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과 윤일병
영화 명량과 윤일병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4.08.11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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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상승세가 무섭다. 7월30일 개봉한 이후 불과 2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신기록이다. 영화 명량은 단 12척의 배로 왜선 330척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영화 명량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알고 있고 진부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명량에 열광하는 걸까?

책임지지 않는 정치지도자들이
이순신 장군에 대한 향수 불러
충의 대상은 백성이라는 명대사
대통령만 쳐다보는 관료에 일침
 
영화 속에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명대사가 등장한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

국민을 섬기지 않고 오로지 대통령을 향한 충성으로 날을 지새우는 해바라기들이 넘쳐나는 현 상황에 대한 통렬한 일침이다. “국가란 곧 국민”이라고 외쳤던 영화 변호인에서 느꼈던 그 통쾌함이 명량으로 이어진다. 현실에서 이순신 장군처럼 사심 없이 목숨 바쳐 백성을 위하는 지도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책임지지 않는 현실정치에 대한 국민적 배신감이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장군 이순신에 대한 향수로 되살아났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선과 맞섰다. 왜선들의 기세에 눌려 부하장수들이 멀찌감치 물러서 있을 때도 그는 홀로 고군분투했다. 주저함이 없이 장렬하게 싸웠다. 최전방에서 솔선수범하는 장군을 부하장수들이 마음으로 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믿음들이 12척의 배로 330척을 물리치는 설화 같은 승리를 이끌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은 전쟁이 끝나고 난 후 조정에 장계를 올릴 때, 부하들의 공훈을 세세히 적어 보냈다고 한다. 원균과 틀어진 결정적 원인이 두 사람의 공보다는 지나치게 부하들의 공훈을 꼼꼼히 챙겨서라는 의견도 있다. 이순신 장군은 가장 위험한 전쟁터에서 언제나 앞장을 섰다. 부하를 사랑하고 원칙과 성실에 입각해 공무를 처리했다. 참 지도자의 모습을 삶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우리 지도자들의 자질은 함량미달이다. 꽃다운 아이들을 바다에 묻어놓고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친일미화와 각종 비리로 얼룩진 사람들이 고위직에 오르는 웃지 못할 현실이 부패로 찌든 임진년의 풍전등화와 같은 조선을 보는 듯 을씨년스럽다.

특히 우리 군은 국민의 신망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왕따와 학대에 시달리다가 동료병사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전쟁터가 아닌 병영 내 구타로 병사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해마다 군에서 사망하는 병사가 100여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은폐하고 축소하기 바쁘다. 천안함의 침몰로 수많은 부하장병들이 죽었을 때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북의 공격 때문이라면 전투에서 진 것인데도 지휘관들은 승승장구했다. 문제를 제기하면 북에 동조하는 것이라며 국민을 협박했다. 진급에서 누락되자 정부를 상대로 소송하는 추태를 부린 지휘관도 있다.

명량이 인기를 끌자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을 이끌고 영화를 관람했다. 민관군이 합동해 국가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고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 김형규 부장
“마음이 고르지 못하면 국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무사 평등해야 국정을 제대로 다스린다.” ‘수호국계주경’의 가르침이다. 지금의 혼란은 국정을 맡고 있는 대통령의 책임이다. 박 대통령이 영화를 통해 400년 전 목숨을 걸고 나라와 백성을 지켰던 위대한 장군 이순신을 국민들이 왜 이토록 그리워하는지 그 마음을 읽었으면 한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56호 / 2014년 8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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