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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法名)과 속명(俗名) 사이

기자명 보광 스님
출가자에게 있어서 가장 난감한 때는 속명을 사용해야 할 경우이다. 출가하여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다가 보면 속명은 남의 이름처럼 생소하게 여겨지고, 법명은 전생부터 사용해 왔던 것 같이 친밀하게 된다.

그리고 누가 속명을 부르는 것 자체가 싫어지며, 마치 출가자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기분마저도 들 때가 있다. 이러한 심정은 아마도 출가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일찍이 출가하다보면 어릴 때 부모에게서 받은 이름은 10대까지만 사용하지만 법명은 평생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공서나 공적인 기관에서는 어릴 때 호적에 오른 주민등록상의 이름으로 불려지며, 불교집안에서만 법명을 사용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요즈음과 같이 스님들의 사회활동이 다양해지고 있는 이러한 때는 더욱더 불편하다. 의료보험, 여권, 예금통장, 면허증, 졸업장, 자격증 등 모두 나열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특히 공적으로 종무행정, 포교, 사회활동을 하는 스님 일수록 두 가지 이름을 사용하여야 한다. 종단을 대표하는 큰스님일 경우도 예외 없이 모든 관공서의 서류에는 속명을 기재하며, 이해를 돕기 위해서 법명은 괄호를 하고 사용하는 해프닝조차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종단의 행정마저도 공적인 경우에는 속명과 법명을 병행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일화를 한가지 소개하면 웃을 일이 있다.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시대에 청와대에서 종교지도자들을 초청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청와대에서는 총무원장이던 청담스님에게 법명으로 초청장을 보냈다. 그런데 정문 근무자가 초청장과 주민등록증을 대조해보니 이름이 다르므로 출입을 시킬 수 없다고 하여 난감한 경우를 당한 일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가 어찌 청담스님 뿐이겠는가?

아마도 스님들은 몇 번 이상 당해본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학교에 있다보니 행정상의 서류는 모두 속명으로 나가며, 개인적인 대인관계는 법명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속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학생들에게 배부되는 강의시간표는 속명이다 보니 보광스님이 강의하는 과목으로 알고 신청하는 경우는 적다.

그래서 한 참 강의가 진행된 후에 다시 신청하는 일도 있다. 만약 법명으로 나간다면 이러한 혼동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현행법으로 볼 때 호적상의 이름을 변경하는 경우는 아주 제한적이다.

물론 재판을 받아야 하며, 그 사유도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 중국, 대만 등지에서는 본인이 원할 경우 출가자가 승적(僧籍)을 첨부하여 법원에 제출하면 그것이 인정되어 호적상의 이름을 법명으로 바꾸어 준다고 한다. 인도의 경우는 종교를 개종하면 신분상의 불이익과 속성(俗性)마저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종단에서도 이러한 외국불교계의 선례를 조사하여 정부에 요청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성직자의 호적문제와 호적상의 이름문제를 한번 제고해 보아야할 때가 된 것 같다.

이 점은 오늘날 급속히 요구되고 있는 호주제의 철폐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속명과 법명 사이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생활해야 할 것인가? 두 가지의 이름으로 냉가슴을 앓지 말고, 이제는 다른 나라의 불교계처럼 우리도 당당하게 법명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종단은 나서야 할 것이다. 이것은 출가자로서 당연히 찾아야할 권리이며, 종단이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동국대 보광 스님 bkha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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