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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조계종 개혁회의 출범

종단 입법·사법·행정권 갖춘 과도 집행부 탄생

▲ 종단개혁이라는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의현 총무원장 체제를 무너뜨리고 출범한 개혁회의는 4월22일 공식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은 4월13일 범불교도대회 직후 개혁회의 집행부가 총무원 청사에서 진행한 개혁회의 현판식.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제공

1994년 4월15일 탄성 스님을 비롯한 개혁회의 지도부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이날 의현 총무원장의 3선을 강행했던 중앙종회가 해산과 함께 개혁회의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개혁회의법을 만장일치로 가결했기 때문이다. 개혁회의는 이미 4월10일 전국승려대회의 결의로 출범했지만 여전히 법적 근거가 미약했다. 초법적 승려대회의 결의는 또 다른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종헌개정·개혁회의법 제정
법적정당성·운영토대 마련
최대 6개월 한시적 기구

초대의장에 월하스님 추대
총무원장에 탄성스님 선출

해종행위 조사 특별법 제정
기존 종회의원 징계 못하고
대부분 수용하면서 개혁후퇴

그러나 중앙종회가 종헌을 개정해 종단 비상시 입법과 사법, 행정의 전권을 갖는 개혁회의를 출범시킬 수 있도록 함에 따라 법적 정당성을 얻게 됐다. 개혁회의법도 제정해 개혁회의의 위상과 권한에 대한 골격을 갖췄다.

개혁회의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종헌개정안 인준을 위한 원로회의를 준비했다. 4월18일 오후 2시 서울 조계사 육화당에서 열린 원로회의는 사실상 개혁회의가 주도했다.

원로회의록에 따르면 이날 원로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개혁회의 집행부가 안건을 설명하면 원로들은 특별한 이견 없이 그대로 추인했다. 원로회의는 중앙종회에서 결의한 종헌개정안과 의현 총무원장의 불신임, 개혁회의법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개혁회의 집행부가 구성한 개혁회의 의원과 주요 임원진도 통과시켰다.

원로들은 개혁회의 측의 요구에 따라 대정부 입장문도 발표했다. 원로들은 입장문에서 “3월29일과 4월10일 서울 조계사 경내에 공권력을 투입한 사건은 ‘법난(法難)’”이라고 규정했다. 원로들은 “불교계의 사과 요구를 외면하고 공권력 투입의 정당성만 고집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원로회의 직후 개혁회의도 기자회견을 열어 “조계사 공권력 투입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의 사과와 최형우 장관의 사퇴”를 재차 촉구했다. 이에 불응할 경우 “해인사·통도사·송광사 등 삼보사찰의 산문을 우선 폐쇄하고 점차 관광사찰과 본사로 확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혁회의는 “전국 1700여개 사찰에 ‘김 대통령의 사과 촉구’ 현수막을 내걸기로 했다”며 강경한 대응을 예고했다.

개혁회의는 99명의 의원 명단도 공개했다. 명단에는 종회의원과 전현직 교구본사주지 스님 39명을 비롯해 종단개혁의 중심에 섰던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범종추) 소속 스님 23명, 선원(6명)·교수(7명)·포교(10명)·비구니(9명)·기타(5명)분야 대표 스님들이 포함됐다. 개혁회의 의장단은 4월10일 승려대회에서 추대된 스님들로 구성됐다. 의장에 월하, 부의장에 설조·종하 스님이 추대됐으며 상임위원장에 탄성, 상임부위원장에 지선·도법, 사무처장에 여연 스님이 각각 내정됐다.

개혁회의는 과도집행부를 이끌 총무원 소임자도 확정했다. 총무원장에는 개혁회의 상임위원장 탄성 스님을 임명했고, 부원장에는 지하 스님을 선임했다. 총무부장 정우, 총무국장 법안, 기획조정실장 현응, 홍보실장 현기, 홍보차장 동출, 교무부장 혜창, 교무국장 오성, 재무부장 평상, 재무국장 장적, 사회부장 시현, 사회국장 덕신, 호법부장 보선, 호법국장 각명·성찬·선법, 포교부장 벽암, 포교국장 재범 스님 등 주요 소임자에 대한 인선도 발표했다.

조직구성을 마친 개혁회의 총무원은 4월19일 오전9시 첫 시무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착수했다. 개혁회의는 5대 활동 지표로 “△정법종단 구현 △불교자주화 실현 △종단운영의 민주화 △청정교단 구현 △불교의 사회역할 확대”를 내세웠다. 이를 위해 △불교의 근본정신 회복 및 승단 위계질서 확립 △교단의 자주성 확립 및 불교관련 악법 개폐 △교단의 민주적 운영과 재산공개 △여법한 주지 인사 실시 및 무분별한 가람불사 지양 △파벌적 문중의식 타파 및 승가후생 복지 증대 △승가교육 체계 수립 △의식법보 의제정비 △포교활성화 및 사회복지사업 추진 △재가불자 종단 참여 모색 △인권 환경 등 사회적 역할 확대 등 10대 실천공약도 제시했다.

