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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불교교리 - 부처님의 십대제자 : 목견련 2

  • 수행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초스피드로 깨달음 이룬 ‘불교 천재’


자연오염에 책임지라

그간 인간이 자연을 학대해 온 결과가 이제 조금씩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지는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듯이, 물, 물, 물 하면서 기갈에 허덕이고 있는 동안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미 어느 국가에서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는지 사상 최대의 홍수로 난리를 겪고 있다고 합니다. 자연의 조화가 참으로 고르지 않습니다.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우주법원에다 형평성을 잃은 이런 자연의 처사를 고소해서, 그 동안 우리 농부가 고생한 것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내고, 이런 균등하지 못한 처사를 벌인 자연에게 자격정지 수만 년, 아니 수억 년을 내리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인간이 자연을 오염해서 생긴 일이니, 너희가 책임지라는 판결이 나올 것만 같아 두렵기만 합니다.

이에 한국의 전사들은 힘차고 꿋꿋하게 자연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물대기 어려운 천수답에도, 인터넷이 아랍국가를 관통하듯이, 어려운 난관을 뚫고 속속들이 입성하고 있답니다. 충북의 세계골은 다단계 양수작업으로도 물을 대기가 어려운 곳이었는데, 이 곳 군수의 지략에 의해 물이 의기 양양히 퍼레이드 할 수 있었습니다. 하천보다 무려 100미터 위에 있는 천수답에 물이 올라가는 것이니, 이것을 신통이라고 한다면 대단한 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철저한 수행이 신통력의 기본

물을 천수답에 올리는 일에도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듯이, 불교의 수행자가 신통을 얻는 것에도 그 만큼 철저한 수행이 필요한 겁니다. 이런 예를 부처님 제자 중에서 신통이 제일 뛰어나다는 목건련존자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존자는 부처님 문하에 들어간 뒤에 기사굴산에서 선정을 닦았는데, 초등학교학생이 월반하여 졸업하듯이, 초스피드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감각을 벗어나 희열의 단계로 들어갔는데, 부처님은 이런 경지에 머물게 되면 사람이 게을러진다고 하면서, 더욱 열심히 정진할 것을 권했습니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디 재미있는 거 없어”하면서 이리저리 배회하고 어슬렁거리는데, 그 재미를 얻으려면 그 원수 같은 ‘돈’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돈 많은 분들은 즐겁게 노시는 거고, 돈 안 계신 ‘빈대’들은 그저 부러운 눈길만 던진 채, 집에 총총히 들어오거나, 노래 가사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의 신세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귀중한 돈도 필요 없고 그냥 멍청히 앉아만 있는데도, 더 큰 희열이 있다는데 이게 빅뉴스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빅뉴스이겠습니까? 그러나 이 단계도 넘어서야 한다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현상을 넘어서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는 겁니다. 이 때에는 즐겁니, 괴롭니 하는 구분조차도 넘어서게 됩니다. 기쁘면 웃음이 나오지만, 아주 기쁘면 눈물이 나옵니다. 이건 진정한 기쁨은 즐겁다는 느낌을 건너뛰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은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즐거우면 즐겁다는 환호를 터뜨리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큰 즐거움은 아무런 신호도 내색도 없이 고요한 물결같이 스며들어 오는 겁니다. 태풍의 중심지가 아주 고요하다는 사실을 연상하면 좋을 듯합니다.



정진으로 궁극의 경지에 으르러

하지만 부처님은 이런 큰 경지도 그저 지나가는 길일지언정 궁극의 경지가 아니라고 하면서, 여기에 머물게 되면 느슨하게 살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목건련은 더욱 열심히 수행하여 진실로 고요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존자가 깨달음을 얻은 속도는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이고, 미래에 생길 고속전철을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 축구천재 고종수처럼, 목건련도 불교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종수에게 더욱 노력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라고 말하는 것처럼, 부처님은 목건련에게 열심히 수행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습니다. 편안히 잠자는 걸 좋아하지 말고, 재물과 명예를 구하지 말고, 법을 말할 때 쓸데없이 목에 힘주지 말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은 재물의 유혹은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명예의 그물을 건너뛰기란 쉽지 않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목에 깁스하는 거겠죠. 그렇지만 이런 ‘덫’마저 벗어나야, 백두대간의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 수풀 울창한 원시림 속에서 활보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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