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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일탈

검찰이 마곡사 주지 원경 스님을 기소했다. 주지선거에서 돈을 주고 표를 산 혐의라고 한다. 돈을 주고 표를 사서라도 주지를 하겠다는 스님이라니, 무소유와 청빈을 지향하는 승가가 언제 이렇게 타락해버렸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불가에서는 ‘중벼슬은 닭벼슬만도 못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지를 맡게 될 낌새라도 보이면 조용히 길을 떠나는 절집의 풍속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겸양은 찾아보기 어렵다. 선거 때마다 금권선거 의혹이 끊이질 않고 상대에 대한 비방 또한 세간 못지않다. ‘중벼슬이 더 이상 닭벼슬’이 아닌 각박해진 승가의 민낯을 보는 느낌이다.
 
마곡사 주지 원경 스님
매표행위로 검찰에 기소
 
영담 스님도 검찰 수사
퇴보하는 승풍에 ‘한숨’
 
돈을 주고 유권자의 표를 사는 매표행위는 세간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시민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부정선거에 대한 처벌도 강화됐다. 표를 매수한 후보자는 당선여부와 관계없이 처벌을 받고 피선거권도 제한된다. 부정선거 신고자에게는 최고 5억 원의 포상금을 주어지고 금품을 받은 유권자는 50배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금권선거가 발붙이기 힘든 시절이 됐다. 세상은 이토록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승가는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원경 스님이 기소됐다고 해서 바로 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직 본사주지’라는 정치적 부담에도 검찰이 기소를 강행했다는 점에서 사실관계에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원경 스님은 천안 성불사 주지 시절 공금횡령 혐의로 대전 고검의 수사재개 명령도 떨어진 상태다. 마곡사는 유독 사회법에 따른 처벌이 잦았다. 마곡사 전 주지였던 진각 스님과 법용 스님이 줄줄이 매관매직과 국고횡령 등 혐의로 징역형을 살았다. 마곡사에서 다시 현직주지가 구속되는 불미스런 사태가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원경 스님의 검찰 기소는 자정능력을 상실한 종단의 책임이 크다. 조계종은 2012년부터 전통사찰 방재시스템 구축사업을 벌이고 있다. 종령도 마련하고 인증업체를 지정해 종단 차원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원경 스님은 당시 주지로 있던 성불사의 방재사업을 지역 내 비인증업체에 맡겨버렸다. 다른 사찰에 알선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버젓이 조계종 방재사업 자문위원을 맡았다. 종령을 어겼지만 어떤 처벌도 없었다. 이런 작은 일탈을 막지 못함으로써 종단은 결국 본사주지의 검찰기소라는 최악의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둘러보면 스님들이 검찰에 불려 다니는 일이 낯설지는 않다. 최근 영담 스님도 서울고검으로부터 재기수사명령을 받았다. 불교방송 이사장 시절 불교콘텐츠를 개발한다며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3억 원을 받아놓고 2년6개월이 넘도록 정산조차 안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협찬금이라 주장하며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중불교교류협회로 가져가 버렸다. 그런데도 영담 스님이 주지로 있는 석왕사와 지역을 함께 하는 부천지청은 불기소 결정을 내려버렸다. 그러자 서울고검이 다시 수사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 김형규 부장
영담 스님이 수장으로 있는 삼화도량은 원경 스님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반성과 성찰보다는 상대편의 허물을 들추기에 바지런한 모습에서 승가가 처한 암울한 현실이 느껴진다. 스님들이 재물을 탐하다 검찰에 불려 다니는 마당에 세간을 향해 청빈과 무소유를 말하는 것은 낯부끄런 일이다. 스님들에게 계율은 고사하고 최소한 사회법만이라도 지켜달라고 호소해야 할 판이니, 불자들의 시름이 깊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55호 / 2014년 7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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