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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부처를 닮는다는 것

기자명 하림 스님

“스님, 요즘도 축구 하시나요?” “예, 일주일에 2번 정도는요.”

사람들이 자주 묻는 말입니다. 이젠 일상이 되어 갑니다. 사람들은 “축구가 그렇게 좋으냐”고 묻습니다. 그럼 “예, 그냥 넓은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것 자체가 너무 기쁩니다. 마치 묶여 있던 강아지가 고삐가 풀려서 넓은 들판에 나가 뛰어다니는 느낌”이라고 대답합니다. 운동장에 나가면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느낌입니다.

관음보살 자비 닮겠다고
매번 원력을 세워보지만
번번이 무심했던 것 참회
중생 먼저 살피는 삶 발원

절에 하루 종일 있다 보면 늘 이런 저런 생각으로 바쁩니다. 이럴 때 축구는 제게 활로를 열어줍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을 경험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축구장에서 만난 어떤 의사였습니다. 첫인상이 부드럽고 너무나 겸손하신 분이었습니다. 저를 챙겨주기 위해서  자상하게 안내를 해주곤 했습니다. 축구도 무척 잘 해 늘 공격수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습니다. 실력도 출중하고 마음이 좋아 주변에서 따르고 걱정하는 지인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분이 다른 세상으로 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제일 먼저 그 분과 축구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가슴 한편이 시렸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멍하고 눈시울이 젖어듭니다. 그렇게 자상하셨던 분이 스스로 혼자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힘들어 할 때 왜 좀 더 적극적으로, 무례를 범하더라도 좀 더 다가서지 못했을까’라는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이제 와서 저의 무능함과 게으름을 자책하고 또 자책해 봅니다.

관세음보살은 세상의 소리 곧, 중생의 소리를 열심히 듣고 보기 위해 천개의 눈을 갖게 되고, 그들에게 손을 뻗어주기 위해 천개의 손을 갖고 계신다고 합니다. 저는 겨우 두 개의 눈으로도 그 개수만큼의 일을 힘들어 하고, 두 개의 손의 역할도 어깨가 무겁다고 놓으려고만 했습니다. 두 개의 귀로 듣는 것도 머리가 아프다고 그만 귀를 닫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고도 관세음의 자비를 닮아간다고 착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부끄러울 뿐입니다. 사실 두 개의 귀로도 세상의 소리를 들어줄 수 있고, 두 개의 손으로 힘든 이의 손을 잡아 줄 수 있고 두 개의 눈으로 힘든 이를 외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원력이 부족해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다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오랜 신행생활을 하던 보살님이 홀로 다른 길을 가셨습니다. 그 때 다짐을 했습니다. 다음에는 그런 이들을 외면하거나 힘들다고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요. 그런데 또 놓치고 말았습니다. 어제는 젊은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우연히 그 친구와 긴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봉사도 부탁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또 내 안에서 ‘이젠 쉬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올라옵니다. 그러나 며칠 전 다짐이 생각나서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마음이 좋아져서 돌아갔습니다. 마음이 힘든 이들을 돕겠다고 매번 법회마다 사홍서원을 하고 천수경을 읽습니다. 그런데 ‘내가 깨달음을 얻겠다’라는 것을 항상 우선에 둡니다. 중생에 대한 눈과 귀, 손길은 깊이 고려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대승불교를 실천한다고 하고 보살계를 받았다고 하고 부처가 되는 수승한 불교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서원에서 보살이 탄생하고 서원의 실천으로 부처가 탄생하겠지요. 서원대로 하지 않으면서 부처가 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넘어져도 방향은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중생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부처의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림 스님  whyharim@hanmail.net

[1261호 / 2014년 9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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