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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해종행위자 징계

의현 총무원장 체제 비호한 반개혁 세력 척결

 

▲ 조계종 개혁회의는 출범과 동시에 과거 청산을 내세웠다. 개혁회의가 제시한 개혁 5대 목표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총무원 청사에 걸려 있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1994년 의현 총무원장 체제를 무너뜨린 조계종 개혁회의가 종단개혁에 착수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았다. 비록 총무원과 중앙종회를 장악했지만 지방의 주요사찰은 여전히 의현 총무원장의 지지 세력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언제라도 주요사찰에서 나오는 막강한 재원을 이용해 개혁회의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개혁회의가 출범과 동시에 과거 청산을 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도 이런 이유였다.

개혁회의, 해종 특위 구성
사찰감사·해종 행위자 조사

143명 해종 행위자로 지목
선별 통해 74명 징계 회부

호계위원회 판결 두고 논란
같은 사안 두고 형량 달라

일부 호계위원은 사퇴 선언
징계적법성 논란의 배경돼

개혁회의는 5월3일 ‘해종행위조사 특별위원법’을 첫 안건으로 처리하고 의현 총무원장 체제를 비호한 스님들에 대한 정리 작업에 착수했다. 대구 동화사를 비롯해 영천 은해사, 강화 보문사, 경산 선본사를 총무원에서 직접 관리하는 직영사찰로 지정했다. 반개혁회의 세력의 ‘돈줄’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개혁회의의 해종행위자 처리는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5월3일 ‘해종행위조사 특별위원법’ 공포와 동시에 5월4일 해종행위조사 특별위원회(해종특위)가 구성됐다. 영담 스님을 위원장으로 법등·혜담·장곡·효림·철오·토진·일문 스님이 위원으로 선임됐다. 해종특위는 5월8일 첫 회의를 열어 활동방향에 대한 기본골격을 마련했다.

‘해종특위활동보고서’에 따르면 해종특위는 △3·29와 4·10법난을 자행한 반승가적 세력의 엄단 △의현 총무원장 재직기간 동안 파행적으로 단행된 인사와 재산의 불법처분 등을 조사해 그 책임을 묻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해종특위는 상무대 비리사건을 불러온 동화사 대불 조성과 관련된 인물 조사에 초점을 맞췄다. 의현 총무원장 재임시절 부당하게 사찰을 인수하거나 운영한 인물, 3·29와 4·10법난 때 자금을 동원한 사찰과 인물에 대한 조사도 병행했다.

해종특위는 대구 동화사를 비롯해 영천 은해사, 대구 안일암, 경산 선본사, 대구 은적사, 경주 불국사, 경주 석굴암, 경주 분황사,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 공주 마곡사, 공주 동학사, 부여 고란사, 논산 관촉사, 고창 선운사, 정읍 내장사, 군산 은적사, 대전 고산사, 인제 백담사, 철원 심원사, 원주 구룡사, 구례 화엄사, 여수 흥국사, 과천 연주암, 포천 흥룡사, 파주 보광사, 서울 봉은사, 남양주 봉선사, 의성 고운사, 해남 대흥사 등 30개 사찰을 특별종무감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들 사찰 주지 대부분은 의현 총무원장을 지지했던 인사였다. 그러나 해당 사찰 주지들의 반발도 거셌다. 동화사, 은해사, 안일암, 은적사, 불국사, 석굴암, 분황사, 보문사, 보리암, 내장사, 군산 은적사, 고산사, 흥룡사, 보광사 등 14개 사찰은 해종특위의 종무감사를 거부했다. 일부 스님들은 사회법에 호소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징계 사유가 됐다. 해종특위는 해당 사찰 주지들을 해종행위자로 규정하고 즉각 징계에 회부했다.

‘종단개혁불사 백서(개혁회의, 1994년 11월 발간)’에 따르면 개혁회의는 출범 이후 월주 총무원장 체제가 들어설 때까지 7개월 동안 총 18개 사찰의 주지를 징계해 교체했다. 교구본사로는 은해사를 비롯해 동화사, 불국사, 마곡사, 고운사, 대흥사, 봉선사가 포함됐다. 관광사찰인 보문사, 은적사, 내장사, 흥룡사, 보리암, 관촉사, 장곡사, 안일사, 고산사, 보광사, 분황사 등 11개 사찰주지도 경질됐다.

약 2달간의 조사를 통해 해종특위는 총 143명을 해종행위자로 지목했다. 이 가운데 101명을 3월29일부터 4월13일까지 벌어진 해종행위 직접 가담자로, 39명을 개혁 음해자로, 3명을 정화대상자로 분류했다. 해종특위는 해종행위자에 대한 선별 작업도 진행했다. 해종행위자를 단순가담자와 적극가담자, 종단음해자로 나누고 단순가담자는 경징계를, 적극가담자와 종단 음해자에 대해서는 중징계 방침을 정했다. 이런 분류를 통해 해종특위는 전체 143명 가운데 74명을 호계위원회에 징계 회부했다. 참회하고 자숙을 약속한 스님 25명에 대해서는 징계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해종특위의 징계청구는 논란이 불가피했다. 짧은 조사기간에 죄의 경중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참회와 자숙의 정도를 판단하는 것도 지극히 주관적이었기 때문이다. 종단개혁 직후 조계종이 수많은 소송에 휩싸인 것도 이런 이유였다.