개혁회의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종단 안팎에서 개혁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전국교구본사주지들은 4월22일 오전 회의를 열어 “개혁회의를 중심으로 종단개혁에 앞장설 것”이라며 개혁회의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개혁회의는 4월22일 오후2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공식 출범식을 갖고 첫 회의를 진행했다. 조계종 제1차 개혁회의록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는 총 99명 가운데 97명이 참석했다. 원로의장 혜암 스님은 법어를 통해 “조계종이 문중과 권속의 관념을 떠나 시종일관 불조의 청백가풍을 성취할 것인지 많은 신도들이 마음을 졸이고 기대하고 있다”며 “개혁을 밝고 깨끗하게 해서 부처님 광명을 온 누리에 빛나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개혁회의 의장 월하 스님은 “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을 고치는 것”이라며 “개혁하는 사람은 내내 그 사람이지만 구태의연한 사고에서 벗어나 법과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 그것이 개혁이라는 이념의 기치를 들고 뜻을 모아 온 종도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혁회의는 이날 새로운 종헌종법을 제정·심의할 법제·법사·종무행정·교육·재정·사회복지·호법위원회 등 6개 상임분과위원회를 구성했다. 상임위원 24명과 초재심 위원도 선출해 개혁회의 산하 기구 구성도 마무리 지었다. 개혁회의가 3~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기구임도 명문화했다. 첫 회의 말미에는 특별한 이벤트도 열렸다. 4월10일 승려대회에서 “개혁의 틀이 마련될 때까지 가사를 수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명진 스님이 이날 개혁회의 의장 월하 스님으로부터 가사를 돌려받았다.

개혁회의 2차 회의도 5월3일 조계사 법당에서 열렸다. 97명의 의원이 참석했던 첫 회의와 달리 이날 회의는 76명만 참석했다. 개혁회의의 종단개혁 의지가 한 달도 안 돼 급격히 수그러들고 있음을 반영했다.
개혁회의는 이날 ‘해종행위조사 특별위원회법(특별법)’ 제정의 건을 두고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법제위원장 설정 스님은 “4·10 승려대회를 통해 종도들의 뜨거운 개혁의지와 일부 해종행위자들의 무도함을 동시에 봤다”며 “잘못돼 온 병폐를 척결하고 승풍의 진작, 종풍의 쇄신을 위해 개혁조치를 단행해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특히 설정 스님은 “△의현 총무원장 재직기간 동안 시행된 파행적 인사와 재산처분 등에 대한 책임자 경책 △3·29와 4·10법난을 자행·비호·조정한 반개혁적 반불교적 세력을 엄단해 미래 종단의 초석을 삼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몇몇 의원이 특별법의 자구에 대한 문제를 거론한 것 외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종광 스님은 “의현 총무원장의 3선 가결에 참여한 종회의원들도 해종행위자에 포함해야 한다”고 폭탄성 발언을 했다.

장내는 술렁였다. 개혁회의를 구성하고 있는 상당수 의원이 ‘의현 총무원장의 3선’을 결의한 제10대 중앙종회의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종광 스님은 “공권력 투입으로 많은 스님들이 연행되는 과정에서도 종회의원들은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청사에 들어가 3선을 통과시켰다”며 “이들을 해종행위자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이 법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의장 설조 스님이 진화에 나섰다. 스님은 “3선에 거수를 했던 분들 가운데는 자발적으로 동조한 사람도 있고, 부득이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며 “종회의원들은 이후 모든 것을 뉘우치고 개혁회의에 전권을 넘긴 채 자발적으로 해산했다. 일괄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다시 도법 스님이 “종도들의 대부분은 의현 총무원장의 3선을 반대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지명·혜담 스님은 “3선에 참여했던 모든 의원들을 (해종행위자로) 묶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섰다. 종광 스님은 다시 “우리 교단에 미증유의 혼란을 초래하게 한 원인이 총무원장의 3선 강행이라고 본다면 이를 강행한 분들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제재를 해야 한다”며 “이 부분이 선행되지 않고 개혁을 한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설조 스님은 “사회자로서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며 “죄를 따지자면 어찌 그 사람들뿐이겠는가. 종회의원들을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거듭 설득했다. 그러나 무착 스님은 “(3선 결의에 동참했던) 말 잘하고, 돈 있고, 권위 있는 사람들이 개혁회의에 동참했다고 징계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을 징계할 수 있겠느냐”고 징계를 촉구했다. 청화 스님은 “이승만 정권 때 친일파를 심판하지 못했고, 문민정부도 5·18 민주항쟁을 역사의 심판에 맡긴다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비난을 샀다”며 “3선을 강행한 종회의원의 실수를 짚지 않고 넘긴다면 개혁종단은 신망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설정 스님이 만류에 나섰다. 스님은 “종단의 백년대계를 위해 노력한다면 과거에 잘못한 사람이나 조금 잘했던 사람이나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며 “서로간의 감정이 엇갈리다 보면 개혁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설조·혜담 스님도 설정 스님의 발언을 두둔했다. 장시간 논란 끝에 종광 스님은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결국 의현 총무원장의 3선 결의에 참여했던 종회의원에 대한 징계규정을 마련하지 못한 채 특별법은 원안대로 가결됐다.

개혁회의는 의현 총무원장 체제에서 군림했던 구태세력을 몰아내고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러나 개혁회의는 참회와 용서 없이 종단권력의 중심부에 있었던 과거 종회세력들을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개혁의 선명성을 잃고 말았다. 1994년 종단개혁이 미완의 개혁이라는 비판을 받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263호 / 2014년 10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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