씨로 흘려 쓴다. 그러면 그 덩어리가 몇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글자가 흩어진다. 그 조각 조각마다 또다시 ‘통증개공’을 쓴다. 통자의 한 획 속에 통증개공이 다 들어있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54호 / 2014년 7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