영담 스님은 불교신문이 주최한 ‘종단개혁 20주년 기념 좌담회’(2014년 1월1일자)에서 “(징계범위를) 너무 확대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소화하고 또 최소화했다. 어렵게 인적청산을 한다고 했는데 부족한 부분도 있고, 과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라고 징계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음을 일정부분 시인했다.

1994년 6월8일 개혁회의 출범 이후 처음으로 초심호계위원회가 소집됐다. 초심호계위원회는 청화 스님이 위원장을 맡았으며 철우, 수경, 주영, 혜국 스님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날 심판부에는 의현 총무원장을 비롯해 은해사 주지 규필, 규정부장 보일, 원로회의 사무처장 원두, 호법부 감찰 무성, 보문사 주지 보정, 불국사 주지 종원, 보리암 주지 도각 스님이 징계에 회부됐다. 개혁회의가 과거 청산의 주된 표적으로 삼았던 인물들이었다. 초심호계위원회는 해종특위와 호법부의 징계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 초심호계위원회는 의현·규필·보일·원두·무성 스님에 대해서는 종단 최고형인 ‘체탈도첩’을, 보정·종원·도각 스님에 대해서는 ‘제적’을 결정했다.
징계결의서에 따르면 초심호계원은 의현 총무원장에 대해 △종단과 승려의 명예 훼손 △총무원장으로서 의무·금지 규정 위반 △폭력배 동원 △파행적 종무행정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규필 스님은 △3월29일 은해사 말사 주지 수십 명을 동원해 개혁에 항거 △3월30일 의현 총무원장 3선에 적극 가담 △해종특위 감사 거부 등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보일 스님에 대해서는 △의현 총무원장의 3선 계획 수립 △3월30일 직원들로 하여금 폭력배 동원을 지시 △조직폭력배들의 숙박비 지불지시 등의 죄를 물었다.

원두 스님은 △석명서(釋名書) 등을 통해 개혁회의 집행부를 비방 △‘제10대 중앙종회 해산은 무효’라며 개혁종단 부정 △4월13일 원로회의를 불법회의로 주장 △서울 민사지법에 개혁회의법 제정결의 무효확인 소송 제기 등을 적용했다. 무성 스님은 3월29일 오전 폭력배 50~60명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한 혐의가 인정됐다. 보정 스님과 도각 스님은 △4월10일 총무원 청사에서의 폭력행위 △해종특위 종무감사 거부 등의 죄가 적용됐다. 종원 스님은 △3월28일 폭력배의 서울호텔 투숙비 500만원 상당을 도오 스님을 통해 불국사 법인카드로 결제 △의현 총무원장의 3선 지지 △1991년 10월 불법단체인 강남총무원에 1억8000여만원 납부 △해종특위 종무감사 거부 등의 죄를 적용했다.

의현·규필·보일·원두·무성·보정 스님은 재심청구를 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징계가 확정됐다. 다만 종원 스님은 초심결정 이후 “폭력배의 서울호텔 투숙비 지원과 무관하다”며 입증 자료를 제출하면서 재심에서 ‘공권정지 1년’으로 감형됐다. 그러나 징계가 확정되면서 불국사 주지직을 상실하자 종원 스님은 사회법에 제소했다. 그러자 개혁회의는 이를 문제 삼아 다시 종원 스님을 징계에 회부해 ‘체탈도첩’을 확정했다.

‘해종특위활동보고서’에 따르면 개혁회의 초재심호계위원회는 6월8일부터 9월28일까지 총 60명에 대한 징계를 확정했다. 이 가운데 의현·보일·규필·원두·무성·종원·준제·진암·진경 스님에 대해서는 ‘체탈도첩’을, 보정·도각·지호·허현·동연·진학·사요·현철·영공·도오·보원·삼현 스님 등 12명에 대해서는 ‘제적’을 결정했다. 시진 스님은 ‘공권정지 4년’, 도각·향운·명선·대우·지정 스님은 ‘공권정지 3년’, 봉주·영도·홍진·혜성·학능 스님은 ‘공권정지 2년’, 경우·혜오·보연·덕현·도후·허정·성훈·능엄 스님은 ‘공권정지 1년’, 기연·문인 스님은 ‘공권정지 6월’, 행담·탄우 스님은 ‘면직’을 결정했다.
 
그러나 의현 총무원장의 3선을 적극 지지하고 조력했던 혐의로 징계에 회부됐던 성문·정대·삼지·세민·자승·성덕·도허·계산·화담·원경·송강·종훈·무견 스님은 비슷한 사안임에도 ‘문서견책’에 그쳐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조계종 유사 이래 최단 기간에 최대 인원을 징계한 개혁회의의 과거 청산은 내부적으로도 적지 않은 문제를 드러냈다. 판결에 참여했던 호계위원 사이에서도 징계과정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객관적인 사실에서 벗어나 지극히 주관적인 징계였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 혜국 스님을 비롯해 철우·주영 스님은 스스로 호계위원에서 물러났다.

철우 스님은 “아무리 의현 총무원장의 편에 서 있었던 사람이라도 징계는 적법하게 진행돼야 훗날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호계위원회의 판결은 마치 ‘인민재판’을 연상케 했다. 절차와 원칙도 없었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 이상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게 됐다”고 술회했다. 징계에 참여했던 당시 호계위원들의 지적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징계의 적법성을 두고 끊임없이 논란을 빚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264호 / 2014년 10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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