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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충’ 소금 뿌리기

기자명 함돈균

자기주장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열광하는 시대가 된 지는 오래 다. ‘테드’라는 이름의 자기주장 발표대회는 전세계적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가 대학 다닐 때는 기업에서나 썼지, 학교 내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프리젠테이션’이라는 용어가 일반화 되고, 대학의 학생 수업 발표가 종이리포트가 아닌 ‘PPT’라는 형식으로 대세가 바뀌어나가는 것도 이런 세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중 상당수는 ‘자기계발서’인데, 이 책들의 상당수는 자기계발의 성패를 얼마나 남들 앞에서 자기를 잘 ‘프리젠테이션(표현)’ 하느냐와 관련하여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근래 한 문학강의에서 매우 인상 깊은 얘기를 들었다. ‘시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는 주제로 이뤄진 강의에서 강사로 나선 노 문학평론가는 뜬금없이 음식에 소금뿌리는 얘기를 하셨다. 어떤 종류의 음식이건 간에 음식 만들기의 핵심은 간을 맞추는 일이며, 그건 소금을 얼마나 적절하게 뿌릴 수 있느냐 하는 손의 감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집안에서 소금 제일 잘 뿌리는 사람은 돌아가신 어머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방법이 걸작이었다. 어머니는 소금을 어떻게 뿌리셨느냐 하면 ‘그냥 대충’ 뿌리셨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이 얘기를 ‘시의 본질과 효용’에 대한 간단하지만 심오한 암시적 예로 활용하셨다. 소금을 ‘대충’ (그러나) 적절히 뿌리는 일은 몸에 힘을 뺄 때 가능하며, 시가 하는 일이란 눈앞에 놓인 음식재료에는 집중하되, 소금을 뿌리는 사람의 ‘자기주장’에는 무심해지는 능력, 몸에 힘을 빼는 능력과 비슷한 일이라는 게 논지였다. 다들 자기만의 레시피가 있다고 믿고 음식을 만들 때에도 잔뜩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 하지만, 자기 몸과 생각에 힘을 빼야 음식의 참된 맛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어제 내가 청강한 또 다른 강의에서 비슷한 맥락을 배웠다. 한 유명 노 건축가의 강의였다. 강의에서 놀란 점은 강사로 나선 건축가의 태도였다. 그 강의는 본래 존경할 만한 노 건축가의 삶을 조명하려고 준비된 특강이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자신의 건축 얘기를 하면서 일관되게 자기를 비판했다. 자신이 노력했다 하더라도 자기 건축물들은 태생적으로 충분히 검토되지 못하고 진행된 한국도시건축사의 우연하고 불행한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주인공이어야 할 강의에서 자기를 도시건축사, 나아가 한국현대사의 큰 흐름 속 한 사례로 편입시켜 비판적으로 객관화하는 쿨한 강의를 진행하셨다. 그 선생님의 건축이 왜 건축가 자신을 지우고 건축물이 서는 터의 시간성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인문 건축’의 사례로 일컬어지는지를 그 강의 태도에서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자기주장의 시대, 자기 피알의 시대다. 목숨을 걸듯이 세련된 방식으로 자기를 주장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위협감이 조장되는 시대다. 이제는 교육 현장에서도 자기 피알적 태도를 강조하고 그 능력을 기를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남의 말을 경청하라는 교육은 생략하고, 내 주장 잘 하는 스킬만 강조하는 괴상한 풍토가 형성되다 보니, 사회는 온통 목소리 큰 사람들만 있고, 귀가 열린 사람들은 점점 적어진다.

그러나 최근 두 선생님 강의에서 본 것은 반대였다. 자기 몸에 힘 빼기. ‘에고(ego)’라고 불리는 자아를 풀어 놓고 주변의 존재에 자기를 개방시키고 연결시킴으로써 더 큰 삶의 테두리 속에 자기를 포괄하는 성찰적 태도. 어쩌면 이런 태도에 ‘겸양’ ‘공감’ ‘대화’의 능력은 물론이고, ‘공공성’이라고 부르는 공동가치로 나아갈 수 있는 열쇠가 내재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나’를 지우는 일은 불가에서도 중요하게 강조되는 수행론이 아닌가.

함돈균 문학평론가 husaing@naver.com

[1263호 / 2014년 10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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