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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세라 사원

티베트 최고의 불교대학 영광 간직한 사원서 희망 엿보다

▲ 세라 사원 토론의 광장에 모인 스님들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삿대질하며 교리문답인 최라를 하고 있다. 변경(辯經)이라고도 불리는 최라는 문답을 통해 교리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티베트 스님들의 중요한 학습방법이다.

포탈라궁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티베트 불교의 보고(寶庫) 포탈라궁이 차창 밖으로 흐릿하게 사라져간다. 그 모습 못내 아쉬워 흘깃거린다. 마음은 아직 저곳을 서성이건만, 버스에 의탁한 육신은 이미 라싸 시내를 질주하고 있다. 그 속절없음에 가슴이 아려온다. 언제 저 풍경을 다시 친견할 수 있을 것인가. 몇 분 전, 버스 안에서 바라본 장면들이 마지막 기억으로 남게 되진 않을까. 라싸에 우뚝 솟은 반야용선(般若龍船) 포탈라, 그 장엄함을 되새기고 또 되새겨본다.

쫑카파 제자 샤카 예쉐가 창건
매년 열리는 금강저축제 유명
마두금강 등 수많은 유물 보존


엘리트 길러내는 교육기관으로
한때 5000명 넘는 스님들 거주
문화혁명 등 거치면서 쇠락해
현재 스님 300명만이 명맥 이어

스님들 교리문답인 최라 열려
수많은 관광객·순례자 방문

그러나 끝은 늘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순례단의 여정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향하는 곳은 티베트 최대의 불교대학으로 알려진 세라 사원. 스님들의 교리문답인 최라(chora)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버스에서 내리자 황량한 돌무더기산 중턱 나지막하게 자리 잡은 세라 사원이 순례단을 반긴다. 포탈라궁의 환희로움과는 사뭇 다른 경건함이 느껴진다. 관광객들마저도 순례자가 된 듯 진지한 표정이다. 신심이 절로 우러나는 이곳 분위기는 오랜 세월 쌓아온 구도 열정이 사원 곳곳에 스며든 결과일 것이다.

세라 사원은 라싸 중심지에서 북쪽으로 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달라이라마가 속해있는 겔룩파의 6대 사원의 하나이며 드레풍, 간덴 사원과 함께 라싸 3대 사원으로 불린다. 겔룩파를 창종한 쫑카파의 제자인 샤카 예쉐가 1409년 창건했는데, 일설에 따르면 건설기간 내내 싸락눈이 내렸다 하여 티베트어로 싸락눈을 뜻하는 ‘세라’로 이름 붙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쫑카파가 제자를 거느리고 현재 세라 사원의 뒷산 동굴에서 수행하고 있는데, 산 아래 핀 들장미가 눈부셨다고 한다. 쫑카파는 그 모습을 부처님 가피라 여기고 장미를 뜻하는 ‘세’에 신을 뜻하는 ‘라’를 붙여 ‘세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라싸 3대 사원 가운데 가장 늦게 건립된 세라 사원은 매년 12월 열리는 ‘금강저축제’로도 잘 알려져 있다. 15세기 말, 인도에서 금강저 하나가 전해졌고 세라 사원에 봉안됐다. 이후 티베트력으로 매년 12월27일이면 포탈라궁에 주석하는 달라이라마에게 전달돼 의식을 거친 후 다시 세라 사원으로 돌아온다. 세라 사원 주지는 금강저로 스님과 신도들의 머리를 두드리며 복을 기원하는데, 이러한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라 사원에는 금강저뿐 아니라 샤카 예쉐가 명나라 황제로부터 받은 불경과 불상, 말머리 형상의 관세음보살상인 하약리바( Hayakriva=마두금강, 馬頭金剛) 등 수많은 유물들이 보존돼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세라 사원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불교대학이다. 1959년까지 5000명 넘는 스님들이 거주하는 티베트 최대의 교육전문사원으로 역대 달라이라마들이 이곳에서 ‘게시’라는 학위를 받을 정도였다. 티베트에서 ‘활불’ 명칭을 얻기 위해선 ‘게시’를 필수적으로 취득해야 하며 이는 달라이라마나 판첸라마의 경우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게시’ 시험과목은 티베트불교 기본경전인 ‘양석론(量釋論)’, ‘현관장엄론(現觀莊嚴論)’, ‘입중론(入中論)’ ‘계율본론(戒律本論)’, ‘구사론(俱舍論)’ 등이다.

