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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 수행처·화랑성지 경산 팔공산 불굴사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4.09.30 12:44
  • 수정 2014.09.30 12:56
  • 댓글 1

어머니 같은 자비로 중생 보듬는 약사여래부처님 도량

▲ 불굴사 경내 모습. 중앙에 보물 제429호 삼층석탑이 있고 그 뒤편에 적멸보궁이 존재한다. 석탑 왼편 전각이 족두리를 쓴 여인의 모습을 한 약사여래불이 모셔진 약사보전이다.

신라 오악(五嶽)의 하나로 국가차원에서 숭배돼온 영산 팔공산. 이곳 팔공산 남동쪽 끝자락에 아름다운 비경을 품은 불굴사(佛窟寺)가 자리하고 있다.

신라 신문왕 때 건립된 천년고찰
원효대사 발심해 처음 정진한 곳
영험 가득한 진신사리 모신 보궁
여인 모습한 약사불 또다른 성보

불굴사는 신라 신문왕 10년(690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그러나 불굴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곳이 원효대사가 발심해 처음으로 수행을 한 장소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신라 화랑들의 성지로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역시 이곳에서 수련을 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김유신은 수련을 하던 중 난승이라는 스님에게 삼국통일의 신표인 보검을 받고 힘을 얻어 김춘추와 더불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원효와 화랑의 성지였던 만큼 불굴사는 창건 당시 50여동의 전각을 비롯해 12개의 부속암자를 거느린 대찰이었다고 전해진다. 스님과 불자들의 공양을 위한 물레방아가 8대나 있었다고 하니 당시의 규모를 짐작하고 남음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법당과 요사가 불에 타버리고 조선 영조 12년(1736년) 큰 비에 의한 산사태로 대파되면서 크게 쇄락했다. 지금의 불굴사는 송광사에 있던 노스님이 현몽(現蒙)을 받아 중건을 시작해 철종 11년(1860년) 유혜·쾌옥 두 스님에 의해 중창됐다. 이후 1939년 은해사 경파백현 스님의 원력으로 사격을 갖추게 됐다.

현재 불굴사는 조계종 10교구본사 은해사 말사다.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약사보전과 산령·독성전, 종각, 요사채, 삼층석탑을 갖추고 있다. 오랜 세월 전란과 자연재해를 겪으며 많은 것들이 소실되고 사라졌지만, 넓고 시원한 마당 위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찰 불굴사의 기품은 여전히 당당하고 웅장하다.

조밀하게 쌓아올린 돌계단을 올라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삼층석탑을 만나게 된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물 제429호로 지정돼 있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올린 전형적인 신라석탑 양식으로 상륜부 일부가 결실되었을 뿐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보존돼 있다. 1000년 세월을 거슬러 지금까지 변함없는 그 모습에서 신라인들의 깊은 불심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삼층석탑 앞 석등 역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적멸보궁은 불굴사를 영험 가득한 기도도량으로 만드는 성지 중의 성지다. 적멸보궁에 들어서면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참배할 수 있다. 당초 사리탑은 적멸보궁 내에 모셔졌으나 더 많은 이들이 함께 기도하고 참배할 수 있도록 최근 적멸보궁 밖으로 모셨다. 기도도량 불굴사의 영험함은 사리탑을 옮겨 모시는 과정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사리탑에는 1988년 인도에서 모셔온 진신사리 7과를 모셨는데 이번 이전 과정에서 25과로 증과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불굴사 적멸보궁을 찾은 불자들의 간절한 서원과 발원, 그리고 부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에 화답을 해 주신 것은 아닌지….

▲ 참배객을 맞이하는 듯 정면이 아닌 옆문을 바라보고 서 계신 불굴사 약사여래부처님.

약사보전은 불굴사를 상징하는 또 다른 기도처다. 화강암 바위에 연화대를 조성하고 그 위에 석조약사여래불을 모신 후 전각을 세웠다. 때문에 약사보전 내부 부처님이 서있는 자리는 바위가 그대로 돌출돼 있다. 약사여래 성지 팔공산에 약사여래불을 모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 그럼에도 불굴사 약사여래불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족두리를 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약사보전은 동쪽을 향해 건립됐지만 약사여래불은 동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말해 약사여래불이 법당의 옆문을 바라보고 있어 참배객들은 약사여래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약사보전에 들어서게 된다. 마치 먼 길 떠났다 돌아온 자식을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겨주는 어머니 모습 그대로다. 여기에 갓바위 부처님이 있는 쪽 마을 이름이 ‘양지리’이고, 불굴사 약사여래입상이 있는 곳을 ‘음지리’라 불린다.

이런 까닭에 어머니와 같은 자비로 중생을 제도하는 불굴사 약사여래불과 갓을 쓴 모습의 선본사 갓바위 부처님이 부부라는 설화가 있다. 때문에 갓바위 부처님과 불굴사 약사여래부처님이 서로 음양의 조화를 이뤄 하루 두 군데서 기도를 하면 반드시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거리도 8km에 불과하다. 평일에도 불굴사를 찾는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이유다.

▲ 불굴공원은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꽃나무를 배경으로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다.

