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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승 10인 전기 ‘조당집’에 처음부터 수록”

  • 교학
  • 입력 2014.07.28 16:27
  • 수정 2014.07.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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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인석 아주대 명예교수는 “중국의 정 선사와 해동구법승으로 보이는 균 선사의 이상적인 콤비의 만남이 ‘조당집’이란 귀중한 초기선종사를 탄생시켰으며, 이는 한중 동반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초기 선종사 연구의 귀중한 선(禪)문헌인 ‘조당집(祖堂集)’이 고려에서 개판될 때 한국 선사 10명이 포함됐다는 주장이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는 가운데 ‘조당집’은 고려인에 의해 증보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928년 日학자 오야 도구죠가
“고려시대 편입설” 주장 이후
세계학계, 보편적 학설로 수용
중국 내 한국선 위상실추 직결
 
변인석 아주대 명예교수 반박
천주 지역 방언, 속어, 구어는
고려인이 손댈 수 없는 영역
‘전등록’에도 해동선사 실려
고려 때 편입됐다면 불가능
 
변인석 아주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고대사탐구’ 16집에 게재한 ‘조당집의 증보에 관한 논란의 부정적 시각’ 논문에서 “동국선사 10인전(十人傳)‘은 고려에서 끼워 넣은 것이 아니다”라며 “마조선사 계열의 선맥이 동쪽 신라에 흘러갔다는 ‘강서선맥의 동류(東流)’라는 기본적 틀에 충실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당집’은 952년 오대 남당(南唐)의 천주(泉州) 초경사(招慶寺)에서 편찬된 문헌으로 과거칠불부터 당말 오대(五代)까지 선사 253명의 행적과 법어·게송·선문답을 담고 있다. 정(靜)과 균(筠) 두 스님에 의해 편집된 이 문헌은 정작 중국에서는 사라졌다가 1912년 일본인 학자가 해인사 고려대장경 판본 조사 때 발견해 세상에 알려졌다. ‘경덕전등록’의 성립에도 큰 영향을 주었던 ‘조당집’은 해인사 고려대장경에만 유일하게 전해지며, 세계적인 선학 연구의 권위자였던 야나기다 세이잔이 ‘초기 선종사 연구에서 돈황문헌에 못지않은 귀중한 자료’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하지만 1928년 일본학자 오야 도구죠가 고려 광준 스님이 개판할 때 원래 ‘조당집’에는 없는 신라 선승인 영조, 현눌, 도의, 혜철, 홍직, 현욱, 범일, 무염, 도윤, 순지 10명을 포함시켰다는 주장을 처음 제기했다. 이 학설은 일본·중국·대만·홍콩에 널리 퍼졌고, 국내 학자들의 ‘조당집’ 연구논문에서도 국내 편입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들이 적지 않았다. 이는 곧 중국에서 ‘조당집’을 처음 편찬할 때는 해동의 선사들이 빠졌다는 것으로 중국 내에서 한국선의 위상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이런 가운데 변 교수는 동국선사 10인이 증보되지 않았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그는 ‘조당집’이 고려에서 증보됐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동국 선사전(禪師傳)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아닌 광준 스님이 서문을 쓰고 권수를 나눈 것에만 주목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변 교수에 따르면 ‘조당집’ 동국 선사전에는 천주지역 방언, 속어, 구어, 어록, 불교지리가 고스란히 함께 구성돼 있기 때문에 이는 고려 스님이 손 댈 수 없는 영역이다. 또 광준 스님이 동국선사들을 ‘조당집’에 끼워 넣었다면 원 편찬자가 간략히 소개한 혜철이나 홍직 선사에 대해 비문 등을 토대로 상세히 보완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것. 특히 6조 혜능대사의 두상을 절취한 신라승 김대비에 대한 불미스러운 기록도 삭제했을 수 있었지만 그대로 두고 있다는 점도 광준 스님이 원 편찬자의 의도를 존중하려는 개판의 기본태도가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조당집’에 채택됐던 동국 선사 10인 모두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수록된 것을 비롯해 ‘오등회원(五燈會元)’ ‘병등회요(聠燈會要)’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등 송나라 때 편찬된 선문헌에 계승되고 있다는 점도 ‘조당집’이 고려인에 의해 증보되지 않은 방증으로 제시했다.
 
따라서 백장회해 선사가 신라 도의국사를 보고 “강서선맥이 모두 동국승에 돌아간다”고 했던 것처럼 원 편찬자가 애당초 ‘조당집’의 근간을 세울 때 서천(인도)과 동천(중국)의 조사를 함께 통합하는데 있었기 때문에 이 통합의 연장 틀에서 볼 때 동국선사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게 변 교수의 설명이다.
변 교수는 ‘조당집’ 편찬자인 정, 균 가운데 균 선사가 신라인이며, 당시 동국 선사에 관한 자료는 천주 초경원에서 8km 떨어진 진강(晋江)변의 신라원에 내왕했던 상선이나 뱃사람이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변 교수는 “‘조당집’ 편성의 근본 틀은 서천조사와 동천조사를 결속시킨 것이지만 동천조사의 방계에 동국선사의 결속이 어우러져 있다”며 “원래 편찬자인 정 선사와 해동구법승으로 보이는 균 선사의 이상적인 콤비의 만남은 ‘조당집’이란 귀중한 초기선종사를 탄생시킨 협력의 동반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255호 / 2014년 7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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