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절의 몰락
고향 절의 몰락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4.09.05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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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다. 올해도 사람들은 어김없이 고향으로 향한다. 줄을 지어 달리는 귀성행렬이 길게 이어진 탯줄 같다. 그러나 고향이 예전만 같지 않다.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은 텅 빈 듯이 고요하고 고향 안팎으로 깊은 침묵만이 흐른다. 넓은 들판에서 힘을 부리던 아버지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늙은 어머니들만이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다.

고향 쇠락과 함께 고향 절 몰락
시골엔 예불·신행 끊긴 절 많아

고향의 절들이 사라진 한국불교
삭막한 도시인들 닮아갈까 우려

고향은 해마다 늙어간다. 빈집이 늘고 인사할 곳은 줄어든다. 그 분들마저 세상을 뜨면 고향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추석날 외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고향이 늙어가면서 함께 쇠락해가는 곳이 있다. 고향의 절이다. 고향의 넓은 들판 옆 아늑한 산속에는 항상 절이 있다. 어머니들은 힘들여 농사 지은 곡식을 이고 절에 올랐다. 도시로 떠난 자식들을 생각하며 부처님께 무릎이 팍팍해지도록 절을 하고 손바닥이 닿도록 빌었다. 어머니의 기도를 양분삼아 자식들은 삭막한 도시에서 무탈하게 지냈다. 더러는 성공해 고향의 자랑이 됐다. 이렇게 고향에 자비와 가피를 내렸던 절이 고향의 몰락과 함께 쇠락해가고 있다. 자신의 행복은 뒷전인 채 자식들의 성공만을 바랐던 어머니 기도의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절은 산에 있어야 빛이 난다. 배불정책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산골로 스며들었다지만 수행을 위해서라면 도심보다는 시골이 제격이다. 사람들은 고향을 떠올리듯 고향의 절을 생각한다. 그러나 늙어버린 어머니만큼이나 고향의 절도 생기를 잃어버렸다. 아픈 다리 달래며 1년에 한두 번 오던 몇 남지 않은 노보살들마저 떠나면 절은 텅 비게 될 것이다.

조계종에 따르면 종단에서 운영하는 유서 깊은 절 56곳에 주지 스님이 없다고 한다. 주지가 없다고 비어있는 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런 절들의 상당수가 시골 절들이다.

고향의 절들은 절로서 기능을 상실한 곳이 적지 않다. 예불소리가 사라지고 신행이 끊긴 곳도 늘고 있다. 일부 절들은 주지 스님들이 종단이나 큰 사찰에서 소임을 맡고 그 보시금으로 어렵게 절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마저 여의치 않은 절들은 절 기능을 잃어버린 채 개인 토굴로 전락하고 있다. 가겠다는 스님이 없으니 관리를 맡고 있는 본사에서도 뾰족한 수가 없다. 오히려 그렇게라도 절을 관리해주니 고마울 뿐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안에 대부분의 고향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연로하신 어머니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 자체로 고향의 몰락이다. 고향의 몰락은 결국 고향을 배경으로 한 절들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부처님은 “생명은 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만물은 성주괴공(成住壞空)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고향의 절 또한 영원하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고향이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일 것이다.

▲ 김형규 부장
고향이 사라지는 것은 슬픔이다. 내가 태어난 곳을 잃어버렸으니 어머니를 잃어버린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시간에는 인정이 없다. 운명의 시간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고향이 사라지면 고향의 절들도 사라질 것이다. 역사가 흐르고 인심이 넘쳤던 고향의 절들. 시대흐름을 좇아 도심포교에 매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고향의 절을 잃어버린 불교는 지금의 불교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이기적이고 삭막한 도시인들을 닮아가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60호 / 2014년 9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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