이처럼 승려교육기능에 특화된 세라 사원은 다른 사원과 달리 정치무대와는 거리를 뒀으며 순수한 학문연구에서 비롯된 종교적 권위로 중앙정부를 두렵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중국의 티베트 점령과 문화혁명을 거치며 전각과 요사채 대부분이 파괴된 데다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할 때 많은 스님들이 함께 떠났기에 현재는 300여명의 스님만이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세라 사원 안에는 대법당인 촉첸과 기초교육과정을 담당하는 세라 메(Sera Me Dratsang), 탄트라를 교육하는 세라 응악파(Sera Ngakpa Dratsang), 하약리바를 모신 세라 제(Sera Je Dratsang) 등 3개 대학과 13개 캉첸(요사채)이 있다. 스님들의 교리문답인 최라는 세라 제 오른쪽 토론의 광장에서 열린다. 최라를 직접 목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 토론의 광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을씨년스럽다. 현재 세라 사원에 거주하는 스님의 수는 전성기 때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입구까지는 500m 가량 걸어가야 한다. 입구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데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일행 스님들과 마주친다. 순례단은 앞서 포탈라궁에서 두 개 조로 나눠 이동했다. 포탈라궁의 입장은 시간대별로 그 인원이 엄격하게 제한됐기 때문이다. 세라 사원 순례를 마친 스님이 토론의 광장에서 ‘최라’가 한창이라고 귀띔한다. 최라는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한 시간 동안 진행된다. 늦진 않았으나 조급해진다. 카메라 끈을 손에 감고 걷는 속도를 조심스럽게 높인다. 아침 일찍부터 고산 증세에 허덕이며 라싸 곳곳을 순례했던 탓에 체력은 바닥났지만 최라를 놓쳐선 안 된다는 간절함이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입구를 지났어도 토론의 광장까지는 한참 동안 올라가야 한다.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걸으며 주위를 살펴본다. 마치 쇠락한 마을처럼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쫑카파가 수행했다는 잿빛 돌무더기산과 힘없이 늘어진 하얀 요사채, 가로수가 만들어내는 검은 그림자가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더한다. 입구 바깥에서와는 다르게 스님도, 관광객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최라가 진행되는 토론의 광장에 모여 있어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때 수천명에 이르는 스님들로 북적였을 세라 사원이 이처럼 텅 비어버렸다는 사실에서 티베트가 마주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직시한다.

갑자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길 왼편 조그마한 문을 통과하니 스님과 관광객들로 가득 찬 광장이 나온다. 드디어 최라의 현장에 당도한 것이다. 삼삼오오 모인 스님들은 춤추듯 손뼉을 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삿대질도 하는데 언뜻 보면 싸우는 것 같다. 한편에선 무관심한 것처럼 먼 곳을 바라보다가도 금세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상대방의 질문에 대답한다. 잔뜩 화난 얼굴로 때릴 듯 손을 휘젓는 상대방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대답하는 스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광장 구석에는 예리한 눈빛으로 교리문답에 대한 수행평가표를 작성하는 스님도 있다.

▲ 세라 사원의 대법당인 촉첸. 5000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변경(辯經)이라고도 불리는 최라는 문답을 통해 교리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티베트 스님들의 중요한 학습방법이다.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엄격한 규칙을 통해 진행된다. 예를 들면, 이곳 토론의 광장에서 자리 배치는 수준에 따라 나뉜다. 승급할 때마다 자리를 옮겨서 전 과정을 마치면 원위치로 돌아오게 된다. 토론의 광장 입구와 가까운 쪽의 스님들은 동작이 크고 화려한 반면 멀찌감치 떨어진 스님들은 느릿느릿 굼뜬 동작에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다. 그러나 겉모습 차이와는 상관없이 진리를 향한 열정만큼은 모두 똑같을 것이다. 신심 북돋는 광경을 합장한 채 바라보다 문득 티베트 스님만큼이나 많은 관광객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은 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데 여념 없다. 티베트 불교의 숭고한 전통이 관광상품화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 촉첸 안에는 6m 높이의 거대한 미륵불상과 샤카 예쉐의 존상, 십일면금강상 등이 모셔져 있다.

토론의 광장을 나와 대법당인 촉첸으로 들어간다. 6m 높이의 거대한 미륵불상과 샤카 예쉐의 존상, 십일면금강상이 보인다. 얼마 전까지 수천명 스님들이 이곳에 모여 경전을 공부하고 법회를 봉행했을 것이다. 스님들이 가득 들어찬 모습을 상상해보니 절로 환희심이 샘솟는다. 촉첸 한쪽에는 공양을 짓던 주방이 있다. 음식 준비를 위해 하루 종일 분주했을 주방은 현재 다소 쓸쓸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한때 5000인분 공양을 만들어내던 주방은 현재 쓸쓸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촉첸 뒤편으로는 요사채와 불교대학이 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요사채로 들어간다. 활짝 핀 꽃과 잘 정돈된 마당이 단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구석에 걸터앉아 한참을 바라본다. 티베트 불교의 엘리트를 키워내던 최고 불교대학 세라 사원은, 지금은 이 마당처럼 허허롭게 라싸에 남겨졌다. 그렇지만 떠난 자리는 남은 이들의 신심으로 메워지고 있음을, 저 멀리 토론의 광장에서 들리는 외침이 상기시킨다.

최라의 뜨거운 열기가 마당으로 슬그머니 스며든다. 이제는 저기 보이는 꽃도 결코 외로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로 내려간다. 인적 없는 길의 스산함 여전하지만 마음은 한층 가벼워진다. 잿빛 돌무더기 산에는 티베트 불교 중흥조 쫑카파의 전설 깃들어 있고, 하얀 요사채는 변함없이 굳건한 모습으로 세라 사원에 뿌리박고 있다. 가로수는 그림자를 드리우며 순례자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한다. 조캉 사원과 노블링카, 포탈라궁에서 느꼈던 감동과 좌절은 어쩌면 희망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최라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순례자의 마음에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라싸=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258호 / 2014년 8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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