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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당나귀

고양이가 호랑이가 되고, 당나귀가 소가 될 수 있을까. 고양이가 호랑이가 되는 생각을 한다고, 혹은 당나귀가 소가 되는 생각을 한다고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간혹 이러한 불가능한 일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선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그저 평범할 뿐인데, 마치 거부인 것처럼 생각하며 흥청망청 하는 사람. 생각은 미숙한데,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 자신에게 조그마한 능력이 있는데, 그것이 마치 세상사람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 하룻밤 꿈과 같은 권세를 지니고는 그것이 영원할 듯 유세떠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이 고양이가 호랑이가 되거나, 당나귀가 소가 되고자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생각뿐인 삶 살지 말고
현실 삶에 최선 다 할 것
남 흉내에 생 허비 말고
자기 자신의 주인 되길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생각속에 산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생각은 관념이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과 실재가 일치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혼돈속에 살게 되고 결국은 현실을 부정하며 자기가 만든 관념의 성안에 갇히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늘 현실에 충실하고자 노력해야 하며,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배움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내용을 앙굿따라 니까야에 ‘수행자의 경(saman. asutta)’(3:81)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한 당나귀가 소떼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나도 소이다. 나도 소이다.’라고 생각하고 싶어도, 당나귀에게는 소와 같은 모습, 소와 같은 목소리, 소와 같은 발걸음이 없기 때문에, 소떼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나도 소이다. 나도 소이다.’라고 단지 생각할 뿐이다. … 그래서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우리는 보다 높은 계행에 대한 배움에 치열한 의욕을 일으켜야 하고, 보다 높은 마음에 대한 배움에 치열한 의욕을 일으켜야 하고, 보다 높은 지혜에 대한 배움에 치열한 의욕을 일으켜야 한다.’”
소는 ‘나는 소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소로 살 뿐이다. 소가 소로써 사는 것은 관념속에 사는 것이 아니다. 반면 당나귀가 소로 사는 것은 현실을 사는 것이 아니라 관념속에 갇혀 사는 것이다.
 
우리는 ‘선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선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선하게 생각하고, 선하게 행동하여,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평범한 삶이면 그 삶에 충실하게 살면 된다. 부자나 영웅처럼 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평범한 삶이지만 삶에 충실하며 늘 배우고자 노력하고 그 배움을 실천하게 되면, 부자가 되고자 상상의 나래를 펴지 않아도 어느 순간 부자가 되어 살고 있을 것이다. 부자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부자로서 사는 삶이 진짜인 것이다.
 
당나귀가 ‘소라는 환상’을 버리게 되면, 당나귀는 더 이상 소를 추구하지 않고 당나귀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환상을 버릴 때 진짜가 드러난다. 그럴 때 나는 ‘나로서’ 살 수 있게 된다. 현실이라는 땅을 딛고 살 것인가, 아니면 환상 속에서 허우적댈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다. 당나귀로 살 것인지, 당나귀임을 부정하지만 소가 되지 못한 당나귀로 살 것인지.
 
부처님께서는 ‘단지 생각할 뿐’인 삶을 살지 말고, 현실에 발을 굳건히 딛고 최선을 다한 삶을 살 것을 말씀하신다. 남의 흉내를 내며 일생을 허비하지 말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54호 / 2014년 7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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