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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중생의 아픔 곧 내 고통...32相 나투어 구제하리

기자명 이미령
“만약 삼악도의 괴로움을 받는 중생이 나를 생각하고 나의 이름을 부르면 천안(天眼)과 천이(天耳)로 듣고 살펴보겠습니다.”
자비로운 연꽃이라는 이름의 경인 『비화경』에서 이렇게 서원한 청년에게 보장(寶藏)부처님은 예언을 하십니다.
“너는 모든 중생들을 관찰하여 온갖 괴로움을 끊게 할 것이니 나는 너를 관세음이라 부르리라.”

갓난아이는 배고프거나 아프거나 불편하면 울음으로 자신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하루 일과는 온통 아이에게 쏠려 있습니다. 아이가 뒤척이거나 꿈이라도 꾸는지 칭얼거리면 어머니는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눈을 뜹니다. 아이의 작은 몸짓 하나, 평소와 조금 다른 숨소리도 어머니에게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거친 신음소리로 들립니다.

혹시라도 아이와 다른 방에서 잠이 들었을 때에 어머니의 신경은 더욱 예민해집니다. 잠이 든 어머니는 눈과 귀와 코의 활동을 쉬고 있는 듯 보이는데 어떻게 아이의 가녀린 숨소리 하나에도 퍼뜩 눈을 뜨게 되는 것일까요?

저는 세상의 소리를 본다[觀世音]는 뜻을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세상의 소리라는 것은 힘들어하는 중생의 신음, 투정, 구원의 외침일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가 지금 힘들고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쾌락에 젖어서 맘껏 질러대는 환호성까지도 그 속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소리 속에는 중생의 괴롭거나 즐거운 상태가 담겨 있으니 결국 소리를 본다는 것은 단지 귀로 소리를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명체의 상태를 두루 살펴본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이처럼 자신의 모든 감각기관을 세상을 향해 활짝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어하는 이가 어디 인간들뿐이겠습니까? 작은 벌레들 중에도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녀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관세음보살은 그 몸도 하나의 모습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종류만큼이나 관세음보살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네 속담에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똑같은 형편이 되어야지만 상대방의 아픈 마음을 속속들이 내 아픔처럼 느낀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아프고 힘들어하는 이의 상태에 스스로를 맞추어 가면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분이 관세음보살이며 무려 32가지의 모습으로 변화무쌍하게 자신을 바꾸어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치 때문입니다.

『증일아함경』고락품(苦樂品)에서 부처님은 이 세상의 중생들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는 몸은 즐겁지만 마음은 즐겁지 않은 부류, 두 번째는 마음은 즐겁지만 몸은 즐겁지 않은 부류, 세 번째는 마음도 즐겁지 않고 몸도 즐겁지 않은 부류,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몸도 즐겁고 마음도 즐거운 부류입니다.

첫 번째 부류는 복을 지었기 때문에 먹고 사는 것이 넉넉하지만 마음 공부를 하지 않아서 삼악도의 세계를 면할 길이 없는 이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번뇌를 끊으려고 열심히 수행하여 아라한은 이루었지만 공덕을 짓지 않아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품들을 남에게 빌려야만 하는 이들입니다. 세 번째 부류는 공덕을 짓지 않아 지금의 삶에서 의식주가 항상 빠듯하고 게다가 삼악도의 길을 면하지도 못한 부류입니다. 네 번째 부류는 공덕을 지은 아라한이니 의식주도 넉넉하고 삼악도의 길도 면한 부류입니다.

당신은 몇 번째 부류에 속하십니까? 만약 앞의 세 가지 중에 하나에 속한다면 당신은 분명 세상의 소리를 관찰하는 관세음보살의 레이더에 포착된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lmrcit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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