혹여 불자가 아니더라도 불굴공원은 꼭 방문해 보길 권한다. 도량 왼편에 위치한 불굴공원은 작은 연못과 함께 시원한 그늘 아래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작은 못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분수와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다양한 꽃나무를 배경으로 불굴사에서 준비한 찬 한 잔을 마시노라면 참다운 ‘쉼’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저녁시간이면 은은한 조명과 함께 음악이 더해져 더욱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된다. 불굴공원은 불굴사를 찾는 누구나 편안히 쉬고 계절의 변화를 감상하며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24시간 열린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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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번뇌망상 벗어나 성불인연을 만나다

불굴사가 품은 보물 홍주암
경내 가장 먼저 태양이 뜨는 곳
석굴법당에 양각한 부처님 조성

공양간 옆 쉼터를 뒤로하고 오솔길을 따라 잠시 산행에 나서면 이내 돌계단과 마주한다. 원효대사가 수행했고, 김유신이 기단을 쌓아 기도를 했다는 석굴 홍주암(紅珠庵)으로 향하는 길이다. 붉은 구슬이란 뜻의 홍주는 ‘태양’을 의미하는 말로 불굴사 경내에서 가장 먼저 붉은 구슬과 같은 태양을 볼 수 있는 장소다.

홍주암에 가려면 먼저 돌계단에 올라야 한다. ‘행복 108계단’이다. 108개로 이뤄진 계단을 오르며 모든 번뇌망상에서 벗어나 성불인연을 지어 행복을 찾으라는 뜻이다. 행복계단 양 옆에는 저마다의 소원을 담아 쌓아올린 돌탑들이 즐비하다.

▲ 석굴이 법당이 된 홍주암.

행복 108계단의 끝자락, 곧장 깎아지른 바위절벽과 맞닥뜨린다. 여기서부터는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고 가파른 철제계단이 바위절벽에 꼭 붙어 달려있다. 배려와 양보의 마음을 가져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온 몸으로 배우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가파른 계단 위 이내 문패와 같은 ‘紅珠庵’ 붉은 음각을 만나게 된다. 이 음각을 지나면 낮은 석굴을 나오는데 이곳이 홍주암이다. 원효대사가 처음 수행을 시작하고, 김유신이 단을 쌓아 기도를 했다는 바로 그 장소다.

석굴은 천연적으로 법당이 되었고, 석굴 중앙바위에는 좌정한 모습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양각해 모셨다. 마애불 앞 바위에는 작지만 당당한 모습의 금강역사가 양각돼 있다. 석굴 왼편에는 ‘아동제일약수(我東弟一藥水)’라 새겨진 작은 샘이 있다. 원효대사와 김유신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청수다. 1970년 2월 원효대사가 토담을 쌓고 수행했을 당시의 부처님이 발견됐다. 그 부처님은 현재 경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각.

홍주암에서 다시 철계단을 오르면 ‘하심(下心) 나무’라 불리는 허리 굽은 소나무가 순례객을 맞이한다. 허리를 숙이지 않고는 올라가거나 내려올 수 없어 붙여진 이름이다. 조금 더 오르면 편평한 곳에 다다른다. 이곳에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각이 있다. 나반존자는 500나한 중 신통력이 가장 뛰어난 분으로 열반에 들지 않고 미륵불을 기다리면서 말세 인간의 복전이 되어주겠다고 원력을 세운 분이다. 때문인지 자신의 혹은 소중한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수많은 명함과 소박한 소원지가 독성각을 장엄하고 있다. 불굴사가 품은 또 다른 기도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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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사 주지 덕조 스님

“반려동물 함께하는 법회 등 열린 공원 같은 도량 발원”

“누구나 찾아오고 싶은 사찰. 찾아와 마음을 쉬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힐링공간. 어느 때라도 생각나면 찾아와 차 한 잔 즐길 수 있는 그런 편안한 장소가 됐으면 합니다.”

▲ 불굴사 주지 덕조 스님.

불굴사 주지 덕조 스님이 그리는 불굴사의 모습이다. 스님은 지난해 12월 주지로 부임한 이래 ‘열린 공원 같은 사찰’을 목표로 힘찬 변화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가장 먼저 불굴사 왼편에 불굴공원을 조성했으며, 극락보전 내에 안치됐던 사리탑을 밖으로 옮겼다. 현재는 사리탑 주변에 꽃나무를 심는 장엄불사가 진행 중이다. 모든 과정은 ‘대중포교’라는 원력의 결과물이다.
“모든 사찰이 저마다의 특색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도량, 수행도량, 포교도량 등 각각의 역량과 환경에 따라 맞춤형 포교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요사이 많은 분들이 힘들고 어렵다고 합니다. 불굴사는 팔공산의 비경을 품은 곳이자 대구와 경산, 영천에서 자동차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불굴사가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난다면 종교를 초월해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열린 공원 같은 사찰을 목표로 불사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사찰 본연의 역할도 한층 강화됐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이면 3000배 철야정진을 봉행하고, 어린이포교를 위한 지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내년 하안거 입제를 목표로 시민선원 건립불사도 한창이다. 또 사회의 트렌드를 반영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법회도 준비 중이다. 특히 학생 수 감소로 폐교될 예정었던 영천 임고초는 덕조 스님의 관심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어린이 포교를 위한 포석이었다. 여기에 은해사 주지 돈관 스님이 적극 지원에 나서면서 지금은 아름다운 숲속학교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덕조 스님는 지금 더 큰 계획을 꿈꾸고 있다. 그것은 교구의 노스님들을 모실 복지공간을 만드는 것. “도량정비가 마무리되면 불굴공원 위쪽에 극락전 건립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불굴사 극락전이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교구 노스님들의 편안한 회향의 공간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1263호 / 2014년 10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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