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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유리수에 갖혀있는 눈동자

제법 오래된 이야기이다. 어느 큰스님께서 살아계셨을 때 고향 마을 근처를 지나시다가 우연히 택시를 타게 되었다. 택시 기사분이 넉살 좋게 말을 걸었다.

벌이 꽃에만 날아간다고
그를 탓할 수는 없는 법
대상을 알아보는 안목을
모두가 갖추기엔 무리수

“스님 제가 어느 큰스님을 잘 압니다. 스님께서도 그 큰스님을 혹시 뵌 적이 있으신지요.”

그 택시 기사분이 잘 안다는 큰스님이 자신의 택시에 탔는데 그 큰스님을 만난 적이 있느냐고 당사자 큰스님에게 질문을 한 것이다.

혹 관세음보살님이 택시기사로 현신하여 그 큰스님에게 자신의 본래면목을 만난적이 있느냐고 물은 것은 아닐까 하는 부질이 별로 없는 생각도 해본다. 부질이라는 단어를 써놓고 생각해보니 부질의 의미를 잘이 아니라 그냥 모르고 있다. 네이버 지식인에게 물어보아야 할까. 어처구니가 맷돌의 손잡이라는 건 얼핏 들어서 알긴 하는데 우리의 큰스님께서 그만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받으신 것이다.

당나라 때 이고라는 스케일 큰 학자가 약산유엄 스님을 찾아왔다. 스님을 만나자마자 돌직구를 던진다.
“아니 스님. 멀리서 듣기로는 아주 훌륭하다고 들었는데 와서 뵙고 보니 참으로 볼품이 없으십니다.”

스님께서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응수하신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대의 귀는 귀하게 여기면서 그대의 눈은 천하게 여기는 것이오.” “도가 무엇입니까?” “따라오시지요.” 스님은 암자 뒤쪽에 있는 바위로 가더니 물병을 바위에 올려놓고 손을 들어 하늘을 한번 가리키고 손을 내려 물병을 가리켰다.

“스님 한 말씀 해주시지요.”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소이다.”

이 대학자가 즉석에서 게송을 짓는다.

鍊得身形似鶴形 (연득신형사학형)
千株松下兩函經 (천주송하양함경)
我來問道無餘說 (아래문도무여설)
雲在靑天水在甁 (운재청천수재병)

수행으로 얻으신 몸 학의 모습 같으시고 / 천그루 소나무 아래 두어 상자 경전뿐 / 찾아와 도를 물으니 여타 말씀 없으시고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 속에 있다 하시네.

마지막 구절은 후에 스님들이 역공격을 당하는데 쓰이기도 했다. “왜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오.” 물은 하늘에 있고 구름은 물병 속에 있다고 둘러대거나 하면 될 터인데 어떤 경우에는 쩔쩔매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건 그렇고 볼품없어 보이던 스님이 갑자기 학으로 보였으니 안목을 갖춘 사람일 것이다. 안목을 갖추지 못하면 학도 비루먹은 닭으로 보인다. 거꾸로 닭은 학으로 보이기도 한다.

패셔니스타가 집중 조명을 받는 시대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어떤 분은 대학시절 학부에서 의상을 전공했는데 그 분의 패션은 4차원과 5차원까지도 넘나든다. 시대를 앞서가는 학의 패션을 추구하다보니 그 진면목이 가로등 뒷 그늘에 가리워지는 경우가 없지 않은 것 같아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패션에 관계없이 강감찬 장군을 알아본 그 사신의 안목을 모든 사람이 갖추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보통 무리수가 아니다. 유리수에 갇혀있는 눈에 유리수의 뿌리인 무리수가 들어가는 것은 무리이므로.

벌과 나비가 꽃으로 달려가지 뿌리가 있는 흙을 파고들지는 않는다. 벌과 나비를 탓할 일은 아니다. 차라리 허공에 피어있는 꽃이 뿌리가 되어서 땅속에 뿌리라는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위안을 삼는 게 좋을 듯하다.

전에 만났던 어떤 분이 필자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아, 그 꽃이름이 뿌리와입니까?” 필자가 대답했다. “아 예. 뿌 띄고 리와꽃입니다.”

산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은행나무는 옷을 벗을 준비를 하고 있다. 벗고 입는 것인지 입고 벗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옷없는 사람이 제일이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64호 / 2014년 10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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